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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6: # 트리거 4화

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by 카테난조




Episode 6:

# 트리거 4화




15. 한순간에 말콤 글래드웰과 팀 하포드에 버금가는 최고의 멘토처럼 느껴진다. 대중매체에서 매일 떠들어 세간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멘토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어차피 만나기도 어렵다. 또한, 20대에게나 통용할만한 무책임한 감성적 멘토링이 필요한 나이도 아니다. 부동산 정책이 바뀌면 뭐하나? 정권이 바뀌면 뭐하나? 어디에서도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다. 나의 문제를 직접 어루만져줄 사람이 곁에 있었으면 한다. 매물에 관심이 있냐고? 관심이 있다마다. 당신은 구세주다. 누가 채가기 전에 당장 말해야겠다. 오늘부터 당신을 나의 멘토로 임명합니다.



“정말요? 그런 매물이 있습니까?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럼 언제쯤 매물을 볼 수 있을까요?

아시다시피, 다음 달에 바로 이사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 주로 내로 사장님께 다시 연락할게요.”





16. 좋은 소식을 알리고 싶어 집으로 바로 왔다.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이 시간에 어디를? 보통 집에 있을 시간인데? 아이도 안 보인다. 학원에서 돌아오지 않았나 보다. 집에 오면 아이들과 아내가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익숙한 장면을 놓친 기분이다. 텅 빈 집에 덩그러니 혼자 있으니 거실에 놓인 소파가 오늘따라 무척 커 보인다. 난 이렇게 큰 공간에 살고 있었던가? 혼자였다면 이곳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아이와 아내가 어서 빨리 집으로 왔으면 한다. 적막함을 찢을 뱃고동 소리가 가득하여 이 집이 시끄러웠으면 한다. 내게 말을 걸지 않아도 된다. 눈빛을 맞추어 웃어주지 않아도 된다. 아이와 아내의 체취가 섞여 내 코를 자극한다면 그것으로 잘살고 있다는 위안을 받는다. 현실의 무정함을 나의 부족함으로 깨닫게 된 아내, 그리고 엄마와 아빠의 불편한 동거가 영원할 거라고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는 사춘기 아이, 이들 앞에서 행여라도 불안한 마음이 들킬까 봐 입을 닫은 나, 우리 가정은 그렇게 화목하다. 누군가는 우리 가정의 현실을 깊은 갈등으로 곪을 대로 곪아 터지기 일보 직전이라 말할지 모른다. 깊은 갈등의 고름은 손쓸 새도 없이 터져 악취가 사방에 진동하리라 예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말이다. 그런데도 난 지금이 좋다. 문제점을 끄집어내어 헤집는다고 해묵은 감정의 실타래가 바로 풀리지 않는다. 얽히고설킨 감정의 실타래는 풀려할수록 더욱더 강하게 꼬일 뿐이다. 강하게 묶일수록 그만큼 단단한 거다. 단단한 묶임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여기저기 새어 나오는 서운함, 실망감, 미움 등의 악취를 막으려 땜질한 게 보인다. 굳이 아무도 모르게 땜질해 정리한 감정을 들추어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가게 하는 게 누구를 위한 해결책인가? 말하지 않고 마음에 묻었다면 그것으로 서로 배려한 거다. 그렇게 가족은 얽히고설킨다. 세상이 말하는 보여주기 식의 화목함을 말하는 게 아니다. 진정한 화목함은 해묵은 감정의 실타래가 풀리지 않을 때 발현[80]한다.



“오천만 원을 구하지 않고, 현재 전세자금으로 이사할 수 있을 것 같아.

11번째 들린 공인중개소에서 하나 남은 매물을 소개해줬어. 곧 연락을 다시 준대. 다행이야.”


“혹시, 살림살이를 줄여서 가야 해?

나도 좀 알아봤는데, 현재 전세자금으로 근처로 이사하려면 작은 곳밖에 없는 것 같아.”


“아니야, 지금과 같은 평형이야.”


“그래? 그럼 다행이네.”






17. 아내가 돌아왔다. 그렇다고 서로 웃으면서 안부를 묻지는 않는다. 아내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전했다. 아내는 해결했으면 됐다는 표정으로 더는 묻지 않고 바로 안방으로 들어간다. 아이가 돌아왔다. 여느 때보다 일찍 귀가한 아빠에게는 관심이 없다. 가벼운 목 인사 후 핸드폰만 보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여전히 거실에 혼자 있다. 하지만 더는 소파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더는 이 공간이 낯설지 않다. 방문을 닫았기에 아내와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는 모른다. 안방과 아이 방에서 흘러나오는 크고 작은 소음과 이들의 체취가 문틈으로 삐져나온다. 그렇게 하나가 되었다.



적막함을 찢을 뱃고동 소리가 가득하여 이 집이 시끄러웠으면 한다. 내게 말을 걸지 않아도 된다. 눈빛을 맞추어 웃어주지 않아도 된다. 아이와 아내의 체취가 섞여 내 코를 자극한다면 그것으로 잘살고 있다는 위안을 받는다.



to be continued....



[80] 발현 (發現·發顯): 숨겨져 있던 것이 드러남. 또는 그리 되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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