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음 서랍 정리하기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by 사노라면

물건을 찾느라고 서랍을 여기저기 열어봅니다.

항상 둔 그곳에 있었지만, 새 물건들에 가려 안 보이기도 합니다. 서랍을 한번 정리해야지 하면서도 쉽지 않습니다.

버릴 건 버려야 하는데 서랍 속 물건들은 꺼내보면 항상 쓸데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자리하고 있는 것들이 태반인데 말이지요.


책상 서랍만 그럴까요. 마음의 서랍도 그렇습니다.

한약방 약장만큼이나 많은 서랍들이 내 마음엔 있습니다. 내 일생을 함께 한 오래 묵은 마음들도 있고, 요즘 들어온 새 마음도 있습니다. 내 마음의 서랍에도 그런 다양한 마음들이 담겨 수시로 열리고 닫힙니다.

어느 날은 배려의 서랍이 열리고 어느 날은 욕심의 서랍이 열립니다. 뜬금없이 저 구석의 서랍을 열어보고 싶은 날도 있고, 나만의 비밀스러운 서랍도 살짝 열어보는 날도 있습니다. 이젠 뻑뻑해져 열리지 않는 서랍도 있고, 이젠 비어있는 서랍도 있습니다.

그 서랍엔 선함과 이성의 마음도 있지만, 악함과 욕심과 교만의 마음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엔 내 서랍에 담긴 다양함과 이중적인 모습들에 고민도 많았었지만, 이제 서랍 속 마음들에 더 이상 고민하지는 않을 나이가 됐습니다.


털어내고 비워낸다 해도 다시 채워지는 게 마음의 서랍입니다. 그만큼 마음의 서랍은 정리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그저 어느 곳에 어떤 마음이 있는지, 어느 때 저 서랍이 열리는지를 알면 됩니다.

서랍이 열리면 '아, 이 서랍이 열렸구나'하고 알아채고 닫으면 그만입니다. 또 다른 서랍도 궁금하면 한번 열어보면 그만이고 말이지요.

중요한 건 어느 때 어느 서랍을 열어야 할지를 구분할 줄 아는 분별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책상 서랍을 열다가 오래전 추억의 물건을 들고 한참을 만지작거리는 것처럼, 뒤적뒤적 내 마음의 서랍을 열어보는 오늘입니다.

장마에 습해진 책을 말리는 일을 폭서 曝書라 합니다. 이제 장마도 끝났으니 책과 함께 눅눅해진 내 마음의 서랍도 습한 마음들 한번 말려내봐야 하겠습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마음 서랍이 튼튼하길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keyword
이전 05화협 協, 그 순수한 초심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