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선명할 수 없더라도
내 발목에는 시들지도 , 더 이상 자라지도 않는 꽃이 하나 심어져 있다.
작은 빨간 튤립 한송이이다.
보일듯 말듯한 크기로 가끔 사람들이 작은 생채기로 오해할 정도이지만
나는 365일 보아도 364일 정도는 소중하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타투를 하게 된 계기는 별 거 없었다.
보통 그렇게 한다는 어렵고 소중한 의미를 새긴 것도 아니었다.
그냥 하고 싶었고, 단순히 우연히 본 SNS의 도안이 예뻐서 했었다.
이유는 없었고 하게 된 핑계는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셨단 이유로 몇 년간 다니던 직장도 때려친 나는
퇴직금과 엄마가 남긴 진단금 , 부조금 등으로 지갑이 두둑해졌다.
그래서 했다.
본인이 하고싶은 거라곤 십분의 일도 하지 못하고 딸 둘 키워낸다고 죽어라 일만 하던 엄마였다.
내 삶의 커다란 존재였던 엄마가 작은 항아리의 한 줌 재가 되어 담기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삶에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만은 하고 싶은 거 다 저지르고 살 거야..
란 다짐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소심함이 작동해 커다란 타투를 완전히 드러나는 팔같은 곳에는 하지 못하고
양말을 신으면 싹 가려지는 발목 부근에 작게 자리잡게 했다.
겁쟁이고 아픈 건 딱 질색이었지만 다행히 크기가 작아 약간 아린 느낌 말고는
큰 아픔 없이 튤립이 새겨졌다.
살은 흙이고 ,
꽃은 꽃이고,
시간은 햇빛이었다.
물을 주지 않아도 항상 선명하고 붉게 피어있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점 살짝씩 번지고 낡아가며 흐려져 물이 빠졌다.
시간이 갈 수록 선명함이 빠져나가는 타투를 보면서
영원히란 것이 죽음 이후까지라면 그 때까지도 내 몸에 있겠구나,
하지만 영원히 선명하게 붉을 수는 절대로 없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아끼는 타투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한 타투라기 보단 , 나에겐 엄마가 남긴 돈으로 내게 심어준
어떠한 상징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과시용이라기 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저지른 일탈의 흔적이자 ,
엄마를 잃은 상처를 덮는 일종의 상징이다.
저질러버리고 나서야 빨간 튤립의 꽃말을 찾아보았더니
'사랑의 고백'이 꽃말이었다.
내 발목 타투의 꽃말은 그래서 영원함은 없다란 하지만 그래도 시들지는 않을거란
'나의 고백'으로 하기로 했다.
오늘도 튤립이 내 발목에 심어져 하늘하늘 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