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말은 늘 어렵다.
아내가 병원에서 일하며 쓰는 말들을 들으면
나는 늘 무심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오늘 BP 떨어진 환자 있었는데,
IV도 잘 안 잡혀서 진짜 힘들었어.”
퇴근한 아내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거… 심각하네. 근데 BP가 뭐더라?”
아내는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피식 웃었다.
“또 몰라?”
“그거… 비밀번호 아냐? BP1234 이런 거?”
그날 밤, 나는 또 하나의 간호사
세계 용어를 새로 배웠다.
BP는 혈압이다.
아내는 오늘 하루 종일 '떨어지는 혈압'과
'잘 안잡히는 혈관'과 싸우느라 지쳐 있었다.
나는 간호사의 남편이다.
그녀는 환자의 상태를 숫자로 말하고,
약 이름을 암호처럼 외운다.
PRN, IV, NPO, Foley… 처음엔 무슨
외계어인 줄 알았다.
"나 오늘 PRN으로 진통제 줬는데도
안 들어서… IV 다시 잡느라 진땀 뺐어."
"…그걸 왜 나한테 자랑하듯 말해?"
우리 부부는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가끔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는 간호사로서의 하루를 이야기하고,
나는 남편으로서의 하루를 듣는다.
때론 그 말들이 내겐 복잡한
의학 교과서 같지만,
그 속에 담긴 감정만큼은 번역 없이도 통한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
무심히 던진 말 속에 담긴 걱정.
환자의 고통에 함께 무너지는 마음.
그리고, 그걸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며
털어내는 그녀의 씩씩함.
나는 이제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IV는 정맥주사고, NPO는 금식이고, PRN은 필요시.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녀가 ‘오늘 정말 힘들었어…’ 하고 말할 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저,
“오늘 고생 많았어. 따뜻한 밥 먹자.”
라는 단순한 문장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