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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담 Aug 21. 2019

애인과 떠나는 남편의 이별여행을 지켜보는 나의 시선

때는 이때다!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람들을 마주하며

그 남자에게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이틀은 불안으로 우왕좌왕하며 보냈던 것 같다. 그 남자가 오지 않으면 전화해서 기다리겠다는 말을 했다. 처음이었다. 단호하게 기다리겠다고 한 게.

난 누구와 지냈던 것일까? 그 사람은 내가 아는 남자가 아니었다.

새벽에 나가 새벽에 돌아왔던 그 남자. 덕분에 아이는 새벽 6시면 깨어나서 잠깐 아빠를 보다. 주말에도 바빴던 그 남자. 아이에게 아빠는 늘 그리움의 대상이었고, 부족함의 잔재를 느끼게 하는 사람이었다.


 여자의 존재를 안다고 하자 그 남자는 웃었다. 내가 알게 된 이상 나하고 살지 못한다며 나가버렸다. 수녀님이었던 그 남자의 큰누나한테 그 여자의 존재를 알렸다. 그게 잘못된 것이었을까? 큰누나는 그 여자의 엄마한테 사실을 말해버렸다.


비가 내리는 날 밤.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도 나도 잠에서 깨어났다.

"누구세요?"

"나야, 문 열어.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문 열어."

아이는 눈만 껌뻑이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가 있으니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했다. 막무가내로 현관문을 발로 차는 그 여자.

문을 열었더니 술냄새가 확 풍겨왔다. 다짜고짜 내손에 있는 휴대폰을 뺏어서 밖으로 던져버리는 그 여자.

 남자와 만기로 했는데 약속 장소에 그 남자가 안 왔다고 우리 엄마한테 알려서 이제는 모두 끝났다고 소리친다.

아이 놀라게 하고 싶지 않으니 가라고 하며 문을 닫았다. 뒤이어 그 여자의 차가 빗소리보다 더 크게 언덕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친구들이 음주운전으로 신고해버리지 그냥 뒀냐고 했지만 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아이를 생각하느라 온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그 여자와 그 남자는 학원 차키만을 다른 사람에게 남긴 채 도망가 버렸다. 공중전화로 내게 전화해 학원이며 차 명의를 다 이전해 줄 테니 자기를 찾지 말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크나큰 선심에 감사하다고 넙죽 받아 챙길 만큼의 이성인지 감성인지는 내게 없었다.

그냥 돌아오라고, 돌아와서 이야기하자는 말만 되풀이했다.

들은 일주일 만에 돌아와 아무렇지도 않게 공인된 커플처럼 아침이면 당당히 함께 학원에 나타났다 밤이면 사라졌다. 그 남자가 그 여자에게 집을 얻어주고 차를 사줄 때까지 나는 무엇을 했을까?

믿음. 그것밖에 없었다.

 남자 통장으로 들어오는 원비는 그 남자가 집 융자금과 차량 할부금을 냈고, 내 통장으로 들어오는 원비는 생활비와 내차 기름값을 내는데 써버렸다. 얼마나 들어오고 얼마나 남는지 서로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내 돈 돈이 아니라 우리 돈이었고 당연히 우리에게만 쓸거라 생각했기에.

부부가 서로의 돈을 관리하지 않는다고 다른 여자에게 혹은 다른 남자에게 가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그랬다. 우리는 평범한 사람이었기에 우리 안에 다른 것이 존재하리라는 생각을 못했다.

그 여자의 부모가 나를 만난다고 C시로 왔다. 잘못 키워 미안하다며 집으로 데리고 가서 다시 만나지 않게 잘 이야기하겠다는 말을 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일까?

그 여자는 새벽에 도망 왔다며 전화를 했고, 기다렸다는 듯 나가는 그 남자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 나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미라가 되었다. 마치 뇌가 텅 빈 사람처럼 아이만을 위해 살았다.

다시 돌아올 거라 믿으며.

그랬다. 마지막 이별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난 이미 그의 선상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그 둘이 중심이 되어 돌고 있는 지구였고

난 화성쯤일까?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조차 기대하기 힘든 환경을 안고 있는 지독하게 황량한 벌판만을 감싸 안고 아이라는 씨앗만큼은 싹트게 하리라는 강한 본능적 의지만이  살아있었다.

그들은 3박 4일 만에 돌아와 각자의 길을 가겠다고 했다.

잘 다녀왔냐는 인사를 했고, 아파하는 아이를 위해 가족상담을 받으러 다녔다. 그렇게 다시 평범을 꿈꿨지만 다시 연락하는 그 여자를 밀쳐내지 못하고 그 남자는 다시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참 내가 생각해도 정 떨어지는 여자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 이성적으로 행동하려 노력하고, 어릴 적  그런 상황에서 보였던 엄마의 행동처럼 하지 않으리라는 밑바닥의 꿈틀거림에 충실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엄마는 집이라도 네 명의로 되어있으니 다행이다. 그거라도 잘 지키라는 말만 했다. 그 엄마의 그 딸이다.

참으로 현실적이다.

불과 한 달 전까지 네 옆으로 이사 와서 살겠다며 집을 알아보던 엄마는 어디 갔으며, 네가 생활비를 못 댈 거 같다며 너무도 자기중심적인 말을 내뱉는 그 엄마를 붙잡고 이 집에서 같이 살자고 했다. 아이를 돌봐주면 넉넉하지는 않겠지만 내가 일을 해서 계속 모실 테니 믿어달라고 했지만 이 좁은 집에서 어떻게 같이 사냐고 했다. 좁다 생각되면 아이랑 내가 잔디밭에 컨테이너를 놓고 살 테니 엄마 아빠가 집에서 살면 되지 않느냐고 했지만 답은 같았다.  집이 작다는 엄마의 트집을 그렇게 마무리 짓고 난 점점 무너져 내려갔다. 아이도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를 두 번. 나 의지를 잃어갔다.


아이와 둘이 있게 된 것을 알게 된 동네 사람들의 시선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본격적으로 내 땅 네 땅의 땅따먹기가 시작되었다. 어제같이 언니, 동생 하며 지냈던 사람이 이 길은 내 땅이니  다니지 말라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렇게 첫 스타트를 끊자 기다렸다는 듯 찾아오는 사람들.

"네, 차는 계곡 근처에 세워 놓고 걸어서 올라가겠습니다." 앞 뒤 산으로 둘러 쌓인 동네에서 흐르는 물소리만 내편이고 모두들 자신의 이익에만 눈을 붉히는 하이에나가 되었다.

남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라 했던가? 그 밥맛 없고 재수 없는 말이 현실이 되어 눈 앞에서 펼쳐지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 사람 역시 학원과 학원차 세대와 트럭은 자기 몫으로 가져갔다.

내게 남은 건 내 명의로 된 집과 차 한 대뿐이었다.

내 명의가 아니었다면 그것 조차 땅따먹기에 낄 수 조차 없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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