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는 자리
아내는 예전부터 말하곤 했다.
“고참이 되면 일이
조금은 편해질 줄 알았어.”
신규 시절, 매일이 버거웠단다.
낯설고 서툰 기술, 긴장된 매 순간.
환자 상태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반응들 속에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자신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고 한다.
그 시절이 지나,
중간 선생님이 되었을 땐
또 다른 무게가 생겼고,
신규 간호사들을 챙기고,
윗선과 조율하며,
이쪽저쪽 눈치를 보느라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친다고 한다.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래서 지금은… 좀 나아졌어?”
아내는 잠시 뜸을 들인 뒤 말했다.
“고참이 되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결국 책임은 내 몫이더라.”
이제 아내는 병동을 가장 먼저 돌아본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먼저 환자 곁으로 다가간다.
손길은 능숙해졌지만,
마음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아내가 일하는 곳은 암 병동이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중심정맥관을 달고 있지만,
가끔은 말초주사를
놓아야 하는 순간도 있다.
환자들의 지친 혈관은 쉽게 숨고, 약해진다.
주사 한 번 놓는 일조차
조심스럽고 고된 일이라고 한다.
동료 간호사선생님들이
몇 번의 시도 끝에 실패했을 때,
아내는 조용히 대신 들어간다.
“그럴 땐… 진짜 떨려.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
그 말 한마디 속엔
보이지 않는 책임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무게를
모두 이해할 순 없지만,
그 자리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건 안다.
그 무게를 묵묵히 견디며,
조용히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내 아내.
그것이 바로 지금, 내 아내의 모습이다.
나는 오늘도 그런 아내를 바라본다.
자랑스럽고, 고맙고,
참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누군가의 하루를 책임지는 자리,
그 무게를 감당하며 묵묵히
서 있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있기에,
세상은 오늘도 조금 더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