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와 비엔나커피
당시 유럽여행은 기차를 타는 것과 걷기의 연속이었다.
내가 추구하는 여행이 주로 그런 형태였다.
걷는 것이 좋았고 그 과정에서 찬찬히 골목을, 상점을,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을 즐겼다.
그런데 오스트리아에서는 조금 특별한 일정이 있었다.
소위 '체험형' 일정이라고 하겠다.
'오스트리아', 특히 '빈'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오페라였고 또 하나는 커피였다.
그 두 가지가 오스트리아에서 내가 체험하고 싶은 '버킷 리스트'였다.
일단 오페라를 봐야 했다.
뮤지컬 같은 대형 공연에 푹 빠진 것이 40 넘어서니까 당시에는 소극장 연극 몇 편 관람한 것이 내 공연 관람 역사의 거의 전부였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오페라를 꼭 보고 싶었다.
당일 표를 입석으로 어렵게 구해서 내 생애 첫 오페라 관람을 했다.
솔직히 제목도 기억 안 난다.
그나마 커튼콜 사진 한 장이 남아있어 오페라를 봤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
또 하나의 버킷 리스트...
바로 커피였다.
'비엔나커피'의 비엔나가 바로 빈을 말한다.
전주비빔밥을 꼭 전주에서 먹어야 제맛인 것은 아닌 걸 알지만 그래도 비엔나커피는 빈에서 먹어봐야 했다.
체코에서부터 인연이 되었던 어린 친구들을 만나 작별의 커피를 사주었다.
나는 당연히 비엔나커피를 시켰다.
에스프레소에 물과 설탕을 타고 그 위에 휘핑크림을 얹은 커피였다.
메뉴가 비엔나커피의 다른 이름인 아인슈페너였는지는 어쨌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 커피를 시켰고 먹었다.
먹어봤다.
그게 전부다.
지금도 입안에서 그 맹숭맹숭한 충격적인 맛이 느껴지는 것 같다.
자고로 커피는 그 씁쓸함의 풍미가 진하게 느껴져야 하는데 참 아쉬운 맛이었다.
결국 오페라도 보긴 봤지만 특별한 감흥은 없었고 비엔나커피를 먹긴 먹어봤지만 딱히 감동은 없었다.
두 가지 '버킷 리스트'를 완수했지만 탐탁한 결론은 아니었다.
다만 소위 묵혀둔 숙제를 끝낸 것 같은 후련함을 얻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