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지유 Sep 29. 2024

또 다른 나

     

  산책로에 가로등이 켜지고 그림자 셋이 나타난다. 나를 비추는 불빛으로 생긴 또 다른 나. 불빛의 방향이나 밝기에 따라 그림자의 크기와 명암이 달라진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행자가 되어 함께 걷는다. 

앞서 걷는 길고 커다란 그림자는 온 가족을 포용하고 살아야 하는 내면의 내 모습 같다. 뒤따르는 두 번째 그림자는 건장하고 뚱뚱한 모습의 짙은 검은색이다. 타인에게 보이는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 보이지만 만질 수는 없는 존재, 가득 채울 수 없는 욕망의 실체인 듯 두려움이 스친다. 아주 희미하고 작은 그림자는 움츠러든 나의 마음일까. 자멸하는 꿈을 붙잡고만 있는 어스름한 속마음처럼. 행여 사라질까 마음이 쓰이는데 보일 듯 말 듯 희미하게 옆을 지킨다. 

내 삶에도 사방의 불빛에 의식하지 못할 그림자가 너무도 많이 만들어지고 나는 그것을 다 안을 수 없다. 가족들에게 맞춰진 일상 속에서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그림자들은 흩어진 나의 모습인 듯 혼란스럽다. 내 삶엔 내가 주체가 되는 가장 또렷한 하나의 그림자만 만들어지길 원한다. 끝없는 물음표에 답은 있는 걸까. 불빛에 따라 잠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동행자들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가고 있다. 

좁아진 길에서 마주친 사람과 나의 그림자들이 서로 얽힌다. 삶의 부딪힘에서 만들어지는 그림자들이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내 것이 어느 것인지 알 수 없다. 다시 길을 걷는다. 앞서 간 남자가 흘린 담배 연기가 안개처럼 퍼진다. 희미한 불빛 아래서 그림자도 희미하게 나타난다. 마음속 아픔이 사라지면 내 진정한 그림자를 볼 수 있을까.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의 연속성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경계선. 선을 넘어서면서 그림자와 실상實像의 순간이 겹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 의사와는 상관없는 일들은 예고 없이 일어난다. 가슴 졸이고, 당황하고 갈등하고…. 누구에게나 벗어날 수 없는 굴레는 있다.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는 요양보호사의 돌봄을 받으며 혼자 산다. 며칠 전 시어머니가 외출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집에 갈 수가 없다고 전화를 했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무섭게 내리는 날이었다. 급히 차를 몰고 나갔다. 어머니를 태운 후, 무거운 휠체어를 싣느라고 요양보호사와 난 비를 흠뻑 맞았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요양보호사는 울먹이며 소리쳤다. 

  “어르신, 비 오는 날은 나오지 말자고 했잖아요. 어르신은 우산을 쓰지만 저는 두 손으로 휠체어를 밀어야 하니까 우산도 쓸 수 없어 옷이 다 젖는다고요. 사람들 많은 데서 저를 사람 취급도 안 하고 왜 무시하는 말만 하세요? 이런 대접 받으며 일 못해요. 지금 당장 그만둘 거예요.” 

  “그래 오지 마. 내가 뭘 어쨌다고 큰소리야.” 

시어머니도 같이 언성을 높였다. 

  시어머니의 요양보호사는 자주 바뀐다. 하루 만에 그만두는 이도 있다. 길어야 몇 달이다. 시어머니는 어려웠던 젊은 시절 때문인지 요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전기를 심하게 아낀다. 더운 여름엔 선풍기조차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고 겨울에는 온수도 쓰지 못하게 한다. 심지어 화장실에 들어갈 때는 불을 켜지 말고 문을 열어 놓고 쓰라고 한다. 고지식한 성격과 지나치게 아끼는 생활습관은 모두를 힘들게 한다. 당신의 척박한 삶의 내력을 아는 가족들만이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아껴 쓰라는 것은 그럴 수 있다지만 불신과 하인 취급이 더 큰 요인이다. 맏며느리인 나도 신혼 때부터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따로 살림을 차렸다. 내가 살 수 있는 방편이었다.

  오늘도 요양보호사가 그만둔다는 전화가 왔다. 전화가 울릴 때마다 덜컥 겁이 난다. 지난 4년 동안 20명의 요양보호사를 구했다. 그분들이 그만둘 때마다 억울하고 힘들었다는 하소연을 들어야 했다. 이번엔 시어머니를 이해하고 도와줄 고마운 분을 만날 수 있을까.

  성북천 ‘물빛다리’ 아래를 걷는다. 물 가운데 솟아오른 조그마한 모래톱, 흰 오리 한 마리가 외다리로 서 있다. 조그만 그림자가 옆을 지킬 뿐이다. 왠지 모르지만 흰 오리는 늘 혼자다. 혼자라서 편히 잘 수도 없는 걸까. 물가를 서성이던 고양이가 힐끔거리다 돌아선다. 어머니가 떠오른다. 당신의 마음도 늘 외다리로 불안하게 서 있을 것만 같다. 시아버지와 30대 초반에 사별하고, 너무 오랫동안 혼자다 보니 자식들의 마음도 주변의 온정도 오롯이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너무 다른 성격의 어머니와 나, 끝이 안 보이는 앞면과 넘겨지지 않는 뒷면 사이에 갇혀 있는 듯하다. 우리가 소통할 수 있는 마음의 교집합은 무엇일까. 다가갈수록 어긋나고 튕겨나가는 언어가 아닌, 마음을 이어주는 소통의 언어들을 찾고 싶다. 한 줄 한 줄 아픔을 치환하는 언어들로 행간을 채우고 희망으로 뒷면을 넘기는 설렘을 기다려본다.

‘도란도란다리’ 아래를 지난다. 도란도란 다정하게, 따스한 마음으로 서로의 가냘픈 어깨를 기대고 싶다. 어스름한 가로등 불빛,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선율. 모난 마음이 조금씩 동그래지는 내 안의 나를 보듬어본다. 어디에나 밝음과 어둠은 공존하는 것. 하루아침에 이룰 수는 없겠지만 기쁨의 부피는 키우고 삶의 굴레는 너무 버겁게 느끼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아 볼 요량이다. 검은 그림자들이 흔들리며 나를 앞서 간다. 

성북천 산책길의 끝, 무지개 색으로 쏘아올린 불빛을 받으며 화려하게 물줄기가 낙하한다. 무지개 속으로 그림자가 들어간다. 지금 내 안의 또 다른 나에게 빛을 입혀본다.     

이전 08화 바림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