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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Nov 22. 2018

첫눈오는날 만나자 - 정호승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묻혀 캘리한조각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 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 장갑 낀 손으로 구워 놓은 군밤을

더러 사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첫눈 오는날 만나자 -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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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소설입니다

이 맘 때면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고 눈이 내린다 하여 소설이라 한답니다.

어제부터 첫  눈 소식을 여기저기서 이야기 했지만 하늘만 꾸물거리고 제가 사는 이곳엔 정작 눈은 오지 않았어요

그 대신 눈 만들 준비를 하려는건지 날씨만 쌩하고 영하 날씨가 되었네요


첫눈을 생각하고 첫눈을 이야기 하다가 정호승님의 ‘첫눈 오는 날 만나자’라는 시를 그려봅니다


순백의 새벽 첫눈길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처럼 흔적을 남기며

그렇게 첫눈 오는 날,

군밤 한줌 집고 팔짱을 끼고

사랑하는 사람과 그렇게 첫눈 오는 날,

커피 한잔을 들고 기차역을 서성이며

그렇게 첫눈 오는 날 만나자 합니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합니다

첫눈에는 그렇게 우리가 사랑하는 그 많은 것들이 들어있을 겁니다

어머니의 새벽밥 같은 따스한 정성이,

군밤 파는 아저씨의 구수한 군밤 내음이,

사랑하는 이의 따스한 팔짱이,

재잘거리는 청춘들의 입김 같은 즐거움이,

커피 한잔의 따스함을 양손으로 감싸쥐는 포근하고 편안한 오전이,

눈 내리는 기차역 앞에서의 서성이는 그리움이,

그렇게 우리가 기다리는 첫 눈에는 스며있을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첫눈 오는 날 만나자’는 약속은 참으로 감성적인 약속이 아니었나 합니다

첫눈이 서울에만 올 수도 있고, 강원도에만 올 수도 있고,

이 동네에는 내리지만 저 동네에는 안 내릴 수도 있고,

지금 내리는게 눈인지 진눈깨비인지 아리송할 수 있는데 말이죠

어쩌면 그 덕분에 몇 십년동안

우리들은 아직도 첫눈을 기다리고 있는걸까요.

서로의 마음에 첫 눈이 내리는 같은 날을 기다리면서 말이죠

당신의 약속한 그 첫 눈은 언제 내릴까요?

이미 내렸나요

아니면 아직도 기다리는 중인가요


세상 모든 첫눈을 기다리는 마음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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