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자연과 나

봉숭아 물들이기

가을 의식(儀式)

by 정담은그림

매년 봉숭아 물을 들였었다.

길가에 피어있는 봉숭아를 서리(?) 해서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이곤 했다.

작년엔 직접 봉숭아를 심어 꽃까지 피웠지만, 엄마가 갑작스레 하늘나라로 가신 후 작업실에 버려진 봉숭아도 함께 떠났다.

bong-11.jpg?type=w1 작년에 심었던 봉숭아 (2021.9.18)


그게 벌써 작년 이맘때의 일이었다.

bong-8.jpg?type=w1 봉숭아와 지렁이 이야기


봉숭아는 음력 5월경에 물들인다는 유래가 있는데 봄에 일찍 심어 6, 7월 경이면 꽃이 피기 때문일 것이다.

bong-9.jpg?type=w1 거리에 심어진 봉숭아 (2022.7.3)


올해 7월 초 길가에 활짝 핀 봉선화를 보았고, 뒤늦게 생각나 봉선화 씨를 사서 심은 것도 7월이었다.

bong-10.jpg?type=w1 올해 7월에 파종한 봉숭아 4개가 싹튼 모습 (2022.7.11)

늦은 파종으로 봉숭아 씨앗 5개를 심었지만, 콩나물처럼 웃자라더니 결국 죽고 말았다. 봉숭아 물을 들여야 할 시기에 봉숭아를 심었으니 제대로 클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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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봉숭아 물들이기를 포기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길가에 아직 건재한 봉숭아들이 많았다.

bong-5.jpg?type=w1 길가의 봉숭아 (2022.10.4)

9월 말인데 꽃은 물론 열매도 많이 달고 있었다.

내년을 기약하며 봉숭아 씨를 받아 가려고 열매를 따자 톡 하고 터지는 씨앗들.

아, 노래에도 있었는데, 손대면 톡 하고 터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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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대면 톡 하고 터지는 봉숭아 열매


엄마가 있는 추모공원 주변에 농가에도 아직 봉숭아가 자라고 있었다.

도심이 아니라 그런지, 손대는 이들이 없어서 그런지 봉숭아가 엄청 크게 자라 있었다.

bong-4.jpg?type=w1 농가의 봉숭아 (202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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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쓩 날아가 버린 씨앗

아직 남아있는 꽃과 잎 그리고 씨를 받아가지고 왔다.

엄마도 없고, 나 혼자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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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도 충분히 들일 수 있다.

오른손 엄지와 검지는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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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때까지 봉숭아 물이 손톱에 그대로 남아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던데, 지금 들였으니 12월은 물론 내년까지도 건재할 것이다. 하지만 내 첫사랑은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해 잘 살고 계시고, 나도 그런 속설을 믿을 나이는 이미 지났다.


그래도 가을을 맞아 손톱에 봉숭아 물들이는 일은 호호 할머니가 되어서도 계속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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