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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옥 Aug 24. 2023

눈길을 걷는다

<눈길> 이청준 2012년 사피엔스21 출판 216쪽

동해안에 눈이 내렸다. 우리 동네에는 올겨울 첫눈이다. 앞집 지붕에 소복이 쌓였다. 할멈의 낭만은 살짝 뜨는데 살살 올라오던 봄 내음은 멈칫하겠지.

볕이 좋아 삼사해상공원으로 걷는다. 길바닥은 뽀송한데 길 옆은 잔설이 누추하다. 그래도 잔설에 눈길이 간다. 똑! 똑! 똑! 지붕이 흘리는 눈물도 정겹다. 봄눈에 잠시 마음이 녹는다.

발자국이 없는 눈길을 골라 밟는다. 뽀독뽀독하지 않고 퍼석퍼석하다. 이청준의 소설 <눈길>이 생각난다. 아들과 밟은 눈 발자국을 혼자 되짚어오며 늙은 엄마가 뇐다. "자석아 내 자석아. 부디부디 너라도 좋은 운 타서 복 받고 살거라."

남편의 폭력으로 마스카라를 칠한 여인의 표정이 익살스럽다. 상처를 준 사람을 뱅커시는 쓰레기통에 넣는다. '눈길'의 이청준은 상처를 풀어준다. 청년 아들이 엄마에게 품은 오래된 상처를 풀어준다. 아내가 남편과 시어머니를 이해하고 중재한다.

이 시대 우리 사회를 중재할 '눈길'의 아내는 어디 계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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