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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의딸정미경 Oct 01. 2023

고만례상회

“요플레, 더 쎈 걸로 갖다놔야겠어, 에효, 똥 누기가 예전 같지 않아.”

에효노인이 왔다. 

“요플레 쎈 거요, 그게 뭔데요.”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가게 보는 사람이 알아봐야지.”

요구르트가 원래도 장 활동을 도와 변비에 좋다는 건데 효과가 특출난 게 따로 있나, 생각하다가 알아볼게요, 라고 지소는 대답했다. 

현준 씨가 들어왔다. 지소는 어제보다, 그제보다 더 능숙한 몸놀림으로 쇼케이스에서 몰라를 집어 들어 현준 씨에게 건넸다. 그는 담배를 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왜요?”

“이제 몰라 안 펴요.”

“그럼 뭐 줘요?”

“전자담배요.”

지소가 흘겨보자 현준 씨는 허헛 웃으며 담배 끊었어요, 랜덤 지겹잖아요, 라며 한번도 쳐다보지 않던 선반들을 훑어보고는 감자칩 한 봉지를 집어들었다.

“호두 좀 갖다 놓으세요, 담배 끊는데 간식이 도움 된다면서요. 브레인푸드이기도 하고요. 비타민E와 오메가3가 많아서 뇌의 산화를 막아주는 음식, 브레인푸드 알죠?”

“그런 거 몰라요.”

“호두랑 크린베리, 아몬드 이런 거 섞어서 봉지로 파는 거 있던데, 그런 거 갖다 놓으면 좋을 거예요. 어르신들 치매에방에도 좋고요. 아, 이따 점심 먹고 교회에서 봐요.”

현준 씨가 나갔다. 준희 엄마가 아이스크림 냉동고에서 캔디구슬 다섯 개를 들고 왔다. 계산을 마치자 수박을 반쪽씩만 팔면 사먹을 텐데, 라고 말하고는 나갔다. 

어째 오늘 가게에 오는 사람들이 작정하고 뭔가 새로운 고만례상회를 요구하고 있다고 지소는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고만례상회는 조금씩 새로워지고 있는 참이었다. 채소는 콩나물만 들여놓던 것에서 상추와 고추, 오이 등 몇 가지를 추가로 취급하기 시작했고 계절에 맞춰 고구마와 감자도 많은 양은 아니지만 빼놓지 않고 진열했다. 계란과자와 소라과자라는 이름의 용량 크고 가격 저렴한 옛날과자를 팔았고 유제품의 종류도 늘려 바나나우유와 커피우유를 추가했다. 

이제는 요구르트와 호두 차례였다. 지소는 요구르트를 납품하는 유제품 대리점에 전화를 걸어 변비에 특히 좋은 상품이 뭐냐 물었다. 당류가 전혀 첨가되지 않은 그리스식 요구르트를 추천받았다. 시식용으로 몇 개 보내줄 수 있냐 물으니 내일 아침 우유 들여놓을 때 세 개를 넣어놓겠다는 답변을 얻었다. 다시 수화기를 들고 과자를 납품하는 회사에 전화를 걸어 호두와 크린베리, 아몬드를 섞은 간식이 있냐 물었다. 하루한주먹이라는 상품을 추천받았고 즉석에서 열 봉지만 갖다달라고 발주를 넣었다. 수박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고민이 필요했다. 수박만 사다놓을 것인지 여름철 과일 몇 가지를 들여놓을 것인지를 먼저 결정해야 했다. 이는 과일을 취급하는 것이 지소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 따져보아야 했다. 감당 못할 정도의 큰일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고, 지소는 농수산물 공판장에서 과일을 떼다 파는 가게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수박과 참외를 소량 주문했다. 

고만례상회는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가게를 변하게 한 것은 물론 손님들이었다. 지소는 손님들이 하는 말들을 귀담아 듣고 개선 방법을 찾았으며 고만례상회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실천에 옮겼다. 그것이 가게를 보는 사람의 역할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가게를 보는 사람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지소는 그렇게 가게를 보는 사람이 되었다. 

가게를 보았던 사람들은 성실했고 지소도 그러려고 노력했다. 물건들에 성실해지고 사람들과 시간에 대해 성실해지려 애썼다. 고만례상회라는 공간이 해야 할 역할을 받아들였고 가게 보는 사람의 자리에 충실하면서 지소는 붙박이의 시간을 살게 되었다. 사흘이 지나서도 가게로 출근했고 나흘, 열흘, 보름, 한달이 지나도 계속 가게를 보았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고 지루하다거나 구태의연하다거나 그런 건 느끼지 못했다. 가끔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다리가 저릿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평상에 앉아 선착장을 바라보며 믹스커피를 마시거나 가게 문을 열어놓은 채 동네를 한 바퀴 돌곤 했다. 그렇게 해도 기운이 나지 않을 때면 휴게방의 초록색 소파에 누워 라디오를 듣거나 햇볕을 받으며 쪽잠을 잤다. 치약 줘요, 라는 소리에 잠을 깨고 휴게방을 나와, 계산만 하기에는 뭔가 위엄 있어 보이는 계산대 책상으로 돌아와 푹 꺼진 의자에 앉았다. 그럴 때면 붙박이의 삶이 식물의 수동성이나 숙명론적 체념과 닮았다고 했던 예전의 생각이, 삶과 시간과 자리에 대한 지독한 오해였다는 것을 지소는 깨닫곤 했다. 붙박이는 그 자리에 그저 있는 게 아니었다. 붙박이가 되려면 정직한 시간이 필요했다. 어떤 곳이든 그 자리의 붙박이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것과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것의 상당부분을 정직하게 쏟아 부어야 했고, 자신이 서있는 그 자리가 뜻하는 것과 그 자리가 뜻할 수 있는 많은 것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했다. 그러므로 붙박이는 나와 내 자리의 경계, 나와 세계의 경계가 천천히 허물어지는 것을 받아들이고, 내게서 세계로 흘러들어가는 것과 세계에서 내게로 흘러들어오는 것을 수용할 수 있을 때 도달하는 어떤 경지일지 모른다고 지소는 생각했다. 한 곳에 머무는 시간의 절대량이 아니라 그곳에 머무는 마음의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 단어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고만례상회에 오기 전, 그런 삶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으며 그 자리가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럴 때면 지소는 최선을 다해 서둘러 그곳과 멀어지면서 그곳과 다시는 가까워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이제는 때로 그렇게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지소는 받아들였다. 열 시간동안 가게를 보면서 지소는 어디서도 느낄 수 없었던 어떤 안온함에 대해 생각했다. 내면에서 휘돌아가는 뭔가가 조금씩 잦아들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     


전도사가 박스를 들고 왔다. 

“빵이군요.”

지소는 열 가지 종류가 넘는 빵 무더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빵을 전해준 전도사가 설명했다. 

“김을숙 씨가 제빵사가 되셨답니다, 교회와 복지원에서 드시라고 빵을 보내오셨어요. 가게 보시는 분한테도 전해달라며 따로 한 박스를 챙겨주셨고요.”

무더기 빵 사이로 은하수 제과점이라고 적힌 팸플릿이 보였다. 이층 양옥의 식탁에서 보았던 것과 같았다. 그곳으로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자기가 있을 자리, 천연효모를 사용해 빵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 

점심 대신 단팥빵을 무려 네 개 먹었다. 가게 보는 사람을 위해 가게를 봤던 사람이 보내온 빵, 지소는 묘한 마음이 되었다. 그날 밤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시체를 묻나 했지, 그 밤에 매화나무를 심을 줄이야. 사흘간 가게를 봐달라고 말하면서 김을숙 씨가 피웠던 담배 이름은 아직 모르겠다, 여기 이 매대 어딘가에 있을 텐데. 

그런데, 라고 지소는 물었다. 왜 이틀이나 나흘이 아니라 사흘이었을까. 그것이 꽤나 궁금했던 것은 사흘이 아니었다면 뭔가 달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만약 이틀이었다면, 지소가 사흘째 겪은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지소는 이곳에 앉아 가게를 보고 있지 않을 것이었다. 그것을 김을숙 씨는 알고 있었을까. 아니면 사흘은 우연이었을까. 그가 애초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었다면 이틀이든 나흘 닷새든 별 상관없었을 텐데. 아니다, 부탁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나흘이나 닷새는 너무 길게 느껴졌을 것이고 오래 생각할 것 없이 거절의 의사를 밝혔을 것이다. 하루나 이틀 정도라야 흔쾌히 승낙할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도 김을숙 씨는 꼭 집어 사흘만 봐달라고 했다. 

생각해보면 사흘은 애매모호한 시간이었다. 흔쾌히 그러마 하기는 부담스러운 시간이었지만 정녕 힘들겠다고 도망칠 정도로 긴 시간은 또 아니었다. 하루, 이십사 시간의 차이지만 이틀과 사흘, 그리고 사흘과 나흘은 동해와 서해의 거리만큼, 지소가 전에 있던 곳과 지금 이곳의 거리만큼 멀게 느껴졌다. 길지도 짧지도 않는 애매모호한 시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불분명한 시간, 겪어보아야만 알게 되는 그런 시간. 김을숙 씨의 부탁도 통보도 아닌 말에 지소가 하겠다 못하겠다 의사를 밝히지 못한 것은 사흘이라는 시간의 그런 애매모호함 때문일는지도 몰랐다. 겪어봐야 알게 되는 시간 앞에서는 누구든 그렇게 확실한 답을 주저하게 되는 것인지도. 

왜 저인가요, 라고 지소는 김을숙 씨에게 물었었다. 꼭 당신이어서가 아니에요, 당신이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가게 문을 닫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죠. 그 말의 의미를 지소는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래, 꼭 내가 아니어도 되는 자리에서 지소는 고만례상회 문을 열고 닫고, 푹 꺼져버린 계산대 의자에 붙박이처럼 앉아 담배를 주고 라면을 주고 우유를 주고, 주문을 하고 물건을 정리해 넣고 빈 박스를 쟁여놓고, 닳고 닳아 윤이 나는 문턱에 걸터앉아 커피를 마시고 라디오를 듣고 전화를 받고 배달을 가고… 인생이란 그럴 수도 있는 거다. 꼭 자신이 아니어도 되는 자리가 자기 엉덩이 자국으로 푹 꺼져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기도 하고, 그 자리가 애틋해질 수도 있는 거다.

복순의 어머니가 가게로 들어왔다. 머위나물이에요, 하고 반찬통을 건넸다. 혀가 먼저 알싸한 맛을 기억했고 침이 고였다. 복순이 너무 귀찮게 하는 거 같아서 어쩌죠? 아니에요, 제가 복순을 귀찮게 하는 걸요, 라고 말하자 늘 고맙습니다, 라며 웃었다. 복순의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백년만이라는 폭염이 서서히 수그러들던 어느 날이었다. 복순은 전도사의 지인이 운영한다는 복지원으로 가지 않았다. 복순의 어머니가 돌아와 복순과 함께 그 집에서 살았다. 산24번지, 왼쪽, 저쪽, 그 너머, 녹색 양철지붕에 주황색 대문이고, 들어서 바로 앞방이 아니고 담벼락 쪽으로 끝까지 걸어가서 돌면 샌드위치 판넬로 만든 문이 달린 그 집에서. 복순의 어머니는 새로 건설된 항만 옆에 새로 문을 연 목화체험장의 안내원으로 취직했다. 복순은 시내에 있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고만례상회로 전화를 걸었다. 배고파, 엄마 없어요, 라면. 지소는 안성탕면 박스를 어깨에 지고 복순의 집에 갔다. 라면 두 봉지를 끓여 복순과 함께 먹었다. 복순은 더 이상 라면 때문에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그 대신 학교에서 만난 선생님과 친구들, 사람들 때문에 웃고 울었다. 복순은 학교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경험한 일을 지소에게 전했고 복순의 순수한 감정은 여전히 지소를 무방비상태로 만들었다. 

복순의 할머니를 보내드린 날, 복순의 어머니는 평상에 앉아 새우깡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지소는 그 옆에 앉아 저물어가는 해를 보고 있었다. 평생을 목화솜 만드는 일을 하셨어요. 오래전 이 마을에 육지면이 재배되고, 이 밭 저 밭들이 모두 목화밭이었대요. 목화솜에서 씨를 빼는 일을 하셨다고. 하루 열 시간 씩, 손톱이 남아나질 않았어요. 징그러워 쳐다보기도 싫었을 텐데, 목화가 벌어지고 하얀 솜이 탱글 하고 나올 때면 그렇게 좋아하셨어요, 아이처럼 좋아하셨다니까요. 평생을 그렇게 고되게 일하셨으면서도 어쩌면 그리 한결같이 좋아하셨는지…. 

지소는 복순의 집을 처음 찾은 날 벽을 향해 앉아있던 작고 굽은 등을 생각했다. 지소가 알 수 없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던 작고 마른 손. 눈처럼 희어, 눈이 온 것처럼 천지가 희어, 라며 환하게 웃던 얼굴. 아주머니도 좋으세요, 목화체험장에 목화솜이 탱글 하던데요. 할머니가 평생 보시던 걸, 이제 아주머니가 보시네요. 두 분이 같은 걸 보시네요. 

머위나물에 점심을 먹고 나자 에효노인이 가게로 들어왔다. 

“일찍 와야 해.”

“늦을 수도 있어요.”

“가게 보는 사람이 일찍일찍 다녀야지.”

“붙박이 되라고요?”

“뭔 붙박이? 다리 달린 짐승이 어떻게 붙박이가 되누?”

“제 말이요.”

“오늘 봐준 걸로 이번 달 외상 까는 거야. 에효.”

“당연하죠.”

목양교회 앞에 현준 씨가 와 있었다. 차려입은 옷차림에 꽃다발을 들고 있으니 딴 사람 같았다. 처음 보는 승용차도 서 있었다.  

“저 차는 뭐예요?”

“전도사님이 중고차를 하나 사셨대요. 걸어만 다니기에 섬이 너무 크다고.”

“나는 스쿠터를 하나 살까 봐요. 배달 다니기에 섬이 너무 커요.”

“제가 사드릴까요?”

“저 돈 잘 벌어요, 고만례상회는 독점 가게잖아요.”

세 사람이 차에 탔다. 중간에 배춘영 씨를 태운 뒤 전망대로 향했다. 섬 가운데 아담하게 솟아있는 산꼭대기로 오르는 길에 도로가 났다. 드라이브 코스로 각광받는 곳이 되었고 사방의 바다와 육지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건립되면서 여행객들도 늘었다. 푸른 바다가 배경처럼 펼쳐진 전망대 일층에서 복순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복순이 다니기 시작한 학교의 미술 선생님 때문이라고 전도사가 말했다. 지소와 배춘영 씨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사람들은 무척 흥미롭게 그림들을 관람했고 전시 후기를 SNS에 올려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전시의 성공에 힘입어 관할구청에서 동굴역사탐험단을 꾸리고 시민들을 모집했는데 접수 하루 만에 인원이 마감되었다는 소식을 전도사가 전했다. 탐험단의 역사해설은 용희 씨가 맡았는데, 그보다 더 적격자는 없을 것 같았다. 

복순은 어머니와 함께 관람객들을 맞고 있었다. 지소에게 그런 것처럼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는 순진무구함 때문인지 복순을 만난 이들은 금세 환한 얼굴로 웃었다. 복순이 지소를 보고 폴짝 뛰어왔다. 현준 씨가 꽃다발을 건넸고 전도사는 주님이 기뻐하실 겁니다, 라고 인사를 건넸다. 지소과 배춘영 씨는 박수를 쳤다. 고만례상회가 품고 있는 동굴 그림은 훨씬 풍성해져 있었다. 느티나무는 더욱 늠름하게, 동굴은 훨씬 깊고 검게, 그리고 아이는 선명하게.   

“전시회 축하드려요, 최복순 작가님.”

복순이 웃었다. 예쁜 미소였다. 

“라면, 라면 먹어요.”

“그래요, 같이 라면 먹어요.”

“목격자 동굴, 제목이 근사해요.”

배춘영 씨가 말했다. 

“지소가 했어.”

복순이 말했다. 

“복순이 한 거야. 복순은 알잖아. 동굴이 우리 옆에 있다는 걸.”

지소가 말했다. 

“동굴은 우리 옆에 있어. 동굴은 다 알아.”

복순의 말에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이런 좋은 분들이 우리 딸 옆에 계셔서, 정말 모두 감사드립니다.”

복순의 어머니가 슬쩍 눈을 붉혔다. 그때 그림을 보던 여자아이가 복순에게 다가왔다. 

“작가님 맞죠? 사인 좀 해주세요. 저 동굴 엄청 좋아하거든요. 알타미라 동굴 가보는 게 꿈이에요. 거기 소 그림 보셨어요? 다음에는 동굴에 소도 그려주세요.”

“소 없어.”

“없어도 그리면 있잖아요.”

“없어도 그리면 있어.”

“그럼 소 그려주는 거죠?”

아이가 웃었다. 복순은 아이가 건넨 스케치북에 크고 굵은 글씨로 이름을 썼다. 모두 박수를 쳤다.

“복순은 자격이 있어요. 소중한 것을 지킬 자격, 소중한 것이 다치지 않도록 사람들에게 알릴 자격이요.”

지소가 말했다. 고만례상회가 품은 동굴로 들어섰을 때 지소는 느낄 수 있었다. 지소가 알지 못하는 어떤 순간의 감정들이 고요하게 뒤섞여 자신에게 닿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는 남에게 들키지 않아야 하는 울음을 동굴에서 터뜨렸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곳에서 신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빌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미래를 약속한 이를 초조하게 기다렸을 것이고, 누군가는 약속조차 없었던 이의 귀환을 빌었을 것이다. 그런 마음들이 지소에게 닿았다. 슬프고 간절하고 원망스러운 그런 것. 그 모든 게 신기하게 복순의 그림에 담겨 있었다. 지소는 복순 또한 동굴에서 그걸 느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경험을 저렇게 표현해내다니. 복순은 타고난 화가였다.  

그림을 보고 네 사람은 전망대에 올랐다. 툭 터진 바다와 그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마을과 도시가 생생했다. 저기가 고만례상회이고 저기는 이층양옥이고 저기는 수변공원이고 저기는, 하고 있을 때 용희 씨가 말했다. 

“카누, 타보실래요.”

“카누요? 해가 지는데요?”

“그러니 더 멋있죠. 여기까지 왔으니 타봐요. 근처예요.”

“지소 씨, 그렇게 해요. 우리는 몇 번 타봤어요.”

배춘영 씨가 말했다.  

“아, 그럴까요.”

전도사는 대교를 건너 해안가 도로를 따라 차를 몰더니 카누체험장 앞에 지소과 용희 씨를 내려주었다. 체험을 마친 사람들이 배에서 내리고 있었고 안내원들은 장비를 정리하느라 바빠 보였다. 용희 씨가 안내원에게 인사를 하고 노를 받았다. 신발과 재킷도 가져왔다. 노는 패들이라 했고 신발과 재킷은 워터슈즈와 라이프재킷이라고 했다. 용희 씨는 재킷을 지소에게 입혀주고 몸에 맞도록 끈을 조여 주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묶여 있는 카누 중 첫 번째 것에 올랐다. 작고 가느다란 배에 오르는 건 쉽지 않았고 무게중심을 잘 잡아야했다. 패들을 잡았지만 생각보다 무겁고 저어지지 않아 허둥대다가 배가 좌우로 요동쳐 깜짝 놀랐다. 용희 씨가 슬쩍 웃으며 그냥 앞쪽에 앉아요, 라고 말해 지소는 용희 씨에게 등을 보이고 앉았다. 나 보고 앉아요, 라고 용희 씨가 다시 말했고 지소는 몸을 돌려 앉아 용희 씨와 마주 보았다. 용희 씨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능숙하게 패들을 저었다. 좁은 만처럼 조성된 수로를 따라 카누는 나아갔다. 지소는 맞은편에 떡하니 있는 용희 씨가 부담스러워 바다와 절벽, 하늘과 구름, 새 따위를 바라보았다. 해가 지고 있었고 저녁 햇살을 받은 물결이 주황빛으로 빛났다. 마치 붉은 바다를 건너는 느낌이 들었고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도 들었다. 

“누군가의 꿈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요.”

“좋다는 거죠?”

“아름다워요.”

지소는 물고기 같은 용희 씨의 눈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잘 지내시죠?”

지소가 물었다. 노대기 씨와 함께 해안동굴을 방문한 지 몇 달이 지났다. 동굴을 함께 찾자는 제안은 지소가 했다. 그날 밤 노인이 쓰러지고 난 후였다. 전도사가 노대기 씨에게 말을 전했지만, 가타부타 대답이 없었다. 되레 감기 걸린 듯 앓아누웠고 여러 날 동안 밥을 잘 먹지 못했다. 전도사는 매일 밤 노인 옆에서 기도했고, 에효노인은 전복죽을 해왔다. 지소는 괜히 그 집 앞을 어슬렁거렸다. 어느 날 저녁, 가게 문을 닫고 노대기 씨는 어떤가 하고 산24번지에 들렀다. 마당에서 화단의 수국을 바라보고 있는 그와 마주쳤다. 노인은 물속에 잠긴 것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지소가 말했다. 어죽 좋아하신다는데, 좀 끓여드릴까요? 노대기 씨가 수국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생선 싫어한다는 이가 어죽을 어찌 끓이누? 지수가 말했다. 저도 할 수 있어요, 제가 해드릴게요. 

노대기 씨가 고개를 돌렸다. 물고기 같은 눈으로 꽤 오랫동안 지소를 바라보았다. 때 아닌 진눈깨비가 내렸다오, 라고 노대기 씨가 말했다. 지소는 기다렸다. 오래된 이야기, 오래되었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시작되려 했다. 그럴 때는 달리 기다리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지소는 이제 알고 있었다.     

뗏목을 만들었다오. 가진 거 없는 몸뚱아리였으니 배를 사기는 힘들었지. 나무야 어떻게든 구할 수 있었소, 항만을 건설하고 도로를 깔고 건물도 쑥쑥 올라가던 때였으니까 자재는 있었지. 그걸 훔쳐내는 것도 물론 쉬운 건 아니었소. 두 사람이 타도 거뜬하게 버티려면 굵고 튼실한 놈들이어야 했소. 일 끝나면 밤에 빠져나와 나무를 훔쳐 숲으로 숨겨놓았다오. 동굴 파는 일은, 휴. 죽을 만큼 힘들었소. 곡갱이로 파고 또 파고, 허리 한번 펼 수 없이 일했소. 그렇지 않으면 몽둥이나 채찍이 날아오니까. 십장은 언제든 몽둥이를 휘두를 준비를 하고 우리를 감시했소. 그때 열일곱 살이었으니 버텼던 것 같소. 나이든 사람들은 픽픽 쓰러져 죽어나갔지. 장례를 치러주지도 않았소. 저쪽 산 너머 샘골에 구덩이를 파서 한데 묻어버리면 그뿐이었소. 해방되고 나서야 유골이 발견되었잖소. 가족들이 그제야 제사를 지냈지. 나야 부모 없이 부랑자처럼 전국을 떠돌다 이곳 바다끝 서랑마을까지 오게 되었으니 그때 죽었더라면 제삿밥도 못 얻어먹을 처지이긴 했소만. 서랑마을에 와서 처음에는 항만에서 일했소. 여기 항구가 일본으로 쌀이며 목화며 소금을 실어나르는 기지였잖소. 하루 종일 배들이 들고나고 하니 일은 많았지. 새벽부터 짐을 내리고 싣고 하면서 배는 곪지 않았소. 그러다 갑자기 군인들이 돌아다니면서 남정네들을 모으기 시작했소. 걸어다니는 이면 모두 끌려갔지. 총을 들이대고 채찍을 내리치는데 달리 수가 없잖소. 배를 태워 해안으로 데려가더니 곡갱이 하나씩 주고 굴을 파라는 거요. 단단한 바위를 어떻게 뚫으라는 거요, 라고 누가 물으니 채찍으로 답하더이다. 그렇게 맨손으로 굴을 팠소. 새벽부터 밤까지, 썩어가는 감자 한 덩이로 주린 배를 달래면서 손가락이 짓무르고 어깨가 떨어져 나갈 때까지 파고 또 팠소. 죽어야 끝나겠구나 생각했소. 죽어나가는 이를 보면 이제 고단하지는 않겠구나 생각했소. 그런데 그보다 더 참기 힘든 게 있었소.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그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는 거요. 부랑자로 전국을 떠돌면서 어디든 뿌리내리고 살날이 오겠지 했소. 나를 낳은 부모와 가족으로 살지 못했어도 내가 가족을 꾸리면 된다 생각했소. 서랑마을에서 가만례를 본 순간 저이구나 싶었소. 은복사에서 그이를 처음 본 날부터 내내 그 생각을 했소. 그이와 함께 아무도 없는 먼 곳으로 가서 살아야겠다. 사람답게, 사람처럼 살아야겠다. 기모노를 입은 가만례는 저와 꼭 닮은 처자와 손을 부여잡고 울고 있었소. 이상하게 그 눈물이 말하는 모든 것을 나는 단박에 알 수 있었소. 내가 숱하게 흘리던 그 눈물과 닮아 있었으니까. 그이도 그걸 알았을 것이오. 그러니 가진 것 없는 내게 마음을 연 것 아니겠소. 가만례와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소. 사람답게 살고 싶었소.  

뗏목을 만들었소. 두 사람이 타도 거뜬한 걸 만들었소. 기일을 정했고 뗏목을 해안동굴에 대기로 했소. 그곳에서 가만례를 태우고 멀리, 바다 멀리 나갈 참이었소. 낚시는 자신 있었으니 고기를 잡고 빗물을 받아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했소. 

그런데 그날 가만례가 오지 않았소. 가만례는… 밤새 기다렸지만 그이는 오지 않았소. 새벽별이 떠오르기 시작했소. 사정이 생긴 거라 생각해서 뗏목을 다시 숨겨놓고 동굴을 파러 갔소. 군인들이 떼를 지어 사람들을 수색하고 다녔소. 밤새 군인 하나가 죽어서 바다에 시체로 떠올랐다고 했소. 조선인들은 감금되다시피 했소. 밖으로 나갈 수 없었고 돌아다닐 수 없었소. 잠깐 동굴에 나갔다가 총 맞아 죽은 이들도 있었소. 마을 전체가 쥐죽은 듯 조용했소.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내가 동굴에 갇혀있는 것 같소. 가만례에게 가야하는데,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 사람은 내가 갈 때까지 나를 기다릴텐데, 배 고픈 줄도 모르고 잠 오는 줄도 모르고 나를 기다릴 텐데, 가만례, 가만례.

며칠 뒤 고만례를 만났을 때 가만례가 떠났다는 말을 들었소. 나는 여기에 있고 뗏목도 그대로인데 가만례만 떠났소. 어디로 갔는지 고만례도 알지 못했소. 죽은 사람이라 여기고 잊으시오, 라고 말했다는 성의 말을 전하고 울기만 했소. 그때부터 찾아다닌 거요. 팔도 안 가본 데가 없소. 누가 비슷한 사람을 봤다는 말을 들으면 그 길로 떠났소. 가보면 아니었소. 닮은 누구이던가 이미 다른 데로 가고 없던가. 그 후 오랜 시간이 흐르고 그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고만례가 전해주었소. 나는 믿지 않았소. 그이는 죽지 않았소. 살아 있소. 나는 알 수 있소. 나는 안단 말이오. 

노대기 씨가 말을 멈췄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수국이 흔들리면서 연한 꽃향기가 코에 닿았다. 지소가 말했다. 그분이 남기신 게 있답니다. 아직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있을 것 같고요. 어르신이 찾아주길 바라지 않을까 싶어요.


                                                                           *


그렇게 노대기 씨는 용희 씨의 배에 올랐다. 전도사와 지소까지, 작은 배가 꽉 찼고 서로의 무릎이 닿았다. 별말은 없었다. 해안동굴이 모습을 드러내자 노대기 씨는 무릎 위에 올려둔 손을 떨었다. 전도사가 그의 등을 쓰다듬고 손을 어루만졌다.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노대기 씨는 불한당처럼 움푹 팬 동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바람이 거세지 않아 배는 어렵지 않게 동굴로 들어섰다. 바닥이 드러나자 배를 대고 내렸다. 전도사와 용희 씨가 노대기 씨를 부축했다. 지소가 랜턴을 비추며 앞서 걸었다. 지하 삼거리를 지나 고만례상회로 향하는 동굴로 걸었다. 막힌 벽이 나타났다. 지소는 가게에서 찾은 기다린 효자손으로 틈 속을 헤짚어 보았다. 무언가 뭉툭하니 걸리는 것이 있었다. 효자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조심스럽게 그것을 꺼냈다. 낡고 찢어진 천조각이었다. 아마 앞섶을 여미는 고름 같았다. 지소는 조금 높은 위치에서 더 깊이 효자손을 넣었다. 묵직한 것이 걸리는 느낌이 들었고 지소는 안간힘을 쓰고 그것을 꺼냈다. 얇은 옷이었다. 찢기고 올이 헤져 원래의 색깔을 알아볼 수 없었고 곰팡이 냄새가 났지만, 옷감에 새겨진 작은 벚꽃은 알아볼 수 있었다. 지소는 옷을 노인에게 건넸다. 노인은 옷을 받아들고 한참동안 그것을 바라보다 주저앉았다. 노인의 입에서 침묵의 비명이 흘러나왔다. 전도사가 노인을 안았다. 소리 없는 비명이 동굴을 가득 채우다 파도를 따라 흘러나갈 때까지 세 사람은 조용히 노인 곁을 지켰다. 

한참 후 네 사람은 동굴을 빠져나왔다. 노대기 씨의 눈은 젖어 있었다. 그러나 처음 봤을 때처럼 슬픈 짐승의 것은 아니었다. 슬프나 말끔한, 애절하지만 늠름한 눈빛이었다. 정작 벌건 건 용희 씨의 눈이었다. 용희 씨는 울음을 삼키지 못하고 흐느꼈다. 노인이 용희 씨를 안았다. 이 할비가 죄가 많아, 내 새끼 고생만 시키고, 이 할비가 미안하다, 내 새끼, 미안하다. 전도사가 두 사람을 껴안고 말했다.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지소가 말했다. 

“기도가 신에게 잘 닿았으면 좋겠어요, 꼭이요.”

무리는 배로 돌아와 선착장으로 향했다. 서로의 무릎이 조금 더 닿았다. 노인에게 손을 잡힌 채 뒤돌아 울고 있는 용희 씨 뒤로 반짝거리는 비늘을 뽐내며 물고기들이 싱싱 날아올랐다. 이다지도 눈부신 날이라니, 하늘과 바다의 색깔이 현실의 것이 아닌 듯싶어 지소도 울었다. 

카누에 물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찰랑찰랑 하고 났다. 나무통 안에 맑은 물이 출렁이는 듯한 경쾌한 소리였다. 무동력 배라서 가능하지 싶었다. 

“할아버지 요즘 바쁘세요. 이곳저곳 찾는 이들이 좀 있어서. 어디 연구원, 역사회 이런 곳에 가셔서 인터뷰도 하고 증언도 하고요.”

“잘 되었네요, 잊히면 안되는 거니까요.”

“너무 열심히셔서 몸 상할까 걱정입니다.”

“강한 분이잖아요. 당신이 원하는 일이고요. 근데 이 배를 직접 만든다는 거죠? 생각도 못해봤어요. 이런 걸 사람 손으로 만든다는 건.”

“모든 과정이 수작업이에요. 인류 최초의 배가 카누인건 알죠? 처음에는 굵은 나무속을 파내서 물에 띄웠지만 지금은 스트립을 조합해서 선체를 만들죠. 나무와 약간의 보조물, 그리고 사람의 손만으로 만들어요.”

“그걸 혼자서 다 해요?”

“그래서 좋아요. 처음 배의 뼈대를 만들고 마지막 배를 물에 띄우는 것까지 모두 할 수 있으니까요.” 

용희 씨는 만이 끝나는 지점에서 잠시 노젖기를 멈추고 숨을 골랐다. 노를 젓지 않는데도 카누는 물살을 따라 천천히 흘러갔다. 

“어렸을 때부터 배를 만들었어요. 나무토막을 자르고 송곳으로 속을 파내고 끌로 다듬고. 시간이 많았어요, 말릴 어른도 없었고.”

“부모님은…”

“얼굴 본 적이 없어요. 할아버지도 혈연관계는 아닙니다.”

“그래서 경계조정 동의서를 안써줬잖아요. 제가 이곳 반달섬에 처음 왔을 때요.”

“그랬나요? 벌써 까마득해서.”

“저도 그래요.”

두 사람은 웃었다. 

“할아버지랑 함께 살 때도 얼굴 보기는 힘들었어요. 누굴 찾으러 다니셨으니까요. 동네사람이 어디서 보았다 하면 산골짜기까지 가시고, 비슷한 사람이 있더라 하면 바다고 섬이고 찾아갔으니까.” 

“가만례.”

용희 씨는 얼굴을 끄덕였다. 

“몸이 아파 멀리 못 가게 되면서부터는 물고기를 잡았어요. 처음에는 할아버지와 낚시하는 게 좋았습니다. 할아버지가 내 옆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들뜨고. 할아버지가 구이를 해주거나 찌개를 끓여주거나 해서 둘이 먹을 때면 얼마나 좋았는지.”

깎고 또 깎아 아름다운 곡선을 갖게 된 나무배를 손에 쥐고 할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하고 찌개를 먹는 어린 소년이 그려졌다.

“그러다가 할아버지가 물고기를 죽이기 시작했어요. 먹으려고 죽이는 게 아니라 그냥, 살아있는 걸 기절시키지도 않고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고. 그렇게 찢겨진 고기들이 파닥거리며 내게 튀었고. 동네 사람들은 드디어 미쳐간다 했죠, 몸에 비린내를 풍기면서 이상한 소리를 해대니까.”

순간 어디선가 큰 파도가 일어 카누가 출렁거렸다. 지소는 난간을 움켜쥐고 카누와 함께 출렁거리지 않으려 몸을 이쪽저쪽으로 기울어보았다. 용희 씨는 그저 앉아 있었다. 신기하게도 물살의 출렁거림이 용희 씨의 몸을 그대로 통과해갔고 이내 평온해졌다.

“따로 산지 꽤 돼요. 비린내가 진동하는 그 집에서 살 수가 없겠더라고요. 육지로 건너와 배 만드는 기술을 정식으로 배우고 취직을 했죠. 어릴 때 만든 배보다 훨씬 큰 배를 만드는데 마음은 어째 더 작아지는 것 같았어요. 작아지다 못해 바다 위 한 점 부표가 되어 작은 파도에도 흔들리고 떨고. 아침마다 낚시하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왜 이곳을 떠나지 못하나, 왜 이런 걸 매일 보고 있나, 내가 미친놈이다, 뭐 이렇게 살았습니다.”

“머물러야 할 이유가 있으니까요.” 

용희 씨가 지소의 눈을 바라보았다. 

“지소 씨는 찾은 거군요, 머물러야 할 이유.”

무수히 생각했다. 이유, 고만례상회를 지키는 이유. 가게 맞은편의 가로등이 켜지고 선착장 너머 시커먼 어둠 속에서 오징어잡이 배들의 불빛만이 별처럼 떠다닐 때면, 지소는 김을숙 씨를 기다리며 문 닫은 가게의 계산대에 앉아 있던 그 밤의 소리를 생각했다. 사흘이 지나도 여전히 고만례상회에 머물러 있는 것은 그 아이를 봐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김을숙 씨는, 배춘영 씨는, 가게를 거쳐 간 이들은 모두 그 아이의 눈부신 웃음을 봐버렸다. 고만례상회가 오래 전 누군가의 절실한 꿈이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꿈을 꾸는 아이의 마음이 애틋하기 그지없어, 그 꿈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 꿈을 꿀 때와 같은 마음으로 생의 어느 순간을 살기로 마음먹어버린 것이다. 

동굴과 함께 태어난 붙박이처럼 벽에 기대고 앉아 셈에 열중하는 아이의 모습 위로, 고만례상회에 붙박이처럼 앉아 너무 오래되어 기억나지 않는 어떤 꿈을 뒤적이는 지소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렇게 좋아하던 일, 잘하던 일, 잘하는 자신이 뿌듯했던 일이 지소에게도 있었다는 걸 기억해냈다. 내일 날이 밝으면 어떤 일이 닥칠 건지 알 수 없지만, 슬프고 고통스럽고 서러운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 순간만큼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그저 좋았던 무언가가, 그래, 있었다. 웃음을 흘리고 침도 흘리는 단발머리 친구의 아픈 엄마를 생각하며 친구에게 편지를 쓰던 그 밤, 앞머리를 너무 짧게 잘라버린 미용사를 향해 온갖 저주의 말을 일기장에 쏟아내고 그런 말을 쓸 수 있는 자신이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던 어느 저녁, 고등학생 시절 길거리 버스킹을 처음 보았을 때 쉬고 갈라진 채 기타치고 노래 불렀던 사람 앞에 놓인 동전에 괜히 눈물을 쏟고는 길거리 가수의 고독에 대해 썼던 새벽, 아이가 주판알을 놓고 있었던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지소에게 그런 게 함께 떠올랐다. 그런 순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는 일은 아팠다. 주판알이 빠져나간 휑한 자리처럼 불운했고 슬펐다. 더욱 슬픈 건, 그런 게 있었으나 지소는 한번 부서져버린 그것을 다시 주워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부서지고 상처 난 주판을 다시 품에 안고 셈을 하지 않았다. 불운과 슬픔 속에서도 경매를 진행하는 사람의 목소리만큼이나 크고 우렁차게 숫자를 말하고 주판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걸 깨달으면서 지소는 애초 꽝인 인생이 랜덤으로 주어진 사람의 그 이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소에게 무작위로 건네진 카드는 꽝이었지만 고만례상회를 보고 동굴의 아이를 만나면서 거기에 분명 무언가가 더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꽝을 퀸으로 만들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무의미한 꽝은 아닌 것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 나름의 의미를 놓치지 않고 나와 내게 머무는 자리에 아주 작은 화학적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괜찮은 꽝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 그러다가 언젠가는 꽝 따위 개의치 않고 별 상관도 없는 순진무구한 세계로 들어설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렇게. 그런 생각들을 하며 쪽방에서 깜빡 졸고 있을 때면 지소 자신이 아이인 것도 같고 김을숙 씨인 것도 같고 배춘영 씨인 것도 같고, 지소 얼굴 위로 배춘영 씨의 얼굴이, 양옥의 냉장고에 붙어 있는 사진 속 남자의 것이, 먼 길 떠나가던 김을숙 씨의 것이 겹쳐 보였다. 모두가 고만례가 된 것 같았다. 가게 보는 사람, 고만례상회를 지키는 사람, 고만례.

“카누 태워주어 고마워요.”

“제가 사공이 체질에 맞아서, 어디든 건네 드릴게요.”

용희 씨의 말이 물고기처럼 싱싱 날았다. 지소는 웃었다. 한참동안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의 눈에 접속했다. 

“닮았어요.”

“안 닮았어요.”

“닮았어요. 특히 눈이요.”

“들을 때마다 화가 났죠.”

“지금은요?”

“화납니다.”

대답과 다르게 용희 씨는 슬쩍 웃고 다시 노를 젓기 시작했다. 

“근데 어쩌다가 동굴에 관심을 갖게 된 거예요?”

“카누를 완성하고 물에 띄워 시험운행을 하죠. 안전해야 하니까. 선체가 가볍고 동력도 필요 없고 내가 노를 저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건 매력적인 일이죠. 여기 저기 다녀요. 섬이 많은 곳이고 그만큼 색다른 풍경도 많고. 근데 우리 섬에 유독 동굴이 많았어요. 처음에는 어, 신기하다, 했는데 뭔가 좀 어색한 느낌이 들고, 다른 동굴들도 마찬가지로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행색이고. 저건 사람이 만든 거다, 했죠. 공부를 할수록 왜 이걸 몰랐을까, 싶었습니다. 섬에서 태어나고 섬 주위를 맴돌며 살았는데.”

“가장 가까이에 있는 걸 모르기도 해요.”

“맞아요. 할아버지, 할아버지를 몰랐어요.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몰랐던 거죠. 동굴에서 그 옷을 발견하고, 할아버지가 평생을 찾던 그분 거라는 걸 알고서…”

“마음이 아팠을 것 같아요.”

“미워 죽을 것 같았어요. 그분을 찾는 동안 나는 잃어버렸으니까. 할아버지는 나를 놓쳐버렸으니까. 그 시간은 다시 오지 않잖아요. 할아버지와 낚시를 하고 찌개를 끓여먹으며 좋아했던 소년은 영원히 사라져버렸으니까요.”

“정말 사라졌을까요? 저는 왜 그 소년이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죠? 세상에 둘도 없이 소중한 듯 나무배를 깎고 다듬으면서 어딘가에 있을 것만……”

용희 씨가 카누의 속도를 높였다. 배는 스윽스윽 앞으로 나아갔다. 

“근데, 어젯밤 꿈에요. 물고기가 나왔습니다. 바로 내 눈앞에서 나를 보더라고요. 수없이 물고기를 봐왔지만 물고기 얼굴을 그렇게 자세히 본 건 처음인 것 같았어요. 눈은 동그랗고 입은 오물오물한 게 귀엽더라고요. 눈이 뭐랄까, 너무 순수해서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처음에는 한 마리가 내게 다가오더니 두세 마리가, 나중에는 한 무더기가 내게 온 거에요. 이 녀석들이 검회색 비늘을 가졌는데, 알죠? 그거 어쩔 땐 번들거리면서 좀 무섭잖아요. 근데 하나도 안 무서워요. 거기서 빛이 나고 있었거든요. 빛이.”

“지금까지 용희 씨 말 중 가장 길었어요.”

“아, 지루해요?”

“아름다워요.”

“어떻게 그런 빛이 나죠? 물고기들이랑 한참 놀다가 깨어보니…”

“눈물이 베개를 적시고 있었죠?”

“어떻게 알았어요?”

“저도 그랬어요.”

“아…….”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용희 씨, 오랫동안 그 꿈을 생각하게 될 것 같아요. 무슨 의미일까 골똘히 생각하지 않아도 언젠가 그 의미는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 같아요. 예상치 못한 순간에 물고기가 물 위로 싱싱 떠오를 때처럼요. 그럴 것 같아요, 지소 씨. 용희 씨의 눈빛이 꿈에서 본 물고기의 것처럼 순진무구했다.  

     

                                                                                            *     


“왜 물고기를 갖다주셨을까요, 용희 씨 할아버지요.”

“그이가 거기 있으니까.”

“물고기가 없어지긴 했어요.”

“설마 먹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이가 있다면서요.”

“젊은 사람이 뭐가 그렇게 어수룩해? 비린내가 난다 싶으면 누구든 물고기를 바다에 돌려보내는 게야.” 

“먹는 게 아니고요?”

“못 먹어 죽은 귀신이 씌었나.”

“그렇다고 하던데요. 에효 할머니가.”

“늙으면 간혹 미친 소리가 나와.”

지소는 낙지를 씹어먹고 바지락을 까먹으며 말했다. 

“팔찌 찾았어요. 단단하게 실로 엮었으니까 이제 안 끊어져요. 저도 같은 걸 만들었고요.”

지소의 손목에 걸쳐 있는 팔찌를 노인은 말없이 바라보았다. 파란색 실에 오똑 꿰어 있는 하나의 주판알이 세상에 둘도 없는 보석처럼 빛났다. 

“가만례상회가 아니라 고만례상회인 게 궁금했는데 이제는 아니에요. 그게 뭐가 중요한가요. 누군가의 꿈이 이루어졌다면 그걸로 된 거죠. 셈을 잘하던 그분, 셈을 잘해 꿈이 생겼으나 그 꿈  때문에 절룩거리는 다리를 갖게 된 그분, 그분은 고만례이기도 하고 가만례이기도 하잖아요.”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어. 죽는 날까지. 온갖 일하며 병신 소리 듣고 살았을 때도 원망 한 번 안했어.”

“점방이 생겼을 때 얼마나 좋아하셨을까요.”

“둘이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한참 울고나서 점방에 앉아 척척 주판으로 계산을 했지. 백 단위든 천 단위든 척척 해냈지.”

“경쾌하게 주판알을 움직였겠죠. 소금쟁이가 물 위를 걸어 다닌 것처럼. 그때가 가장 행복했을 거예요. 그 시간이 길지 않았을지라도 행복한 기억이 있다면 괜찮은 거잖아요.”

“길지 않았지. 얼마 못 살거라는 건 그이나 나나 알고 있었어.”

“그래서 어르신이 돌아온 거군요. 고만례로 살기 위해. 고만례를 지키기 위해.”

“내 손으로 사람을 죽였어. 그 어린 군인이 죽을 때 가만례도 죽었어. 반달섬 사람들 생각하면 죽어 마땅한 놈들이었지만 그렇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으니까. 가만례라는 이름으로 살 수 없었어. 가만례는 세상에 없는 사람이어야 했지. 죽은 사람이어야 살 수 있던 거요. 고만례, 내 아우는 죽어서까지 이 성한테 모든 걸 주고 갔어. 내게 반달섬의 삶을 주었으니까.”

“그 옷이 가만례의 유품인 셈이네요. 가만례로 살았던 마지막 옷, 가만례가 남긴 마지막 흔적. 노대기 씨도 이제 받아들인 것 같아요. 그 옷을 받고 한참을.”

“오래 걸리는 일이었소. 사람 마음 돌이키기가 그리 어려운 법이야.”

“고만례로 돌아왔으니 고만례상회를 보시지.” 

“나는 셈을 못해.”

“알아요. 뚝배기탕은 잘 끓이시죠.”

“해감 잘 됐지?”

“뻘이 씹혔어요.”

“복불복이야.”

“화나요, 서운하고. 왜 나한테만 그런가 싶고.”

“탁, 하고 뱉어버려.”

“그러고 말아요? 그러면 돼요?”

“하던 거 해야지. 마저 먹고 마저 씹어. 숨도 쉬고.”

“그렇죠, 숨은 쉬어야 해요.”

“숨이 영 안 쉬어진다 싶으면.”

“싶으면?”

“따져야지. 이건 아니다, 잘못된 거다, 잘해 주라, 따져.”

“복불복이라 그러면요?”

“지랄 염병하고 자빠졌네, 욕해줘.”

“지랄 염병하고 자빠졌네.”

“잘한다. 허헛, 따질 줄도 아는구먼.”

“그런 거 모릅니다.”

“알고 있어, 알고 있잖나, 허헛.”

누군가의 얼굴을 담고 있는, 나이를 알 수 없을 만큼 늙은 노인을 지소는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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