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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우 Nov 26. 2024

멈춤, 새로운 시작

내 삶은 이게 전부는 아닐 거야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이었다. 저녁 수업을 마치고 차 한 잔 나누며 고요를 음미했다. 수업을 마친 회원님은 편안한 표정으로 얼굴에는 미소가 어려있었다. 그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동안 쌓였던 불안과 스트레스, 힘들었던 과거의 이야기들이 잔잔한 목소리로 흘러나왔다. 나는 말없이 듣기만 했다.  누군가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해 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를 너무나 잘 알기에, 그저 그 역할에 충실했다.

그의 이야기는 푸념이 아니었다. 자신이 힘들었던 이유를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 무엇일까? 왜 이토록 힘들었을까?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디로 가야 할까?”

그 물음들은 오래전 내 안에서도 한없이 맴돌던 것들이었다. 서른의 문턱을 넘던 시절, 나는 스스로가 너무 작고 무용하게 느껴졌다. 20대의 나는 30대가 되면 무언가 되어 있을 거라고 막연히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하고 있는 일도, 몇 년째 만나는 남자친구도, 친구들도, 일로 만나는 사람들, 모든 관계 속에서 나는 충족되지 않았다. 딱히 행복한 것도 없었다. 그저 무의미하게 연명만 하고 있는 듯한 무력한 느낌에 짓눌려 삶에 대한 욕망의 불씨는 꺼져가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할까? 내가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건 뭘까?”

머릿속에서 이 질문만 계속 맴돌았다.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분명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답을 말해줄 사람이 있을 것만 같아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답답한 속을 뚫어줄 답은 얻지 못했다.

7년째 다니고 있던 마지막 직장에선 거의 한 달 내내 출장을 다니니라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다.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이 나에겐 사치였다. 매일 새로운 곳에서 눈을 뜨고 눈을 감는 정처 없이 돌아가는 삶에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이리저리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부평초 같이, 뿌리를 내리지 못해 메말라 가는 나무같이 삶 전체가 시들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거울에 비친 나를 마주했다. 지친 얼굴에는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고 퀭한 눈은 너무 슬퍼 보였다.

“이러다 죽겠구나!”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정말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싶었다.

오랜 독립생활을 접고 그동안 못한 효도를 한다는 명분 하에 본가로 잠시 들어가 살기로 했다. 하지만 효도는 꼭 같이 살아야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그때 뼈저리게 느꼈다. 몸과 마음이 이미 독립된 나로선 어머니의 크고 작은 간섭과 걱정 어린 잔소리들은 너무 불편하고 불쾌했다. “걱정돼서~”라는 어머니만의 변명으로 시작되는 갖가지 걱정과 잔소리는 그저 본인 마음이 편하자고 눈에 거슬리는 대로 쏟아내는 푸념 같았다. 나에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오히려 나라는 존재를 부정하는 비난으로 다가왔고, 나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나는 화가 치밀었지만 방어할 힘도 없어 계속 날아오는 비수를 그대로 맞아야만 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또 한 번 외침이 들렸다.

“아! 여기도 내 집이 아니구나. 떠나자!”

나는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 나만의 공간이 절실했다. 그때 문득, 전에 알고 지내던 영화감독님이 보내주셨던 게스트하우스가 떠올랐다. 제주도에 있는 곳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곳을 검색하고 제주로 향하는 티켓을 예매했다. 이 선택이 내 삶의 전환점이 될 줄은 그땐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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