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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유림공원에서

국화 꽃 필 무렵

by 필경 송현준


바람 한 줄기에도

고개 숙이는 계절,
유림공원 끝자락에
늦게 핀 국화 몇 송이.


누군가는 이미 다녀간 자리,
누군가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


가장 고요한 색으로
가장 늦게 피어난 그 꽃 앞에서
나는 오래, 멈춰 있었다.


누가 먼저였는지
무엇이 옳았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은 듯.


그저,
피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한 날이 있더라.


그리고 문득,
이 계절을 오래 품었던 것들이
언제부터 지기 시작했는지를 생각했다.


국화는 끝이 아니라
어쩌면, 아주 조용한 시작.


지나온 것들과
아직 오지 않은 것들 사이에서

나는 지금, 피고 있을까
지고 있는 걸까.


그러나
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나온 계절은 헛되지 않았음을,

국화는 아무 말 없이 말해준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다 지지 않은 마음 하나
가슴 한켠에 남겨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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