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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6: # 트리거 5화

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by 카테난조





Episode 6:

# 트리거 5화





18. 공인중개사에게 연락이 왔다. 공인중개사와 같이 차를 타고 매물을 보러 가는 중이다. 아내에게 같이 가자고 했지만 바쁜 일이 있는지 거절한다. 그 정도는 알아서 해결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 이 정도는 나 혼자 충분하지.



“사장님, 정말 운이 좋으세요. 현재 집주인은 해외에 거주 중이에요. 당분간 한국에 들어올 생각이 없어서 그런지 장기간 이곳에 머물 세입자를 찾고 있어요. 이전 세입자와 관계도 좋아서 크게 문제도 없었고요.”


“이전 세입자는 어디로 갔습니까? 이 동네에서 이런 집을 구하기가 어려울 텐데요?”


“아 이전 세입자분은 지방발령으로 미리 이사했어요. 아직 계약 기간은 두 달 정도 남았거든요. 나가면서도 많이 아쉬워했어요. 사장님도 아시다시피 이 가격에 이런 전세물 이 동네에서는 없어요.”


“그러게요, 제가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19. 중개사를 따라 곧 계약할 집으로 들어갔다. 중개사 말대로 현재 사는 곳과 크기는 같은 것 같다. 다만, 연식이 된 빌라이기에 여기저기 손 볼 곳이 필요하다. 혼자 보내기는 불안했는지 아내는 문자로 집을 볼 때 확인해야 할 목록을 보냈다. 이렇게나 확인해야 할 목록이 많았던가?



“여보, 아무리 급해도 확인은 해.”


1. 햇빛

2. 누수

3. 천장이나 벽 등에 곰팡이 흔적

4. 물의 배수

5. 싱크대, 수납장, 욕실 파손 검사

6. 냉장고 위치

7. 세탁기 위치

8. 베란다, 빨래 건조할 공간

9. 천장 높이(장롱)

10. 방범시설(방범창, 방충망, CCTV)

11. 환기

12. 주차장

13. 아이 학교와 가까운지

14. 대중교통

15. 편의시설

16. 층간소음

17. 소유자 확인 및 근저당 금액




20.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아내와 집을 보러 다닌 적은 없었다. 집 보러 다니는 일을 둘이서 함께 한다는 게 비효율적으로 느끼기도 했다. 게다가 집은 더는 내게 사적 공간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래서 불편하다. 물론, 이는 안정감과 별개의 문제다. 아이와 아내가 있어야 비로소 하나라는 느낌을 받아서다. 어느 새부터인가 서재는 아이의 놀이터로 변한 지 오래다. 아내는 서재에 수북하게 쌓였던 책을, 나의 정체성을, 공간이 좁다며 중고서점에 팔아 버렸다. 거실을 나가봐도 아내와 아이의 흔적뿐이다. 안방은 아내의 옷과 화장품으로 즐비해 있다. 냉장고는 아이의 먹거리와 아내의 흑염소로 터질 것 같다. 몸에 열이 많다고 아내는 흑염소에 손도 못 대게 한다. 치사해서 안 먹는다. 도대체 이 넓은 공간에 내 사적 공간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욕실 문틈 사이로 갈 곳을 잃어 어색한 자리에 놓인 전기면도기가 비웃으며 말하는 것 같았다.



“이게 네가 말하는 행복이냐?

어차피 숨 쉴 공간도 없는 이 집에서?

네 인생 참 딱하다. 딱해.”




21. 가족의 소중함을 알 리가 없는 전기면도기의 비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쓰레기통에 바로 버렸다. 하지만 이내 아내의 얼굴이 떠올라 쓰레기통에 던진 전기면도기를 다시 꺼냈다. 가는 날이 장이었던가? 전기면도기에 걸려 딸려온 아내의 수북한 머리카락. 정말 더럽다. 이게 내 정확한 위치일지도. 그때부터다. 집은 내가 아닌 아내와 아이를 위한 공간이라 생각했다. 굳이 함께 집을 보러 다닐 필요가 없었다. 아내와 아이만 좋으면 그것으로 된 거다. 정말로 그것으로 된 거다.



“사장님, 집은 마음에 드세요? 한번 찬찬히 확인해보세요. 그리고 웬만하면 오늘 확답을 주는 게 좋아요. 사장님이 오늘 거절하면 바로 다음 분 보여줘야 해서요. 아시겠지만 이런 조건에 이런 매물을? 이 동네에서? 어림없어요.”


“네, 알겠습니다.”




22. 은인과 같은 중개사의 재촉이 오늘따라 아내의 잔소리처럼 들린다. 사람 마음 참 간사하다. 화장실 들어가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니까. 어제의 멘토링이 오늘은 잔소리로 들리니 말이다. 주섬주섬 아내의 문자를 다시 확인한다. 그동안 아내는 혼자서 이 많은 것을 다 확인했던가? 일단, 매물은 반지하층이다. 이 사실을 방금 알아서 좀 당황스럽다. 미리 좀 말해주던가? 하긴 중개사가 말을 한들 내 결정은 달라지지는 않았을 거다. 벽면에 누수 흔적과 곰팡이가 보인다. 좀 시큼한 냄새가 난다. 도배가 필요하다. 불행 중 다행인지는 몰라도 창문 방향은 주차장 쪽이다. 여름에 창문을 열어도 사람들의 시선과 마주하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창문에 방충망만 달려 있기에 방범창을 설치해야겠다. 욕실과 싱크대의 배수시설은 문제가 없는 듯하다. 물은 잘 나오고 잘 빠진다. 냉장고와 장롱이 들어갈 공간은 충분히다. 베란다는 없다. 베란다 공간까지 확장해 거실로 쓰고 있다. 세탁기를 화장실에 놓아야 한다. 아내가 싫어할 듯싶다. 아니면, 거실에 소파, 에어컨, TV 위치를 먼저 자리 잡고 남은 공간에 세탁기를 놓아야겠다.



“세대 수와 비교하면 주차공간은 협소한 것 같습니다.

세대마다 주차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사장님, 그 문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 위에 공터 보이시죠? 다들 저기에 주차하세요. ”




23. 빌라에 살다 보면 노력하지 않아도 거주민과 친해질 수밖에 없다. 주차문제 때문이다. 주차공간이 협소하면 아침마다 차를 빼 달라는 전화로 불이 난다. 행여라도 뒤에 주차한 차를 막은 채로 외출하게 되면 얼굴을 붉힐 일도 가끔 생긴다. 선착순으로 주차하면 모든 게 좋아질 것 같지만 이는 세대 간 싸움만 부추길 뿐이다. 퇴근 시간과 출근 시간이 다른 세대라면 항상 밖에다가 주차해야 하는 불편함을 겪어야 한다. 그 불편함은 불법 주차이다. 게다가 세대 중 운행이 거의 없는 차도 있다. 한번 주차하면 몇 주 동안 그 자리에 있다. 덕분에 처음부터 없는 공간이라 생각해야 한다. 이것도 정말 화딱지 나는 일이다. 그렇기에 모든 세대가 주차하기가 어려운 경우라면 세대별로 날을 정해 다른 곳에 주차하기도 한다. 즉, 번갈아 불법 주차한다는 뜻이다.



모두에게 불법을 요구해 잠재적 범죄자를 양성하는 결정을 합리적인 해결책이라 믿는 우리. 하지만 누구도 이를 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이 아닌 집단의 형성을 통해 스스로 정의롭다고 믿어서다. 일그러진 정의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소리 없는 총성만 난무할 뿐 아무도 질 수 없다. 정의는 애초에 하나가 아니니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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