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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Mar 19. 2019

바람부는 날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한조각

사랑하지 않는 일보다 사랑하는 일이 더욱 괴로운 날,

나는 지하철을 타고 당신에게로 갑니다.

날마다 가고 또 갑니다.

어둠 뿐인 외줄기 지하통로로 손전등을 비추며

나는 당신에게로 갑니다.

밀감보다 더 작은 불빛 하나 갖고서

당신을 향해 갑니다.

가서는 오지 않아도 좋을 일방통행의 외길.

당신을 향해서만 가고 있는 지하철을 타고

아무도 내리지 않는 숨은 역으로

작은 불빛 비추며 나는 갑니다.


김종해 - 바람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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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님도 그의 시 ‘푸른 밤’에서‘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고 한것처럼, 김종해 시인도 밀감보다 더 작은 불빛 하나를 들고 당신을 향해서만 난 일방통행의 외길을 갑니다.


사랑은 그러한건가봅니다

사랑하지 않는 일보다, 사랑하는 일이 더욱 괴로움을 알고도,

에움길을 돌고돌아 모든 길은 당신에게로 가는 길이고,

가서는 오지 못할 일방통행의 길임을 알면서도

그래도 당신에게로 걸어가게 하는 그것은 사랑인가 봅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를 살게 하는건,

우리를 뜨겁게 하는 건,

우리를 걷게 하는건,

그 무작정의 사랑,

그 무모한 사랑,

그 철없는 사랑이겠지요.


바람은 불고,

어둠은 더욱 짙어지는 역사 모퉁이에 서서

오늘도 한손에 등불을 들고 아무도 내리지 않는 숨은 역으로 걸어가는

사랑의 순례자들의 지친 어깨를 위로해봅니다


세상 모든 사랑의 고난에 위안을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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