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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담 Sep 15. 2019

뒷모습에 익숙해져야 할 것들

타인과 관계의 우위는 중요하지 않다.

오래된 친구들을 잃어버렸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왜?

그 전의 나였더라면 전화하고 울고 매달렸을 텐데 나 혼자 일어서기 벅찬 지금에 철저히 혼자인 게 낫다 싶었다.

"다시는 전화하지 마!"라며 큰마음먹고 외치듯 떨리는 여운을 남긴 친구의 목소리가 내내 맴맴 돌아 잠을 잘 못 이루었다.

그러나 망각의 동물인 나는 잊어버렸고

일 년에 한 번 동창회에서 그 친구를 만나면 아무렇지도 않듯 말을 걸었다.

어쩜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받을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음식을 내 앞으로 놓아준다.



 

너무 힘이 들어 전화기조차 꺼놓고 아무하고도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던 때가 있었다.

어린이집 교사가 되기 전 3개월을 그렇게 보냈다.

부모형제는 혼자된 그 순간부터 또다시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냥 나 혼자 잘 버텨내리라는 믿음 때문이었을까?

지금은 잘 살고 있는 남동생은  나보다 더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기에

오히려 내가 격려를 해주어야 할 때였다.  

아이와 주변 아파트 야시장 구경을 하며 놀이터에 있는데 친구 두 명이 다가왔다.

연락이 되지 않아 걱정이 된다며 집에도 갔었는데 없어서 혹시나 해서 주변 아파트에 와보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 친구 둘과의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었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친구들이 사는 P시로 가서 함께 점심을 먹고 찜질방에서 밤을 지새웠다.

때로는 집에 모였고, 친구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겨놓고

셋이 음악회에 가거나 1박 2일 놀러 가기도 했다.

연말이면 세 가족이 모여 일출을 보러 갔고 그렇게 주말마다 함께 보냈던 친구들이었기에

내 모든 것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았다.

캠핑을 가서도 기름값을 아끼라고 자신들의 차에 끼어서 타라고 배려를 해주었다.  

그들의 배려가 아니었더라면 내 아이에게 그런 추억조차 만들어 줄 수 없었을 것 같다.

자신이 친정엄마를 대신해 준다던 친구 N은 해마다 김장을 해다 주었으며,

일하는 나를 위해 심지어 직접 농사지은 파를 뽑아 다듬어 줄 정도였다.

S는 너도 분명 좋을 날이 있을 거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한결같이 전해주고

만나면 밤을 지새우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친구 지인들의 모임을 가끔 우리 집 마당에서 했고 외로웠던 아이와 나는 사람들이 많이 오는 그날을 기다렸다.



  

친구들이 사는 P시로 이사오며 아이의 학교가 가까운 곳에 아파트를 사고 나니 돈이 여유가 생겼다.

언제 필요할지 모르니 여윳돈을 남겨두고 은행에서 권하는데 투자를 하였다.

그때  S가 친정아버지가 남겨주신 집을 팔았는데, 빗물이 샌다는 이유로 받은 돈을 돌려줘야 했다.

친구는 한 달 사이에 돈의 일부를 썼기에 나보고 반반씩 투자하자고 했고, 명의도 내 이름으로 하자고 했다.

나는 은행에 투자했던 돈의 일부를 찾아 집값의 반과 세금을 모두 부담했다.

 네가 여유가 되면 그때 돈 계산을 하자고 내가 먼저 이야기를 했다.

친구니까......

 

  친정부모님과 다시 연락을 한다는 소리를 듣고 다시 연락하지 말라고 하는 N을 따라 S와도 멀어져 갔다.

유럽여행을 함께 가고 부동산 투자를 함께 하던 그 친구 둘의 소식은 SNS를 통해 보게 되었다.

서로 연락을 하지 않은지 3년쯤 지나 S에게 연락이 왔다.

반반씩 투자했던 집 때문에 자신이 손해 본 금액이 많다는 것이다.

비가 새서 아랫집 수리도 해줬고 집을 팔았다가 다시 사는 바람에 부동산 소개비도 두배로 나갔으니

어차피 네 명의로 되어 있으니 집값의 반을 자신에게 주고 내가 가지라고 하는 것이다.

(내 이름으로 되어있지만 안전하게 하자며 제3자를 통해  가압류시켜놓았고, 권리증도 S가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참았던 말을 나도 내뱉었다.

지금은 내가 그 집을 살 여유가 되지 않고 은행에 투자한 것을 두 달 만에 찾는 바람에

이자를 받기는커녕(은행에서 파는 보험에 가입을 한 것이었다.)

사업비며 다른 명목을 떼는 바람에 원금손실까지 봤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자신이 반을 줄 테니 명의를 넘겨 달라고 했다.

나는 그동안 냈던 취득세며 재산세 사진을 전송했고 반을 입금받고 인감증명서를 넘겨주었다.

10년이 되면 함께 놀러 가자고 모았던 돈도 내 통장에 함께 입금이 되었다.


매일 연락을 주고받던 사이. 

나를 내치던 부모와 연락을 다시 한다고 속상해하던 N.

1가구 2 주택이라서 집을 팔아야 했던 S가 다시 집을 떠안아야 해서 반반씩 투자하고

내 명의로 했던 S와의 관계는 그렇게 점점 멀어져 갔다.

동창회에서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음식을 앞에 놓아주고 함께 노래를 부르고

9시가 되면 졸려하는 나를 위해 잊지 않고 커피를 준비해주던 S와 N.

어떤 것이 그들의 진짜 모습인지 알쏭달쏭했지만 그 시간만큼은 나도 즐겼던 건 사실이다.




올 1월에 다른 동창이 8명을 단톡에 불러놓고 올린 녹음파일에는 S의 음성이 들려왔다.

N이 얼마나 잘했는데 은혜도 모르는 애라고 나의 험담을 시작으로 차례로 8명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단톡 방에서 나와 버렸다.

어이없고 상대할 가치가 없는 것 같았다.

그 친구들과 함께 놀러 가고 생일파티를 하고 찜질방에서 나란히 누워 이야기하던 그때만 기억하기로 했다.


S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미안하다고 진실이 아니었다고 한다.

"알았어. 우리의 인연도 여기 까진 거 같아. 행복하게 잘 지내."

그 말을 하고 끊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아야 할까?

그 사람들이 잘했을 때만 기억하고 싶은데 잠이 오지 않는 오늘 같은 날이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만다.

나는 왜 그들 곁으로 이사를 와서 홀로서기를 또 하고 있는 건지......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에서 친구와의 만남이 없어도 지낼만하다.

글을 쓰며 치유하는 내게 글감을 안겨 준 그들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까?


이제는 사람과의 인연을 만들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는 사람이 좋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떤 것이 우위인지 알지 못한다.

계산적이지도 약지도 못하다.


그냥 좋은 사람.

그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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