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도 제대로 헤어지지 못한 시간들
그 애와는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며 7년을 사겼다.
그리고 다시 연락이 닿기까지 8년이 걸렸다.
수포자다 못해 산수에도 약해 계산에는 영 소질이 없지만,
청춘의 한복판에서 만나 거의 중년이 될 때까지
사랑이라고 믿었던 연애는 그 시간 동안 그 애가 전부였다.
헤어지고도 번호는 꼭 챙겨야 하는 귀중품처럼 새 핸드폰에 옮겨 담았다.
이름은 항상 사겼던 때의 그대로
'웬수'
모르는 눈으론 하하 웃음이 나오는 이름이지만,
그건 미워서라기 보다는 그 애에 대한 애증과 추억 사이의 단어였다.
그토록 오래 잊지 못해놓고 , 전화번호를 귀중하게 챙겨놓고
왜 8년이나 연락하지 않았냐 하면
특별히 할 말은 없다.
내가 버리고 내가 뒤돌아서고 내가 다시 연락하는 모순 속엔
내 병과 내 현실의 무거움을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어서라는 변명뿐.
그 애는 나의 그 모든 걸 알고서도 사랑을 하던 기억이 있었지만,
그 모든 걸 다시 다 품어달라고 하기엔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가장 잘하는 도망을 쳤다.
마지막 모습은 엄마에게 뺨을 맞은 내가 연락을 해 버려
새벽에 두시간 반거리를 찾아온 그 애가
날 버스에 태워보내곤 창밖에서 애써 웃으며 손을 흔드는 장면이었다.
그 때 그 얼굴을 보고 결심했다.
불행을 옮기는 연애는 더 이상 재미가 없다고. 그만둘거라고.
그렇게 나는 그 애를 버렸다.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는 그 애를 잊기위해
연락처를 지울 수 있게 되길 바라며 그저 버티는 시간들이었다.
나는 찌질한 찐따성향이라 그랬다고 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변명거리가 되는 것은 세상을 처음 걷는 것처럼
7년동안 처음 맛 본 감정과 세상이 너무 많았단 것이다.
간단히 말해 그 애는 내 첫사랑이었다.
솔직히 숫자로 헤아려 봐서 그렇지 내겐 8년이 꼭 8일 정도 되었던 것 같다.
먹고 살기 바빴고, 엄마가 아팠고, 엄마가 죽었다.
8일동안 그런것들을 겪으면서 아 , 정말 잘 도망쳤다 라고 느꼈던 시간도 많았다.
불행과 슬픔을 전염시키기에 그 애는 너무 약했으니까.
그리고 너무 소중했으니까.
그러다 최근에 술을 진탕 마시고 갖고 있던 연락처로 연락을 '저질러'버렸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밥 한번 먹자는 얘기도 오갔지만
결과적으론 이번엔 내가 시원하게 차였다.
솔직히 알고는 있었다.
연락을 하고 다시 붙잡고 울고불고 해도, 다시 잡기엔 사겼던 기간보다 늘어난 떨어진 시간..
그래도 꼭 한번 연락을 하고 싶었다.
적어도 나는 제대로 헤어진 적이 단 한번도 없었기에.
다행인 것은 그 애가 연인도 부인도 없는 빈 공간의 시간에 연락했단 것이었다.
하마터면 굉장한 샹년이 될 뻔했는데 다행인 일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눌 수록 나는 자신이 없어졌다.
붙잡아도 붙잡히지도 않는 추억 속의 안개가 같은 사람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밥먹자는 얘기에 사들인 11만원짜리 가디건은 입을때마다 그 애 생각을 하게될거같아 반품을 하고,
예약했던 좋아하는 레스토랑은 취소를 했다.
남은 것은 아무 약속도 없는 저녁과 다시는 연락하지 않아도 될 이유뿐이었다.
내 첫사랑이 드디어 15년만에 취소되었다.
삶의 한 부분이 조각내어 떨어져 나가 잘려지는 느낌이었다.
실제로도 15년이면 내가 자식을 낳았어도 중학교 2학년이니 말이다. 하하.
조금 울었지만, 그것도 오래 가진 않았다.
마치 모든 걸 예감했던 것처럼
마음을 다듬고 네일아트를 받으러 가 손톱을 다듬어 별을 박았다.
깔끔해진 손톱을 바라보며 아 이제 이 손으로 다른 이의 손을 잡을 수도 있겠단 자신이 생겼다.
번호를 지운다.
잘가.
안녕.
끝.
내 사랑이 이별로 완성되었다.
부디 그 애가 행복하길 바라며, 나도 행복해지기로 했다.
아이유의 노래의 가사가 문득 떠오른다.
수고했어 사랑 고생했지 나의 사랑
도씨의 찐따 사랑 . 수고가 많았다.
+) 현재 도씨의 상태를 짤로 표현하며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