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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곽재구, '사평역에서'

by 인문학 이야기꾼

흔히들 이야기(story)는 재미있다고 합니다. 할머니로부터 옛날이야기를 듣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이야기의 재미를 방증하고 있는 셈입니다. 드라마나 영화가 게임의 홍수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강한 생명력으로 여가 활동을 주도하고 있는 것도 이야기의 재미를 방증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야기가 재미있다면 시(詩)를 이야기처럼 읽으면 되지 않겠는지요. 시를 이야기처럼 읽으려면 독자 스스로가 상상력을 동원하여 시에 이야기의 옷을 입히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임철우 소설가는, ‘사평역에서’라는 곽재구 시인의 시를 읽고, ‘사평역’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씁니다. ‘사평역’이라는 소설을 바탕으로 이 시에 이야기의 옷을 입혀 보겠습니다.


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배경은 시골 간이역 대합실입니다. 한겨울, 밖에서는 송이눈이 내려 쌓이고 있고, 대합실에는 톱밥 난로가 약간의 온기를 발산하고 있습니다. 난로 주위에는 기차를 기다리는 몇 사람이 있습니다. 몇 사람은 졸고 있고, 몇 사람은 감기에 쿨럭이고 있습니다. 이 몇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의 곡절과 버거움을 가슴에 안고 있기에 ‘술에 취한 듯’ 살아가지 않으면 삶의 힘겨움이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그믐처럼’ 졸고 있는 몇 사람과 ‘쿨럭이는’ 몇 사람의 삶에 이야기의 옷을 입혀 보겠습니다.


난롯가에서 졸고 있는 사람 중 하나는 중년의 사내입니다. 그는 감방에서 어제 막 출소했습니다. 그는 옆에서 쿨럭이는 노인의 기침 소리에 얼핏 잠이 깹니다. 비몽사몽간에 노인의 기침 소리에서 감방장 허씨의 기침 소리를 떠올립니다. 허씨는 27세에 사상범으로 잡혀 무기형을 선고받고 25년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출소하는 이 사내에게 허씨는 주소를 하나 건네면서 노모(老母)의 안부가 궁금하다고 합니다. 이 사내는 자기의 어머니를 찾아가듯 ‘한 두릅의 굴비’를 사서 허씨 노모를 찾아갑니다. 5년 전에 세상을 떴다는 이야기를 마을 사람으로부터 듣습니다. 자신의 노모를 여읠 때보다 더 큰 절망감을 가슴에 안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위해 이 대합실에 왔지만 목적지가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난롯가에는 아까부터 쿨럭이는 노인이 있습니다. 몇 달 전부터 약을 썼지만 차도가 없습니다. 병원에 가보자는 아들의 말에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에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노인의 아들은 쿨럭이는 아버지를 부축하여 대처 병원에 가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노인의 아들은 아버지의 쿨럭이는 기침 소리도 걱정이지만 농한기에도 쉴 틈 없이 밀려드는 조합빚 독촉, 중학생 아들의 학비 걱정, 비룟값 걱정, 농약값 걱정으로 한숨 마를 날이 없습니다. 이런 걱정들이 자신의 삶을 짓누르고 있고, 이런 걱정들만으로 삶의 전부가 채워질 것 같은 생각을 합니다.


난롯가에는 서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중년 여인도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배신하고 도망친 사평댁을 찾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서울의 중년 여인은 사평댁이 순진해 보이고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종업원으로 들였습니다. 사평댁에게 가게를 맡기고 단풍놀이 갔다가 돌아와보니 사평댁이 금고에 있던 돈 일부를 훔쳐 달아난 것입니다. 그 사평댁을 찾아 서울 여인은 이곳까지 왔습니다. 주소에 적힌 대로 찾아갔습니다. 화전민촌에서 기어코 사평댁을 찾았습니다. 지독한 빈촌이었습니다. 병색이 완연한 사평댁은 역시 병색이 완연한 두 아이와 끼니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한 채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사평댁의 이러한 모습을 본 서울의 중년 여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까지 쓸어모아 한사코 거절하는 사평댁의 손에 쥐어주고 돌아가는 길입니다.


난롯불의 온기가 닿지 않는 창가에서 창밖에 쏟아지고 있는 송이눈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한 청년이 있습니다. 이 청년이 고등학교 다닐 때 이곳에서 열차 통학을 했기에 이곳을 책임지고 있는 늙은 역장도 이 청년을 알고 있습니다. 이 인근에서 유일하게 국립대학에 진학한 학생입니다. 청년의 아버지는 이 청년이 나중에 판사가 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이 청년은 다섯 명이나 되는 동생들의 희망이기도 하고, 어머니의 전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위 주동자로 체포되어 몇 달 감방 생활을 했고, 대학에서는 퇴학 처분을 내렸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제적 통지서를 받고 고향에 왔지만 차마 자신이 전부인 어머니께, 자신이 희망인 동생들에게, 아버지께 이 사실을 말할 수 없어서 집으로 가지 못하고 목적지도 없이 기차를 타기 위해 이곳 대합실에 있습니다. 이 청년을 태운 밤기차가 어디로 갈지 이 청년도 모르는 게지요.


삶이 이러하니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하지 않을 수 있겠는지요. 이런 사람들의 삶에는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습니다. 기차마저도 이들을 외면합니다. 이따금 기적소리가 들리지만 이들이 기다리는 완행열차는 아닙니다. 특급열차는 눈발 속에서도 쌩하고 이들을 외면하며 지나쳐갑니다.

침묵하고 있지만 이들은 자기들끼리 서로의 삶을 껴안고 위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톱밥난로의 온기가 사그라들기 전에 한 줌밖에 되지 않는 톱밥일망정 그 톱밥을 난로에 넣어 서로에게 온기를 주고자 합니다. 톱밥난로의 온기로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고자 합니다. 이런 마음들이 송이눈이 내려쌓이는 ‘뼈아픔’ 속에서 ‘눈꽃’을 보게 하고, 기차마저 오지 않는 혹한의 눈보라에서 ‘눈꽃의 화음’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사진] ‘그린이토크 그톡’ 님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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