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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은그림 Aug 26. 2022

마중

비 오는 날

조카가 '이모 우리 집에 언제 놀러 올 거냐'며 전화를 했다.

마음 같아선 맨날 가고 싶지만, 솔직히 거리가 너무 멀다.

지하철로 1시간 반을 가야 해서 자가용이 없는 나는 하루 스케줄을 포기하며 큰맘 먹고 가야 한다.


여동생은 중학생과 초등학생 남매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이다.

가끔 한 번씩 가 보면 맞벌이 부부의 양육에 대한 고단함이 느껴진다.

부부는 열심히 사는데 아이들은 그만큼 부모의 고생을 모르는 것 같고,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불만과 결핍이 있는 것 같다. 

언니와 이모의 입장에서 둘 다 측은하고 안쓰럽다.




며칠 전 조카를 보러 갔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해서 오전에 조카들은 모두 학교에 간 상태였다.

아침부터 먹구름이 좀 끼었네 했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 안 가지고 갔을 텐데..

하교시간에 맞춰 우산을 들고 학교 앞으로 마중을 갔다.

(코로나 때문에 당연히 마스크를 썼지만, 표정을 그릴 수 없어 그림에서 마스크는 생략했다)

아파트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아이 혼자 측은하게 비 맞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어릴 적, 학교 끝나고 집에 갈 때 우산이 없어서 그냥 비를 맞고 왔었는데 참 쓸쓸했던 기억이었다.

교문 앞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게다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한꺼번에 하교를 하는 바람에 학부모와 아이들이 섞여 인파와 우산 속에서 서로를 찾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그때 저 멀리서 친구와 우산을 같이 쓰고 조잘대는 조카를 발견했다.

신기했다.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내 눈에 딱 보였으니 말이다.

내가 와서 반갑기도 했지만 내심 엄마가 왔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우산을 쓰고 가면서 계속 엄마에게 전화를 했으니까.

그래, 나는 엄마가 아니고 이모지.

가는 길에 앞서 비를 맞고 가는 남자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같은 방향이면 씌워주겠다고 했지만 아이는 쿨하게 괜찮다고 했다.

가다 보니 같은 아파트였다.

아파트 입구에는 하교하는 아이들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각자 사는 호수의 우편함에서 우편물을 꺼내보면서 한 마디씩 했다.

거기에서 실제로 나만 어른이었는데 아이들의 혼잣말을 들으며 내가 부끄러워졌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데..

아이라는 거울 앞에서 말과 처신에 신경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어리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게 아니다. 보고 듣는 게 있고 생각이 있는 작은 사람인데.. 

본의 아니게 남의 집 가정사를 알아버린 기분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각자의 층에서 내리면서, 어른이라고 나한테 싹싹하게 인사하는 아이들에게 나도 밝게 인사했다.

괜스레 마음이 뭉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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