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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Oct 25. 2018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묻혀 캘리한조각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집 앞 작은 돌담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담쟁이 덩굴도 빨갛게 단풍이 들었습니다

도토리 알갱이와 함께 떨어지는 나뭇잎들도 노랗게 빨갛게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이젠 제법 산마다 언덕마다 울긋불긋 단풍이 불타오릅니다

긴 겨울의 회색가지사이로 아기 연둣빛이 오르고,

개나리 진달래 봄꽃들을 피어 올리던 계절과는 사뭇 다른 절경입니다


봄꽃이 청춘이라면, 가을 단풍은 원숙함일까요

봄날의 희망과 에너지와 두근거림과는 다른

가을의 조용함과 편안함과 진중함을 주는 풍경이 단풍인지도요.

그렇게 가을의 단풍은 중년의 무게 같은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합니다

세상을 향해 겁 없이 힘차게 뻗어내는, 피어오르는 봄꽃의 자유분방함과는 달리

단풍에는 지난 여름의 지난한 뜨거움을 견뎌낸,

지난 여름의 폭우를 맞아낸

지난 여름의 태풍을 온 몸으로 견뎌 낸

삶의 얼룩이 배어 있습니다

세월이 배어 있습니다

그의 삶이 물들어 있습니다


우리네 삶도 그럴까요

뜨거운 청춘의 에너지가 가득하던 시절을 보내고,

하고싶은 일보다 해 온 일이 더 많아지듯,

할 수 있었던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가슴속엔 희망의 자리보다 추억의 자리가 점점 더 커지고,

새로운 세상을 보며 느끼던 두근거리는 마음이

새로운 생물학적인 변화에 낯설어지고 어색해지는,

반짝이던 감성보다 물리적인 어색함이 더 짙어지는 나이가 되면,

그렇게 우리에게 가을이 온 거라고 느껴지면

우리에게도 빛은 입혀져 있을 겁니다

우리가 지내온 여름의 뜨거움과,

우리가 맞아온 여름의 소나기와,

우리가 견뎌온 여름의 태풍을 그대로 몸에 새긴 채,

우리는 우리의 단풍 빛으로 물들어 있을 겁니다


그 어느날에,

파란 하늘을 향해 올라가던 시간보다

가지끝에서 아래를 내려보는 시간이 더 많아지는

단풍의 시간이 올 때,

우리는 어떤 빛으로 물들어 있을까요

그 때의 우리의 단풍은 봄 꽃보다 아름다울까요

그 때의 우리의 단풍은 봄 꽃을 그리워할까요


이 가을에,

이 단풍의 계절에,

봄꽃보다 아름다운 단풍을 보며 나의 시간을 생각해봅니다

나의 단풍빛을 생각해봅니다


세상 모든이들의 아름다운 단풍빛을 향한 삶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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