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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치불고 Oct 24. 2024

디즈니랜드의 미아센터

Tokyo Keyword / 도쿄 디즈니랜드

  길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적이 딱 한번 있다. 다름 아닌 도쿄 디즈니랜드에서다. 남편의 도쿄 발령 직후였고, 나와 아이들은 아직 서울에 머물던 시기였다. 도쿄 디즈니랜드 방문은 오랜만의 재회에서 남편이 마련한 이벤트였는데, 처음 가보는 디즈니랜드 대해 기대가 컸던 우리는 개장 전 비교적 이른 시간에 도착했음에도 정문 앞을 가득 채운 어마어마한 인파에 압도당했다. 다만 그 인파 사이에서 아이를 잃어버릴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할머니 미키마우스와 세월에 지쳐 보이는 피터팬, 머릿결 케어가 필요한 라푼젤, 애정행각을 벌이는 주디와 홉스 커플부터 꼬마 엘사와 안나, 풍채가 좋아진 우디와 버즈 등등 광장을 메운 각양각색의 코스프레 인파를 뚫고 디즈니 캐릭터 머리띠를 하나씩 사서 찬 우리는 어색한 행색만큼이나 이 세계의 초보였다.

  뒤늦게 디즈니랜드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하여 더듬더듬 각 놀이기구의 대기 시간을 확인하니 인기 있는 기구들은 대략 한 시간 줄 서기는 기본이었는데 초가을이었음에도 햇볕이 꽤 뜨거워 아이들은 지속적으로 음료를 갈구했다. 적당히 줄을 서는 서너 개 놀이기구를 골라 타니 벌써 점심 즈음. 식당을 찾는 길에 또 자판기 음료를 사겠다고 징징거리는 둘째의 손을 내치며 “밥 먹기 전까진 절대 안 된다”라고 엄포를 놓은 후 앞서 걸었다. 무관심하면 결국 고집부리는 걸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한 행동이었는데, 열댓 발자국쯤 걷고 뒤돌아본 후 둘째가 사라진 걸 뒤늦게 알게 됐다.

 착각이겠지? 이 녀석 장난치나??

 설… 마?!


  이후 20분간 나는 이른바 정신 줄을 놓는 경험을 했다. 신데렐라 성 앞 광장은 그 끝이 어딘지 아득하리만치 넓었고, 무엇보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한국어 포털사이트에는 ‘도쿄디즈니랜드 미아’라는 검색어를 넣자 디즈니랜드 유괴범과 관련한 흉흉한 ‘도시전설’이 떴다. 그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동화 속 세계를 옮겨 온 이 ‘꿈과 마법의 나라’에서 나는 진심으로 거대한 공포를 느꼈다. 결국 어설픈 영어와 더 어설픈 일본어, 손짓 발짓 등을 섞어가며 인근의 도우미에게 둘째의 인상착의를 설명했다.


  이어 그의 소개로 찾아간 ‘마이고 센터’. 마이고(迷子)가 미아를 뜻하는 일본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됐다. 정문 인근에 위치한 이 센터의 직원들은 내게 꽤 구체적으로 아이의 차림새와, 잃어버린 시각과 장소에 대해 거듭 확인했다. 그리고 한 시간 같은 5분이 지났을 무렵, 한국어 통역 도우미의 손을 잡고 미아센터로 들어오는 둘째를 만났다.

  이산가족 상봉 마냥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는 나에게 둘째는 “날 놓고 가면 어떻게 하냐고!” 큰 소리를 쳤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이놈 자슥!” 둘째의 엉덩이를 팡팡 치며 흉한 꼴을 연출하고 말았다.   


  둘째가 자신의 미아 체험(?) 대해 이후 철저히 함구했기에 구체적인 내용을 알지 못한다. 다만 대략 캐물은 바에 따르면 둘째는 수중의 동전으로 음료수를 먹으려고 자판기 인근으로 갔다가 길을 잃었고, 주변 도우미가 당황해하는 아이를 발견해 먼저 다가간 듯하다. 둘째는 당시까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일본어가 “강꼬꾸(한국)”였는데, 그 말 덕분이었는지 이후엔 한국어 통역 도우미가 바로 연결됐다고 한다. 나와 연결이 닿기 전까지 아이는 이 통역 도우미분과 함께 가족을 찾아 주변 공간을 여기저기 찾아 나서는 중이었다고.


  40년 전인 1983년 4월 도쿄만 매립지에 1800억 엔을 들여 건설한 도쿄 디즈니랜드에는 지금까지 8억 명 이상이 방문했다고 한다. 특히 코로나 이전(2018년)에는 하루 평균 9만 명 꼴, 연 3256만 명이 방문했다. 미아 사건을 겪은 후 나는 종종 도쿄 디즈니랜드를 찾은 8억 명 중 미아센터를 방문한 숫자는 얼마나 될까 상상하게 됐다. 앞서 내게 ‘도시전설’을 소개한 나무위키에 따르면 디즈니랜드의 모니터링 시스템은 업계 최고 수준으로 꼽히며 미아가 발생해도 트라우마 없이 보호자에게 돌려보내기 위한 시스템이 잘 돼 있다고 한다. 출처가 불분명한 터라 얼마나 신뢰해도 될지는 모를 문장이지만, 적어도 우리 집 둘째는 길을 잃어버린 후 무섭지 않았었냐고 물었을 때 “전혀”라고 얘기한다. 당시 아이를 보호해 주신 한국어 도우미 분께 거듭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후 우리 가족은 도쿄 디즈니랜드를 다시 찾았다. 도쿄 디즈니랜드는 최근 입장권 가격을 한국 돈 10만 원에 가까운 수준으로 대폭 인상해 원성을 샀지만 여전히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번 방문에서 둘째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자신의 휴대전화를 챙겼고, 우리는 입장 당시부터 혹시 길을 잃을 경우 만날 장소도 미리 정했다. 아이들은 긴 줄에서 몸을 배배 꼬다가 2분 남짓한 놀이기구를 타고 “우아 진짜 재밌다!”를 연발하며 새로운 놀이기구를 찾아 나섰다.

  이날도 이른 아침 출발했던 우리는 폐장 전 불꽃놀이까지 보겠다며 인파 사이에서 까치발로 30분을 보내고 난 뒤에서야 아쉽게 놀이공원을 나섰다. 짜증과 웃음, 아쉬움이 교차하는, 사서 하는 고생. 만보기에 2만 보를 넘겨 기록한 그날 밤, 맥주는 특히 달았다. 그렇게 또 비싼 희로애락을 샀다.   





(커버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LMP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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