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죽은 나무

by 도씨


나무.png


어느 날, 엄마는 외할아버지가 나온 꿈 이야기를 해줬는데, 어린 모습의 나와 동생 그리고 짐들을 이고지고 힘겹게 길을 가고 있었다고 했다.

근데 갑자기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나타나서는 무얼 그리 힘들게 이고지고 가냐 천천히 가거라, 내려놓거라 몇 번을 말씀하셨다고 한다.

가끔 암 투병 생활이 엄마의 마지막 휴가였다는 생각을 하면, 결국은 외할아버지가 아등바등 사는 꼴이 안타까워 일찍 데려갔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돌아가시고 시작된 코로나, 돌아가시고 심해진 내 정신병, 돌아가시고 사라진 부모님 노후를 책임지는 첫째딸의 삶 ...결국 엄마는 그 무엇도 나한테 짊어주지 않으려는 듯이 훌쩍 떠났으니까.


말없는 나와 다르게 엄마와 이야기를 나보다 많이 했던 동생은 엄마는 항상 그 3천만원을 다 쓸까봐 전전긍긍했다고 했다. 그것도 일찍 죽은 이유이려나.

하늘의 뜻과 운명을 어찌 알겠냐만은 어쨌든 엄마는 마지막도 적기에, 야무지게 마무리 한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첫 항암약이 내성이 생겨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약을 바꿔야 했다.

그 때부터 급속도로 엄마는 나빠지기 시작했다.

아파도 이 악물고 참으면서 나에게는 말도 않던 강한 엄마는, 아이처럼 배가 아프다며 소리 지르고 짜증을 내고 침대 위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그런데도 나는 회사핑계로 밖으로 나돌았다. 혼자 둔 엄마는 결국엔 마약성 진통제를 자기도 모르게 아파 끊임없이 먹다가 , 갑자기 섬망이 찾아왔다.

아침인지 저녁인지 헷갈려 저녁7시에 왜 벌써 회사냐고 왜 벌써 출근해서 안 오냐고 놀란 전화가 오기도 했다. 그렇게 엄마의 정신까지 암세포 앗아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동생과 있을 때엔 더 했다고 했는데, 나에겐 자세히 말해주지 않았지만 동생은 아 섬망이구나, 엄마가 곧 죽겠구나 싶어서 울면서 물었다고 했다.

나는 엄마딸이라 너무 행복했는데, 엄마도 그랬냐고.


잠깐 제 정신으로 돌아왔던 엄마는 대답했다.

너희 딸 둘이 착해서 키우는데 힘든지도 몰랐다고, 너희 덕에 힘든지도 모르고 살았다고. 그래서 너무 행복했다고. 지금도 아파죽겠는데 너희 고아 만들기 싫어서 죽지 않고 버틴다며 진통제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말했다고 한다.


엄마는 내가 아는 누구보다도 악착같이 버티는 것을 잘했다. 무거운 삶 속에서도 항상 긍정적이었고, 췌장암에 걸리고 나서도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다 나은 후의 미래를 이야기 했다.

버티고 잘 버티고 남들은 못 살 인생을 다 살아냈다. 하지만 아플수록 매일 하는 큰이모와의 전화에서 마지막을 이야기 하는 걸 들어버렸었다.

언니, 나 못 나으려나봐. 너무 아파.

불도저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강하고 잘 버티는 엄마가 패배선언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에게도 그런 류의 이야기를 하긴 했다.

외할아버지가 왜 이렇게 자기를 데리러 오지 않느냐고..


엄마 보고싶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요즘 자주 내뱉게 되는 말이다.

하지만 이젠 아프지 않겠지. 그건 유일한 위로가 된다.

시간은 약이 아니었고, 그리움은 결국 끝이 없을 거다.


그래도 한번은 보고싶다 엄마.

꿈에 두어번 나오더니 이젠 나오지도 않는다.

서운하지만 서운하지 않다.

끝까지 야무지게 마무리 했던 것처럼 분명 홀연히 잘 떠났을거니까.

그래서 엄마는 항상 나의 ‘아낌없이 죽은 나무’이다.

왜 그런지는 앞으로 이야기를 더 해야겠지만

keyword
이전 08화슬기로운 백수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