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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ngwon LEE Aug 01. 2022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이유는? (+RVC 소개)

깨달음과 자살?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질 거란 희망이 없을 때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리곤 한다'


두 가지 문제 : 긴장과 술

입사한 후 전혀 생각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하나는 너무 긴장을 많이 하는 것이었다. 신입사원이니까 긴장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그 정도가 심했었다. 긴장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가지가 쳐지듯 여러 일로 연결이 되었다. 업무를 배우는데 방금 들은 말도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지적을 받고 위축되고 더 긴장하고,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긴장하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을수록 더 많이 긴장되는 건 왜였을까...

또 하나의 문제는 술이었다. 대학생 때 나의 주량은 소주 두 잔이었다. 두 잔이 아니라 두 병이었다면 회사 생활은 또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부서에 배치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팀 회식을 갔다. 맛있게 고기를 구워 먹고 살짝 분위기가 올라갔을 때 냉면이 추가 주문되었다. 냉면도 맛있었고,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소주와 맥주도 맛있어야 되는데 그건 왜 그렇지 않았을까? 선배들부터 시작해서 냉면 그릇에 가득 찬 술을 마시는데 마지막 나에게 돌아왔을 땐 처음 시작할 때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두 잔만 마셔도 힘든 것을 알기에 순간 망설여졌지만 이걸 마시지 않으면 회사 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 뭔 일이야 있겠어'


2/3 정도 쭈욱 들이키고, 그 후에 입안부터 전해져 오는 알코올 기운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간신히 눈을 떴을 때 화장실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밖에선 선배들이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필름이 끊긴다고 하는데 직접 경험하고 나니 신기했다. 머리와 몸이 따로 움직이는 것도 신기했다. 선배들이 택시 안으로 나를 던져 넣는데 머리가 쿵 부딪혔지만 별로 아프지 않은 것도... 이건 신기하다고 말할 순 없겠다... 다음날 눈을 떴는데 목이 너무 아팠다. 퇴근하고 정형외과를 가서 치료를 받았다. 그렇게 첫 회식을 마치고 술과 함께하는 나의 회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영업과 바이어의 관계

영업에 계신 분들은 바이어가 자신들의 제품을 사주길 원한다. 그래서 바이어들은 술을 잘 마신다. 함께 만나면 저녁 식사를 하러 가는데 그곳에서부터 술이 나오고 영업 활동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주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런 정도가 심하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바이어가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고 쓰러지고, 정신을 못 차린다면 우스워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아무리 많이 마셔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선배들 모두 집에 데려다주고, 다음 날 정시 출근을 해야 하는 것이 바이어의 기본자세이다. 나는 이렇게 배웠다. 사실 공감이 가지 않는 말도 아니다. 문제는 나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것이었다.


선배가 술을 잘 마실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 주었다. 약국으로 가서 RU21을 사서 먹었다. 확실히 평소보다 술을 마시는데 잘 취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두 잔의 주량이 약을 먹은들 세 병, 네 병 마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Tip : 확실히 술이 덜 취하기는 합니다. 필요하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이유 : 정신력이 약해 빠져서

동기들끼리 술을 마시러 가도 자주 쓰러져 잘 때가 많았다. 한 달에 반은 자취방에 들어가면서 토를 했었다. 조금 궁금했다. '왜 나는 술을 잘 못 마실까?' 팀장님이 내 마음을 꿰뚫어 보셨는지 나를 부르시고는,

"왜 네가 술을 잘 못 마시는지 아나?"

나는 속으로 '나도 궁금해, 왜 못 마실까?'

"그건 네 정신력이 약해 빠져서이다"

'아, 나는 정신력이 약하구나'


나는 무엇이든 노력하면 100점은 안되더라도 80점은 맞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안된다는 말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술은 도저히 많이 마실 수 없었다. 깨달음은 왔는데, 아무 쓸모없었다.


RVC,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외적 요소

사실 이 외에도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은 많다. 일례로 국산화를 진행할 때의 일이다. 일정 비율 이상의 RVC (Regional Value Contents, 역내 가치 비율)가 충족되어야 FTA 관세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KD (Knock Down)로 수입해오는 파트들을 국내에 소재한 협력사로 국산화를 검토했었다. 배터리 트레이 사출품을 검토하는데, 문제없이 잘 진행되었다. 그리고 PSW (Part Submission Warrant, 품질 보증서)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데 Vibration test fail이 되었다. 그리고 한번 수정으로 끝나지 않고 몇 차례에 걸쳐 수정안이 나왔었다. 검토 과정에서 다 확인을 하였음에도 어찌할 수 없는 외적 요소가 존재하는 것을 자주 느낀다.

RVC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해보려 한다면 Tier 1, 2... N의 개념 정립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안테나의 경우 PCB (Printed Circuit Board)와 Wire는 중국에서, 사출품 생산과 최종 조립은 한국에서 한다면, 이게 국내산임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출품 비용과 조립 인건비의 비율이 낮다면 국내산으로 볼 수 없습니다.


입사한 후 1년

이런 일들이 있고 난 후 입사한 지 1년이 되었을 때이다. 술버릇을 고쳐 주겠다며 퇴근 후 술을 마시러 갔다. 1차에서 소주 두 병을 마시고 간신히 거리에서 버티고 서 있었다. (두 잔에서 두 병이 되었으니 상당히 주량이 는 편이었다. 조금 대견스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팀장님은 그런 내 모습이 못마땅하셨던 것 같다.

(*여기서부턴 제 기억이 100% 정확하다고 말할 수 없기에 독자분들이 적절히 이해해가며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거리에서 배를 발로 차여 뒹굴고, 2차로 노래방에 가서 머리를 박았다. 옆에는 함께 머리를 박고 있는 선배 두 명이 있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서 인생에 참 싫은 것이 하나 생겼다.


밤에는 영화를 보거나 휴대폰을 만지거나, 아니면 명상을 하면서 잠들 수 있었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참 싫었다. 사무실 문을 열 때 죽고 싶은 마음이 너무 많이 드는데 그것을 또 반복하러 일어나야 된다고 생각하니 참 괴로웠다.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질 거란 희망이 있으면 좋았을 텐데, 내겐 그런 것이 없었다. 오늘 고통스러운데 내일도 똑같이 고통스러울 것이고,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똑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가득 차 있었다. 이 반복되는 일들을 피할 수 있는 길이 다행히 있었는데, 그건 차마 용기가 없어서 시도를 못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용기가 없었던 것이 참 다행이다. 지금 누리고 있는 많은 행복하고 감사한 일들이 있는데 그냥 지나쳐 버릴 뻔했다.



진중하되 너무 무겁지 않게 글을 써보려 했는데, 소재가 그래서 그런지 조금 어둡게 글이 쓰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마음에 상처가 남아 있기보다는 감사함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정말 제 삶은 행복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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