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범 할머니들
Tokyo Keyword : 할머니2 おばあちゃん
도쿄에서 수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대학교 때 아주 잠시 수영장을 다닌 후 근 20여 년 만이었다. 수영을 시작하는 데는 아이 친구 엄마의 유산소 운동 권유가 결정적이었다. 세 달간 커브스를 다녔지만 계속 증가하는 체중에 대해 내가 푸념하자 친구 엄마는 “그곳에서 살을 빼는 것은 무리”라고 단언했다. “할머니가 되면, 그때 다시 가세요. 지금은 좀 격렬한 유산소 운동을 할 때에요.”
처음 떠올린 유산소 운동은 달리기였다. 도쿄에서 아침저녁으로 뛰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무리카미 하루키의 후예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꽤 근사했다. 하지만 한창나이에도 100m를 19초에 간신히 돌파했던 나는 상상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 게다가 나는 길치이지 않은가. 자외선은 피부노화에 치명적이기도 하다. 아 그리고 무릎관절은 어쩌나.... 내키지 않은 것일수록 하지 말아야 할 핑계를 찾는 건 쉽다.
그래서 떠올린 게 수영장이었다. 마침 둘째가 동네 수영장에서 강습을 듣기 시작했던 차. 아이가 다니는 수영장은 오후는 모두 어린이들의 공간이었지만 하교 시간 전까지는 성인을 위해 운영됐다. 수영장에서 특유의 염소 냄새가 느껴질 때마다 코를 킁킁거리던 중,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과감히, 등록했다. 토끼처럼 달릴 수 없다면, 헤엄치는 거북이가 되어야지.
아이가 등록한 어린이 수영수업은 한국 태권도장 띠 마냥 수영모자의 색으로 단계를 나눴다. 호흡법과 물에 몸을 띄우는 기초를 배우는 빨강 모자 단계부터, 자유형의 기본을 배우는 노랑, 배영을 배우는 하양, 자유형과 배영으로 25m 레인을 완주하는 주황, 평영을 배우는 초록, 드디어 접영을 완성하는 남색, 아마추어 선수 등급인 검정 단계까지, 무려 7단계의 등급이 존재했다.
그러나 성인반은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내가 등록한 오후 1시 화·금반에는 단 한 개의 수업이 있었고, 이 달랑 하나뿐인 반에 수강생은 할머니 네 분이었다. 첫 만남에서 나는 이분들의 평균 연령을 60대 정도로 가늠했다. 그러나 갈수록 이분들의 연세가 내 상상 이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강습 첫날 처음 만났던 수영장 동료인 T 씨는 은퇴 후부터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나: “오, 그럼 지금 60대 신가요?”
T 씨: “아뇨~ 여기 사람들은 대부분 70대 이상일 걸.”
수영장이라는 공간과 화려한 수영복이 이들을 좀 더 젊어 보이게 해 준 면도 있다. 물속에서 만나는 사이라 좀 더 피부가 촉촉하게 보였고, 수모는 흰머리를 가려주고 늘어진 피부를 좀 더 팽팽하게 당겨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T 씨의 발가락에 칠해진 패디큐어가 수영장 물속에서 반짝거릴 때마다, 발은 노화를 비껴간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역시 피부 노화의 주원인은 자외선이구나.
수영장은 요일별로 다른 강사가 배정됐는데, 강사 역시나 상당수가 중장년 이상 연세가 있는 분이었다. 선수 출신인 우리 반 선생님들은 수영선수 특유의 잔근육을 유지하고 있는 50, 60대 남성이었다. 주로 수업 시작 전 대화는 일상의 가벼운 스몰토크로 시작됐다. 어느 날은 구릿빛 태닝을 한 아저씨 수영 강사가 코로나 2차 예방접종을 한 후 119에 실려 갔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할머니들은 오, 세상에, 저런 같은 추임새와 함께 격한 반응을 보이며, 서로의 건강을 염려했다. 출렁거리는 물속에서는 나는 좀 더 다정한 마음을 느끼곤 했다.
주 2회 총 4주로 구성된 수영 강습은 한주는 자유형 둘째 주는 배영, 셋째 주는 평영, 마지막 주는 접영을 번갈아 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어설픈 일본어에 아직 접영을 못하는 나는 이 반의 부진아였는데 접영뿐 아니라 모든 영법에서 할머니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유일한 강점이 있다면 킥판을 잡고 하는 발차기는 제법 했다. 수업 시작 즈음 힘을 가득 넣어서 첨벙첨벙 가다 보면 할머니 네 분을 제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작에서 그렇게 힘을 줬던 터라 금세 힘에 부쳤다.
수업은 주로 수영장의 2,3개 레인을 넓게 사용해 진행됐다. 나와 주로 레인을 함께 썼던 A 씨는 다른 분들보다는 연세가 있어 보이는 멤버였다. 그러나 수영만은 무척 여유롭게 했다. 덩치가 있는 A 씨가 잠영을 해 물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극지방의 물범을 종종 떠올리곤 했다. 모든 영법에서 대부분 그에게 한참 밀렸던 어느 날 A 씨에게 물었다.
나: “수영 정말 잘하시네요. 수영을 하신 지 얼마나 되셨나요?”
A 씨: “20 년 좀 넘었나? 나, 82 세에요.”
82 세라니. 그러니까 나는, 내 나이의 두 배 정도가 되는 물범 할머니에게 늘 대패를 했다.
할머니들은 수영도, 일본어도 서툰 나를 늘 살뜰히 챙겨주셨다.
“천천히 해요. 방법을 모를 때는 선생님께 다시 물어봐요.” “정 모르겠으면 앞사람을 보고 따라 하면 돼. 늦어도 괜찮아.”
응원도 잊지 않았다.
“젊잖아. 젊으니까 금방 다 배울 수 있을 거야.”
수영을 마친 뒤 로커에서도 다정함이 이어졌다. 할머니들은 가끔 내 등에 묻은 물기를 닦아줬다. 일본의 다른 공간에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이 친근한 접근은 무척 신선했지만 그럼에도 다분히 일본적인 측면도 있었다.
이를테면 나는 그 탈의실 공간에서 할머니들의 완전한 알몸을 본 적이 없다. 한국의 경우 샤워를 한 후 수영복으로 바꿔 입지만 대부분의 할머니들은 모두 댁에서 수영복을 입고 왔다. 옷을 벗고 샤워실에 가는 것 자체가 그곳에선 금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수영강습이 끝난 후에도 사정은 비슷해서, 수영복을 입은 채로 샤워를 하신 할머니들은 이후 거대한 수건으로 몸을 꽁꽁 싸맨 뒤 스르륵스르륵 여유롭게, 그러나 절대 주요 부위는 노출하지 않은 채로 옷을 갈아입었다. 나 역시 가능한 살을 비치면 안 될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아니 이게 뭐라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최대한 몸을 가리기 위해 낑낑대며 환복을 했다.
도쿄에서 세 달 남짓 수영장을 다녔고, 수영에 아주 약간의 재미를 느낄 무렵 귀국했다. 마지막 수업에는 첫날 만났던 멤버이자 이 수영 수업의 에이스인 T 씨만 출석했다. 헤어질 무렵 그는 나에게 운동을 꾸준히 하라고 격려했다. “나 역시 원래 운동을 좋아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생활에서 조금이라도 더 빨리 걸으려고 하고, 조금이라도 자세를 반듯하게 펴려고 노력해요. 처음에는 잘 안 느껴지지만 조금씩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발전해요. 꾸준히 운동하세요. 지금은 젊고, 운동하기 정말 좋은 나이예요.”
그래서 수영장 등록은 서울에 돌아온 내 첫 번째 미션이었다. 도쿄보다 추운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며 수영장을 다닐 수 있을까 망설이긴 했지만, 결국 등록했다. 조용하고 한적했던 한낮 일본의 수영장에 비해 늦은 밤 한국의 수영장은 시끌벅적하며 박력이 넘쳤다. 수영장 규모는 비슷했지만 탈의실과 샤워실 규모는 서울의 수영장이 압도적으로 컸다. 수영장 등록 첫날, 로커 곳곳에 알몸으로 씩씩하게 활보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본 순간 내가 한국에 왔음을 피부로 실감했다.
서울의 밤 9시 실내수영장에는 각 레인별로 스무 명씩 그득그득 찼다. 회사원과 자영업자와 선생님과 주부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모두 물속에서 첨벙거렸다. 차가운 물속에서 모두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됐다. 평영까지 배웠던 나는 초급반에서 하루 만에 중급반으로 진급했으나, 옮긴 반에서 두 세 바퀴 정도 돌고 와선 금세 체력의 한계를 실감했다.
나: “선생님 제가 오랜만에 하는 운동이라… 헉헉… 잠깐만 쉬고… 헉헉…”
강사:“아뇨, 계속하세요.”
대학을 갓 졸업한 듯한 중급반의 강사는 줄곧 소리를 치며 독려했다. “제가 선수 경력까지 10년 가까이 수영을 했는데 잘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요. 많이 하는 것뿐이에요.”
한국의 수영장에서는 빠른 진도로 많은 걸 가르쳤다. 중급반부터는 모두 오리발을 끼고 수업을 했는데 나는 처음 신어본 오리발에 적응이 안 돼 기우뚱거리다 금세 지쳐버렸다. 옆의 상급반에서는 잠수를 배우는지 모두 스킨스쿠버 장비 같은 것을 입에 물고 헤엄을 쳤다. 또 다른 날엔 시합을 준비하는지 초시계를 가지고 입수 시간을 측정하는 모습도 보였다. 60여 명의 사람이 물속에서 정말 치열하게 수영을 했다. 이 다이내믹 코리아. 최근 국제 대회에서 한국 수영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낸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체력부족으로 의도치 않게 다른 이들의 흐름을 끊으며, 움직이는 장애물이 된 나는 결국 이틀 만에 다시 초급반으로 돌아왔다. 초급반은 중급반보다 더 많은 수강생들이 몰려 있어 주로 앞사람의 발장구를 피해 수영하다가 멈춰 서기를 반복해야 했다. 초급반의 강사 역시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강의했지만 그의 목소리가 다른 소음에 묻혀버리는 터라 몇 번씩 눈을 가늘게 뜨곤 했다.
한 시간이 후루룩 지나갔다. 수업이 끝나면 모두 손을 잡고 거대한 원을 만든 뒤, 마지막으로 “파이팅”을 외치곤 헤어졌다. 우리는 아직 젊구나. 다만 유감스럽게도 이곳에서 나는, 젊지 않았다.
이 전투적인 수영장을 얼마나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종종 도쿄의 수영장에서 할머니들이 해준 응원을 되뇌어 본다. 조금씩 조금씩 하다 보면 좀 더 나아지겠지, 나도 언젠가는 할머니 물범이 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