꺾이지 않는 마음
'헙..!'
스파링을 할 때 발생하는 애로사항 중
가장 끔찍한 것은 나보다 실력도 월등하고
무게도 많이 나가는 이들과 겨루는 것이다.
특히나 밑에 깔려서 불리한 포지션으로 접어들면
머릿속에선 오만가지 생각이 불쑥불쑥 솟아난다.
"고맙습니다. 많이 배웠어요"
"사범님, 이거 체급차이 때문에 그래요. 고생하셨어요"
강하고 겸손한 이들은 항상 스파링이 끝난 후
이토록 상대를 배려하는 말들로
품위 있는 모습을 보인다.
나는 참 운이 좋게도 이런 분들과
함께 운동을 하고 있구나.
"에이 씨!!"
분한 마음을 삭히지 못하고 손바닥으로 물을 내리친다
푸른 타일에 잔잔하게 흐르던 수영장 물이
내 마음처럼 요동치면서 물방울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나는 어릴 적 수영선수를 준비했었고
끝없이 훈련을 거듭했다.
하지만 으레 그렇듯
어릴 때는 여자아이들의 성장이 무척이나 빠르기 때문에
항상 모든 경쟁에서 이기고 싶던 나에게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한 아이가 있었다.
그날도 그랬었다.
메울 수 없는 격차에 분함을 느끼며
나는 온몸으로 내 절망을 표현하고 있었다.
"너 왜 그래!"
코치님이 버럭 혼을 내며 나에게 큰 소리를 쳤다.
평소 같으면 주눅 들어서 쭈뼛거렸을 나였을 텐데
그날은 왜 그랬는지 나도 버럭 소리를 쳤었다.
"이기고 싶은데 자꾸 져요! 화나요!"
솔직하고도 발칙한 내 표현에 코치님은 잠시 머뭇거리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다음 훈련을 위해
호루라기를 입에 갖다 대며 숨을 내뱉을 뿐이었다.
아마, 그날의 나에게서는 분노가 뒤섞인
승부욕이 눈망울에 한껏 담겨있을 것이다.
"사범님"
잠시 옛 생각에 젖어있던 나에게
한 아이가 다가와서 조용히 입을 연다.
"저 가드가 자꾸 뚫리는데 이럴 땐 어떡해요?"
도수 높은 안경 너머로 보이는 아이의 눈에
옛날의 내 모습이 비추어 보인다.
분노와 절망이 섞인 나의 어릴 적 모습과는 정 반대로
단단함과 끈기가 어우러진 눈망울이었다.
신기했다. 약관의 나이가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에게
이토록 성숙한 모습이 보인다는 것에.
"그럴 땐 말이지"
아이에게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말해주며
기술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남들에게 내가 가진 지식을 전달해 준다는 것은
참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할 수 있는 한 애써서 전달하려 한다.
내용보다는 내가 겪은 마음을 말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중요한 게 있어"
"뭔데요 사범님?"
"기술이 안되더라도"
잠시 멈추고 숨을 한결 고르며 얘기한다.
"포기하지 마, 계속하다 보면 길이 보일 거야"
내 얘기를 들은 아이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어릴 적 그 과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수영선수가 되겠다는 다짐을 포기했었다.
지금 와서 후회를 하진 않지만
돌이켜 보면, 그때 포기하지 않고 내가 계속했었더라면
지금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종종 생각이 난다.
관장님은 늘 항상 말한다.
포기를 하는 순간 탈출할 수 없다고.
다른 운동을 하며 결핍된 나의 마음가짐을
주짓수를 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채워가고 있었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거창한 듯 거창하지 않은 마음가짐이지만
참 쉽지 않다.
그렇기에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