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를 읽는다는 것
Tokyo Keyword / 공기를 읽다 空気を読む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다. 절친 H는 나의 과하게 눈치 보는 태도를 지적하며 ‘나는 왜 눈치를 보는가’라는 주제로 책을 쓰라고 농담할 정도다. 안타까운 점은 자주 눈치를 보는데 눈치가 빠르진 못하다는 것이다. 눈치에 있어서 나는, 꽤 바들거리며 노력하는데 타고난 감이 부족하다.
뭔가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자꾸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안절부절못하지만 원인을 파악하거나 해결하지 못한 채 불안해하다가 지쳐버리는 경우가 많다. 눈치를 살피는데 핵심을 깨치지 못하니 더 눈치를 보게 되고 불안이 가중되니 또 눈치를 보고… 눈치의 뫼비우스 띠. 눈치 없이 눈치 많이 보는 자의 비극이다.
일본에서, 그래서 좀 힘들었다. 늘 반듯하고 상냥한 사람들 사이에서 원인을 모르고 눈치를 볼 때가 있었다. 예를 들어 평소와 다른 일본인 아이 친구 엄마의 표정이나 행동을 목격하게 되면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어제와 좀 다른 무뚝뚝함, 그 차이에 뭔가 이유가 있지 않나 싶어 진다. ‘저분, 뭔가 불편해 보이는데? 혹시 그냥 내가 너무 예민하게 의미 부여한 걸까. 아냐, 이 행동, 그 말투, 저 눈빛에… 내가 놓친 뭔가 있는 거 같아. 혹시 어설픈 외국어로 말실수를 했나. 어제 그 말? 그땐 괜찮았는데?! 대체 뭐지?? 혹시, 지금 밥때인데 배고픈가?!’
팔로우하는 계정 중에 하루노라는 일본인 인플루언서가 있다. 틱톡과 인스타그램 등에서 숏츠를 올리며 유명세를 얻은 여성인데, 인스타 알고리즘은 초급 일본어 콘텐츠를 즐겨봤던 나를 그의 계정으로 이끌었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반달형 눈매를 가진, 매력적인 외모의 이 여성은 유창한 영어로 자신의 도쿄 생활을 소개한다. 인기 있는 콘텐츠는 영미권 사람들과 일본인의 대응 방식을 비교하는 숏츠다. 주로 “In Japan we don't say~(일본에서는 ~라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We say~(우리는 ~라고 얘기합니다)” 형식으로 10초 안팎인데, 이런 식이다. “일본에서는 ‘나 놀랐어’ ‘나 너무 놀랐어’ ‘나 진짜 너무 놀랐어’라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해요. ‘에~’ ‘에헤~’ ‘에헤에~!’”(유사 버전으로, 다른 영상에서는 ‘오~’ ‘와아~’ ‘우와아~!’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루노에 따르면 ‘네가 옳아. 전적으로 네 말에 동의해’ 같은 표현은 일본어 ‘네에!’로 대체된다. 그런데 부정적인 의중이 담긴 일부 표현은 영상만 봐선 일본인이 아닌 이들에겐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예컨대 누군가의 제안을 거절할 때 ‘오늘은 어려워요. 그럴 기분이 아니라요. 어쨌든 감사해요’라는 말을 ‘아….’ 같은 짧은소리로 대체한다. 심지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동의할 수 없어’ ‘난 너한테 관심 없어’ 같은 뜻을 전하기 위해 하루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고개를 젓는 게 아니라 고개를 끄덕인다는 게 포인트. ‘아’ ‘에’ ‘오’ ‘헤’ ‘네’ 정도의 단음을 다양한 억양으로 변주하는 것 외에 눈빛과 손짓, 침묵이 소통의 전부이다 보니 “일본인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가” 같은 외국인들의 댓글이 붙기도 한다. 웃자고 만든 숏츠겠지만 그럼에도 많은 이들의 ‘좋아요’ 세례에는 일본인과의 대화에서 비슷한 경험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화인류학자 스튜어트 홀의 고맥락/저맥락 문화이론에 따르면 일본은 대표적인 고맥락 사회다. 홀은 같은 종류의 기대와 경험 배경을 가진 이가 많은 고맥락 문화권에서는 언어를 통해 명확한 메시지를 전하기보다는 무언의 행동으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반면 여러 인종과 민족, 종교가 섞인 저맥락 문화권에서는 언어적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그래서 부정적인 표현을 완곡하게 하기 위해서 말이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 영어가 그렇다. 역시나 알고리즘이 추천한 영문법 사이트 그래머리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이 말에 딱 맞는 숏츠를 봤다. “나는 그게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I don't think that's a good idea)”를 좀 더 협력적인 표현으로 바꾸려면 영어로는 좀 더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하다. “나는 정말 그 건에 대한 네 방향성이 마음에 들어, 하지만 우리가 함께 좀 더 그 건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궁금하네.(I really love where you're going with that, but I'm wondering if we can expound on it a little bit more together)" 확실히 길다.
한국 역시나 고맥락 문화권에 속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척하면 척’ 상황을 우리 역시 자주 접하며 그에 적절하게 대응하길 요구받는다(알잘딱깔센!). 이 때문에 눈치 없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도 흠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그 강도가 세다. 일본어에는 ‘공기를 읽는다(空気を読む)’는 표현이 있다. 한국어의 ‘눈치를 보다’ ‘분위기 파악을 하다’와 유사한 표현인데, 그보다 좀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예컨대 일본문화와 관련해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에는 본심, 혼네(本音, ほんね)와 겉모습, 다테마에(建前, たてまえ)의 차이에 대한 게 많다. ‘일본인은 겉과 속이 다르다’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보다는 타인을 배려하고자 직설적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터부시 하는 문화라고 느꼈다.
초창기 일본어 회화를 배울 때 내게 일본어 선생님은 맛없다는 뜻의 ‘마즈이’(不味い)라는 단어를 알려주면서도, 보통 직접적으로 이 표현을 쓰진 않는다고 했다. 그저 ‘좀…’(ちょっと) 정도면 충분하다고. 물론 내 넘치는 표현 욕구는 그 말을 그냥 넘어가지 못했다. ‘흠, 그럼 진짜, 진~짜 맛이 없다는 걸 표현하고 싶을 땐 어떻게 하나요?’ 선생님이 제안한 답은, ‘맛있지 않다’(おいしくない)였다.
일본어에는 여성어와 남성어가 구분되는 것이 많은데 여성이 쓰는 언어 가운데는 좀 더 제한이 많다. 당시 선생님이 유독 예의 바르신 분이어서였을 순 있다. 실제로 예능방송에서는 종종 마즈이라는 말이 들리기도 했다. 물론, 선생님은 예능에서 쓰는 말은 실생활에서 어설프게 쓰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셨지만.
그러니까 이 나라에선, 말이 많고 직설적인 것은 다소 배려심이나 예의가 없는 것이며 그 반대는 미덕으로 여겨진다. 오죽하면 헬로키티에겐 입이 없지 않나. 헬로키티를 만든 산리오의 창업자 츠지 신타로는 “키티의 입이 없는 것에는 자상함과 배려는 입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태도로 보여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라고 했다.
문제는 이 조용한 배려심이 때로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오해를 막기 위해 시간과 감정을 더 쏟아야 할 때도 있다. 더불어 나는 종종 이런 공기를 읽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일본의 구성원 모두를 너무 조용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자주 생각했다. 아무리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라도 모두가 침묵을 지키는 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눈치를 많이 살피는데 눈치 없는 외국인에게 공기 읽기란 너무 어려워 숨 막힐 때가 있을 정도다. 공기는 그저, 숨 쉬는 데만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