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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6: # 트리거 6화

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by 카테난조



Episode 6:

# 트리거 6화





24. 아이가 도보로 통학할 수 있는 위치여야 한다. 아내에게 제일 중요한 문제다. 다른 조건은 안 좋아도 이 조건은 충족해야 한다. 걸어서 13분 정도 걸으면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보인다. 다만 지하철까지는 걸어서 20분 이상은 걸리는 듯하다. 바로 앞에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다. 장은 주로 대형마트에서 본다. 근처에 작은 마트가 있는지 확인하면 될 것 같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위치와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마음에 드는 집입니다.

다만, 집주인에게 도배와 방범창 설치를 요구할 수 있을까요? 누수 문제도 있어 보입니다.”

“사장님, 집주인이 해외 거주 중이라 연락이 잘되지 않아요. 연락은 하겠지만 아마 안 해 줄 거예요. 아시다시피 이 조건을 현재 가격으로 거래하는 게 힘들고요. 집주인으로서는 들어올 사람이 넘치는데 굳이 보수하고 싶지 않을 거예요. 워낙 싸게 들어온 매물이에요. 아쉬워도 우리가 더 아쉽잖아요. 도배와 방범창 설치는 자비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누수 문제는 확인해볼게요.”




25. 혼자 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집 안 곳곳 사진을 찍어서 아내에게 전송했다. 아내는 답이 없다. 답답하다. 벌써 10분이 지났다.



“사장님, 결정하셨어요?

오늘 계약 안 하면 다른 분 보여줄게요.”

“아내의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나보고 결정하라고 한다. 정말 나보고 결정하라고? 아쉬운 마음에 아내에게 전화했다.



“보낸 내용은 제대로 확인한 거야? 나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지만, 당신과 아이는 다르잖아. 중개소에서 오늘 결정해달라고 하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당신 생각은 어때?”

“지금 바쁘니까, 알아서 결정해. 그럼 끊어요.”




26. 바쁘다고? 집 구하는 것보다 바쁜 일이 또 있다고? 다시 전화해 뭐라 하고 싶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기억나지 않았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다. 지금 아내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살갑게 다가와 의견을 묻는 아내의 얼굴에 차가운 물을 끼얹은 사람은 바로 나였다. 서울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남편과 아버지로서 꿋꿋하게 버티려면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려야 한다. 눈을 뜨자마자 경쟁으로 내몰리기에 노력하지 않아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10분만 기억할 수 있다면 초라하게 만드는 모든 기억을 강제로 간직하지 않아도 된다.



쇠사슬을 끊고 심연의 괴물이

탈옥한 첫날이다.


오늘을 기억해야 한다.


10년이 지나도

생생한 기억이기를 바란다.


꼭 그래야 한다.





27. 억지로 떠밀려, 쏘아보는 아내의 매서운 눈초리가 싫어서, 사회에서 강요하는 남자가 되려고, 조금은 그렇게 보이려고 집을 보러 나섰다. 중개소를 다니며 집을 보러 다닐 때만 해도, 뭐하나 즐겁지 않은 서울 생활을 아내와 아이를 위해서 유지해야 하는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서울을 떠나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갈 명분은 없었다. 이번 기회를 내심 명분이라 속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마음이었다. 서울은 더는 우리를 반기지 않는다고. 11번째 들른 중개소에서 적당한 매물을 들었을 때, 서울을 떠나는 날이 오늘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불행 중 다행인가? 온몸은 간지러운데, 정확히 어디가 가려운지 알 수 없는 심정이다. 적어도 사회가 요구하는, 아내가 바라는 남자 역할은 충분히 해낸 것 아닌가? 그래, 그 정도면 됐다. 하지만, 이 소식을 빨리 전해주려고 일찍 귀가해 아이와 아내를 기다리는 동안, 아내의 문자로 이사할 집을 확인하는 동안, 나는 몰랐다.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내와 관계 개선도,

서울 생활도,

오월동주[81]이기에

연목구어[82]에 불과하다고 믿었다.




28. 시원함을 넘어서 불쾌한 두통을 유발하는 아내의 차가움, 굳이 이유를 알고 싶지 않았다. 사는 게 팍팍해서다. 굳이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다. 해결책이 없는 대화는 스스로 비참하게 만들어서다. 이사 갈 집을 구석구석 체크하면서, 문득 알게 되었다. 결국, 원인은 나의 태도였다고. 이사철이 다가오면 쉬는 날마다 집을 보러 다니자고 애원했던 아내의 청을 모른 척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쉬고 싶다는 핑계로. 생각해 보면 꽤 오랜 시간을 아내는 혼자서 집을 보러 다닌 것 같다. 이사하기 한 달 전에 알아보면 될 일을 몇 개월 전부터 유난 떠는 아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동안 아내가 집을 보러 다닌다는 핑계로 이곳저곳 다니면서 취미생활을 즐긴다고 믿었다. 아내가 확인할 내용을 문자로 보내지 않았다면, 현재 거주하는 공간이 얼마나 까탈스러운 조건을 통과한 노력의 자리인지 절대로 몰랐을 거다. 혼자서 집을 보러 다녔을 때, 기분은 어땠을까? 괜스레 미안해진다.



더운 날이면 아이스크림을 건네고,

추운 날이면 손난로 쥐여 주면서,


짜증이 밀려오는 날이면 싱거운 농담을 던지면서,


상쾌한 날이면 희망찬 내일을 그리면서,


몸이 무거운 날이면 그녀의 팔과 다리가 되어서,


같이 다녔어야 했었다.

그렇게 해야 했었다.




29. 아내의 입술을 시작으로 내 몸을 따스하게 감쌌던, 감미로운 그녀의 응원이 사라진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단지, 아내의 침묵은 경제적 무능함에 대한 모멸감이라 생각했다. 이해는 해도 마음은 서운했다.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이렇게나 차갑게 변해버린 아내에게 실망했다. 아니었다.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끊임없이 손을 내밀고 있었다. 아내의 언어는 해독하기 어려운 암호가 아니었다. 듣지 않으려 귀를 막았다. 손을 잡기 싫어 뿌리쳤다. 보기 싫어 눈을 감았다. 아내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 나의 부족함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져서다. 깨닫는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그렇지는 않다. 효상이와 우현이, 그리고 강의하면서 학생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내일 죽을 확률보다

10년을 더 살 확률이 통계적으로 훨씬 높아.

10년 후, 미래의 너에게 미안할 행동을 오늘 하지 말아라.”



그녀와 아직 함께할 날이 더 많다. 더는 바보같이 그녀에게 미안할 행동을 하지 않으련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오늘이 아닌 내일을 그리면서 살아가고 싶어서다. 그러려면 오늘 부동산 계약을 마무리 짓는 게 중요하다.



“네, 계약하겠습니다.”


to be continued...



[81] 오월동주(吳越同舟): 사이가 나쁜 사람끼리 같은 장소나 처지에 함께 놓임. 또는 서로 반목하면서도 공통의 곤란이나 이해에 대해서는 협력함의 비유.

[82] 연목구어(緣木求魚):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하듯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하려고 함.



https://youtu.be/SmP0XwwDMwI



투덜투덜 다락방 연구소(투다연)는 두 남자(난조쌤과 김 과장)가

만들어 가는 경영전략 이야기입니다.



투덜투덜 다락방 연구소(투다연)에서는

경영전략의 SM process와 비즈니스 영어를 접목해 다양한 관점으로

실무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각색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너무 어렵지도 그렇다고 너무 쉽지도 않은 깊이로

진행하는 투덜투덜 다락방 연구소



영어공부와 경영전략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즐겁게 시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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