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효상아, 자냐?
너희 집 앞인데, 잠깐 나올 수 있어?”
1. 새벽 3시다. 승기의 목소리다. 무슨 일이 있나? 처진 목소리다. 맞다, 얼마 전에 전화로 알 수 없는 소리를 한 적이 있다. 대상을 알 수 없는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이었다. 정말 무슨 일 있는 것 아니겠지? 아니다. 승기는 원래 말할 때 차분한 목소리다. 사람의 마음은 참 얄궂다. 처진 목소리나 차분한 목소리나 듣는 기분에 따라서 매한가지다. 그러고 보면 모든 게 듣는 사람 위주다. 말하는 사람의 의도는 중요치 않다.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화자 중심의 화법이 아닌 청자 중심의 화법으로 의사소통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꼭 그래야만 하나? 뭘 그렇게나 듣는 사람을 배려하면서 대화를 이끌어야 하는지 가끔 혼란스럽다. 왜들 이처럼 피곤하게 살아가라 하는지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의문이다. 나라님들만 봐도 그렇게 살지 않는다. 정치판이 대표적으로 청자 중심을 가정한 화자 중심 화법으로 의사소통하는 곳이 아닌가? 다들 눈치 좀 그만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승기가 부러울 때가 많다. 승기는 대표적인 화자 중심 화법의 장인이기에 그렇다. 새벽 3시에 나오라니? 승기답다.
“승기야, 무슨 일인데? 이 시간에 여기까지?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2. 빌어먹을, 승기처럼 말하기는 텄다. 뭘 잠깐만 기다려? 새벽 3시다.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어야지. 전형적인 청자 중심의 화법이다. 때로는 싫으면 싫다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싶다. 그래, 자연처럼 직설적으로 말하고 싶다. 창문 너머 보이는 작은 바람에도 심하게 흔들리는 앙상한 나뭇가지를 보라. 작년 가을에 붉은빛의 파스텔로 그린 생생하고 화려했던 그러데이션 세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누군가와 이별로 슬픔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노년이 되어 삶의 거추장스러움을 걷어내고 싶었을까? 아니면 다가오는 유행에 어울리는 옷을 장만하고 싶었을까? 언어 체계가 사람과 다르기에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자연은 본연[71]의 변화를 바로 알려준다. 직설적이며 솔직하다. 자연은 엄살을 부리지 않는다. 자연은 허세도 없다. 만약 자연이 가식적이라면 가식 자체가 본연의 모습이다. 인간과는 참 다르다. 승기는 자연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을지도.
아프면 아프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화나면 화난다고
기쁘면 기쁘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하면 어른이 될 수 없는가?
3.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기는 어렵다. 그러려면 받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난 대중매체에서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라고 떠드는 컨설턴트를 사기꾼이라 생각한다. 누가 그것을 몰라서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 게 아니다. 누가 그것을 몰라서 우유부단한 게 아니다. 누가 그것을 몰라서 상대방에게 끌려다니는 게 아니다. 누가 그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알아도 그럴 수가 없는 거다. 그럴 수가 없다고. 너희는 말을 들어주는 이가 많으니 꿈보다 해몽이 좋은 거다. 우리처럼 들어주는 이가 없다면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할수록 골방에 갇혀 벽을 벗 삼아 혼잣말하는 자신을 만나게 될 거다.
그래서
아파도 이겨내고
슬퍼도 이겨내고
화나도 이겨내고
힘들어도 이겨내려 한다.
우린 자연이 아니니까.
4. 주섬주섬 옷을 입고 1층으로 내려왔다. 승기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다. 공기가 차다.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린다. 웬 까마귀냐고? 계절이 겨울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겨울이 다가오면 까마귀 소리로 머리가 지끈거린다. 특히, 새벽의 까마귀 소리는 을씨년스럽다.[72] 놀이터 그네에 앉아 있는 승기가 보인다. 승기를 비추는 놀이터 전등은 고장이 난 것 같다. 깜박깜박한다. 그러고 보니까 놀이터까지 오는 길을 비추는 전등의 불도 꺼져있다. 시설관리가 엉망이네. 까마귀들 때문인가? 승기가 보인다. 그네에 앉아 있다. 멀리서 보아도 떨어져 있는 담배꽁초가 여러 개비다. 아마도 나한테 전화할지 말지를 고민한 것 같다.
to be continued....
[71] 본연(本然): 자연 그대로의 상태, 본디 그대로의 모습.
[72] 을씨년스럽다: 날씨나 분위기 따위가 몹시 스산하고 쓸쓸한 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