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를 찾은 부모님과 함께 갈만한 쇼핑처를 찾는 내게 도쿄에서 20년가량 살아온 아이 친구 엄마 H 씨는 내게 스가모를 추천했다.
‘할머니들의 하라주쿠’라…. ‘가와이이 문화’의 발상지이자 젊은 여성의 패션 메카로 여겨지는 하라주쿠처럼, 일본 할머니들의 패션 중심지는 어떤 분위기인 걸까. 구미가 당겼다. 다만 남편은 시큰둥했다. “거기 뭐 있겠어? 우리 동네 주변도 할머니들은 많이 계셔.”
스가모 지조도리 상점가 입구.
부모님과우리의 2호선 격인 초록색 JR을 30분 이상 타고 스가모 역에 도착했다. 지역의 중심인 재래시장 지조도리 상점가로 향했는데 남편의 예언대로 딱히 인상적인 풍경이 나타나진 않았다.
소박한 분위기의 상점들이 이어져있고 할머니들이 많이 계셨으나, 원래 일본은 할머니들이 많은 곳이니 그리 특별하다는 느낌이 들진 않았다. 아빠가 한마디 하셨다. “구시장 같구나.” 구시장은 내 고향의 동네 재래시장이다. 이어진 엄마의 구시장 칭찬. “요즘 구시장이 도로를 정비해서 정말 좋아졌어!”
나는 현해탄을 건너온 부모님께 고향 동네 시장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 드리는 게 좋은 일일까, 잠시 고민했다.
사실 스가모는 할머니들의 하라주쿠나 노인의 놀이터로 불리기 앞서 1988년 스가모 아동방치사건으로 유명했다. 출생신고도 되지 않은 채 방임돼 자란 10대부터 유아까지 다섯 아이가 엄마마저 가출한 뒤 자신들끼리 숨어 살아가다 두 살 아이가 죽고 뒤늦게 유기된 사체가 발견되며 일본 사회에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훗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의 모티브가 됐다. 당시 아이들이 살았던 지역이 스가모였고 한동안 사람들은 스가모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이 사건을 떠올렸을 것이다.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누군가가 만든 ‘할머니들의 하라주쿠’라는 별칭 덕분에 스가모는 좀 더 밝고 귀여운 이미지를 갖게 됐다.
스가모가 ‘할머니들의 하라주쿠’가 된 연유를 생각해 보면 시장 안에 있는 절 ‘고간지’의 존재가 한몫한 것 같다. 도쿄 공식 관광 사이트에 따르면 1596년에 세워진 이 절은 1891년 경 이곳 스가모로 옮겨졌다고 한다. 이 절에 모셔져 있는 불상은 ‘토게누키 지장존’으로 불리는데 에도시대 한 무사의 아내가 바늘을 잘못 삼켰다가 이 절의 불상을 보고 바늘을 뱉어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시장 안에 위치한 절 '고간지'.
그래서 고간지는 건강을 기원하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 실제로 사찰 입구에 둔 향로에는 노인 방문자들의 줄이 이어졌다. 이곳의 연기를 쐬면 아픈 곳이 낫는다는 ‘설’ 때문인지 모두들 향로의 연기를 자신의 몸으로 적극 끌어들이고 있었다.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율동을 하는 것 마냥 노인들은 자신의 몸 구석구석에 잡히지 않는 연기를 붙잡아 뿌렸다. 그게 진실이던 아니던 아프지 않게 해 준다는데 안 하면 손해지. 나 역시 머리 어깨 발 무릎 발 곳곳에 연기를 끌어 묻혔다.
사실 이곳 상점가 상품이 유달리 노인 고객의 구미에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시장의 상점들은 전반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게 특징이었다.
굳이 따진다면 할머니 특화 상품이 많기는 했다. 내 눈에 많이 띈 곳은 가발집이었다. 특히 길지 않은 거리에서 서너 군데의 가발집 겸 미용실을 봤다. 다양한 머리 모양과 머리색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대부분의 가발집에는 사람이 북적거렸다.
언젠가 잡지에서 읽은 배우 윤여정 씨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여성의 노년에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를 묻는 질문이었는데 그는 “노년의 삶에 진짜 필요한 것은 머리털”이라고 말했다. “돈이 있어야 된다, 뭐가 있어야 된다는데 최화정 씨께서 말씀하시더라고요. 선생님, 늙으면 머리숱이 있어야 돼요.”
그리고, 머리털이 어쩔 수 없다면 가발이 있다.
이밖에도 모자 상점을 비롯해 할머니들이 끌고 다니는 바퀴 달린 장바구니, 패셔너블한 지팡이 가게 같은 게 많았다. 중장년 여성을 겨냥한 듯 가벼운 재질 화려한 무늬의 옷가게도 더러 눈에 띄었다. 길을 지나면서 아빠가 또 한마디 하셨다. “여긴 할아버지의 공간은 없구나.”
스가모 재래시장의 빨간 속옷집.
수많은 여행 블로거들에 따르면 스가모 재래시장은 빨간 속옷으로도 유명하다. 일본에서 빨간색은 행운과 장수의 상징이며, 60세 회갑을 맞이하면 아기로 돌아간다 하여 빨간 옷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스가모에서는 드문드문 새빨간 속옷을 파는 가게를 볼 수 있었다. 다만 블로거들의 설명에 비해 큰 열기는 느끼기 어려웠다.
한때 한국에서도 할머니들이 빨간 속옷을 입던 시절이 있긴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고 할머니들도 변한다. 빨간 내복을 구경하자는 내 제안에, 엄마는 가게 입구부터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요즘 누가 빨간 속옷을 입어!”
일본의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1990년대 처음으로 전체인구의 10%를 넘어선 이래 줄곧 증가해 현재 30%를 육박하고 있다.
스가모가 할머니의 하라주쿠로 떠오른 시절엔 아마도 아직 노인들이 빨간 속옷을 선호하던 시절 아니었을까 싶다. 그때의 노인 중 일부는 세상을 떠났지만 일부는 여전히 건강하게 노년을 보내고 있다. 일본에는 현재 1990년대의 두 배인 3000만 명이 넘는 노인들이 살고 있다. 할머니들의 하라주쿠는 스가모 뿐 아니라 도쿄 동네 곳곳으로 확산됐다. 남편의 말대로, 우리 동네에도 할머니들은 많이 계신다.
초고령화로 떠들썩한 시대에 ‘할머니들의 하라주쿠’라는 별칭은 꽤 주목받을 수 있는 네이밍 같기도 하다. 다만 ‘할머니의 하라주쿠’에서 조차 그 선택지가 젊은이들의 진짜 하라주쿠에 비하면 한없이 협소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라주쿠를 오가던 그 시절 젊은이들이 나이가 들고 이제 하라주쿠에서 나이를 구분하는 것이 부질없는 상황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400~500m 정도의 길을 설렁설렁 오갔고, 한 시간 만에 다시 30분간 JR을 타고 돌아왔다. 아빠와 엄마가 돌아오는 길 소감을 말했다. “그래도 당신이랑 내가 저기 있는 노인 중에 중간은 가는구나.” 70대인 아버지는 자기보다 씩씩한 누님과 형님을 보면서 위안과 자극을 받았던 것 같다. 그 정도면 꽤 괜찮은 나들이였다고 자기위안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