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차려진 밥상이었다. 찰밥과 육개장, 굴전에 머위나물까지 푸짐했다. 지금이 머위철이죠, 라며 배춘영 씨는 맛있게 먹었다. 지소는 배춘영 씨의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딱히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니었고 눈 둘 곳이 마땅치 않아 그런 것이었다. 그것도 그랬고, 사실을 말하자면 배춘영 씨의 모습은 아주 묘한 느낌을 주었다.
배춘영 씨는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전에 본 적이 없다는 의미에서 모르는 얼굴이라는 뜻이 아니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전혀 짐작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그랬다. 얼굴도 그랬고, 배춘영 씨가 어떤 동작을 하든 그런 장면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배춘영 씨가 무얼 해도 지소는 마치 그런 장면을 처음 보는 이의 심정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고개를 든 배춘영 씨와 눈이 마주친 지소는 황급히 시선을 돌리면서 생각했다. 누구든 이 사람 앞에 서면 스스로를 낯선 이방인처럼 느끼게 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술을 한잔 마시고 싶네요, 라고 배춘영 씨가 말했다.
“주님 앞에서 다른 주님을 찾는 겁니까.”
전도사의 말에 배춘영 씨가 웃었다. 예쁜 웃음이었다.
“가게 냉장고에 매실주가 있는데 밥 먹고 가서 한잔 마실까요? 여기 안주도 있고요.”
지소를 보고 한 말이었다. 매실주, 매실이라는 과실로 담근 술, 마시고 나면 뭔가 넉넉해지고 뭐든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그 술.
지소는 배춘영 씨와 함께 고만례상회로 돌아왔다. 배춘영 씨가 냉장고에서 이 리터짜리 페트병을 꺼냈다. 강강술래 달 밝은 물. 뚜껑을 열어보고 냄새를 맡더니 잘 익었네요, 라고 말했다. 지소는 전도사가 챙겨준 머위나물을 꺼냈다. 배춘영 씨가 익숙하게 쪽방으로 걸어갔다. 지소는 그제야 잊고 있었던 물고기를 생각했다. 어망은 비어 있었다. 그럴 줄 알았다, 라는 심정이었다.
배춘영 씨는 초록색 패브릭 소파에 파묻혀 생수병에 담긴 술을 유리컵에 따랐다. 지소의 잔에 가득, 자기 잔에 가득 따르고서 페트병이 다 비워졌는지 흔들었다. 지소도 슬며시 배춘영 씨 옆에 앉았다. 두 사람이 앉은 소파는 바닥에 닿을 정도로 푹 꺼졌다.
“원래 이렇게 가득 따라 드세요?”
“한잔, 이렇게 딱 한잔이요.”
배춘영 씨가 유리컵을 들어 건배를 청했고, 지소는 너무 과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살짝 부딪쳤다. 배춘영 씨는 한 모금을 작게 마셨고 지소는 크게 마셨다. 이층 양옥에서 마신 술보다 조금 더 진했는데 상큼하게 혀에 감기다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부드러움은 같았다. 지소는 젓가락으로 깍두기를 집어먹었고 배춘영 씨는 머위나물을 집어먹었다.
“제게 주신 가방, 가, 라고 딱 한 글자 있는 거, 원래 어떤 단어였나요.”
“가수요. 우리 마음속 영원한 가수.”
“아…”
“20주기 추모 공연 현수막이었어요.”
“그걸 저렇게 만드시는군요. 글자 하나만 따서 무섭게 가, 그러고.”
“반대쪽은 와.”
“가라 그러고 또 오라 그러고.”
“오라 그랬다 다시 가라 그런 것일 수도요.”
지소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앞뒤 구별이 없으면 어떻게 해요. 앞이 있고 뒤가 있어야지. 가고 오는 것과 오고 가는 건 다르잖아요. 오면 여기 있게 되고 가면 여기 없다는 건데, 하늘과 땅 차이이지 않나요.”
“하늘과 땅도 멀리서 보면 붙어 있어요, 지평선처럼.”
“여기는 아니죠.”
“여기도 멀리서 보면 지평선처럼 보일 걸요. 그냥 보통의 일이죠, 갔다가 오고, 왔으나 또 가고, 그러다가 다시 오고 그러는 거. 어떻게 가고 오는지, 어떻게 있는지, 그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어떻게 가고 오냐고요. 어떤 마음으로 그러냐고요.”
배춘영 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으로 유리컵을 만지작거리다 적은 한 모금을 마셨다. 찔끔 마시는 것 같았는데 술은 성큼 줄어 있었다. 그의 눈길은 바다를 배경으로 한 유채꽃밭에 가 있었다. 유채꽃을 흔드는 바닷바람이 지소에게도 불어오는 듯했고 꽃향기까지 나는 듯했다. 뭔가 하나의 점을 향해 모아들던 것들이 확 풀어지는 느낌, 매실주 탓일 것이다. 소파에 등을 기대며 지소가 물었다.
“어떻게 이곳으로 온 거예요?”
“아마 다르지 않을 거예요, 지소 씨가 이곳으로 오게 된 이유와.”
“저는 일 때문에 왔어요. 원래는 다른 이가 담당이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 어쩔 수 없었어요.”
지소는 뭔가 변명조가 되어버렸는데 자신이 무엇을 변명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어쩔 수 있었다면 반달섬까지 오지 않았을 거예요.”
“근데요, 고작 사흘 있었을 뿐인데 처음부터 여기 오도록 되어 있었다는, 뭐 그런 생각이 들어요. 뭔가가 저를 이끄는 건 아닌가 하는.”
“이곳으로 왔을 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배춘영 씨가 아주 먼 곳을 여행하다 문득 돌아와 버린 얼굴로 말했다. 목소리에는 지소가 알지 못하는, 보통이 아닌 일이 일어난 그 밤의 공기가 배어 있었다.
“이 세상은 나라는 사람의 자리 같은 건 내어주지 않는다, 나라는 사람은 세상에서 사라지는 게 맞다, 그런 생각이요. 세상의 끝자락 같기만 했고, 죽기에 적당한 곳일 것도 같았고, 이곳이. 그런 내 입에서 어디 묵을 만한 곳 없을까요, 라는 소리가 나왔어요. 이어도식당의 노인이 끓여준 뚝배기탕을 먹고 난 다음.”
모든 게 그 뚝배기탕 때문이다. 지소는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국물을 떠올렸다. 엊그제 먹었는데도 이처럼 아쉬운 음식.
“내 자리, 그런 게 이 세상에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가게를 보면서.”
“가게를 보면서요, 그런 걸 생각했다고요.”
지소는 다시 크게 한 모금을 마셨다. 담배를 찾아주고, 라면을 주고, 박스를 뜯어 물건을 채워놓고, 가게 문을 열고 닫으면서, 그런 마음이 든다고, 내 자리가 있을 수도 있겠다, 없다고 생각했던 그 자리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정말 그렇구나, 확신을 갖게 된 건 그날, 가게를 본지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그 남자가 찾아온 날… 어떻게 나를 찾았는지, 하긴 내가 도망칠 때마다 귀신같이 찾아내곤 했으니까요.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죽여 버린다고, 도망갈 곳은 어디에도 없다고, 번들거리는 남자의 눈을 보면서 내가 도망칠 곳은 거기, 무덤뿐, 이런 생각이 들곤 했어요. 그런데 그날, 눈이 펑펑 내릴 것 같은데 진눈깨비만 흩날리던 그날, 남자가 언덕을 올라오는 것을 보고 가게로 들어가 냉장고에 걸린 칼을, 두부 자를 때 쓰던 칼을, 그걸 쥐고 평상에 앉아… 남자가 나를 보고 씨익 웃었고. 지옥이 궁금하다면 그 웃는 얼굴을 보면 되요. 남자가 내 팔을 잡으려 했고, 나는 칼을 쥔 오른손을 들고 일어섰고. 남자는 이것 봐라, 하는 표정으로, 네가 뭘 할 수 있겠어, 건들거리면서 내 앞에 우뚝. 벽이 생겼고, 내 앞에, 내가 도망쳐야 했던, 그러나 도망치지 못했던 그 벽이 다시 내 앞에 나타났고. 그때 어디선가 고함소리가. 나는, 여기에 있다, 나는, 너에게, 가지 않는다, 나는 여기에 있다… 소리가 골목길과 슬레이트 지붕을 휘돌아 다시 내게 닿았는데, 한 여자의 죽을듯한 고함소리였는데, 크고 아프고 강한 소리였는데. 그 목소리가 내 것이었다니, 믿기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현준 씨가 내 앞에 섰고 복순이 땅을 구르면서 소리쳤고 예배 중이던 전도사가 성경책을 손에 들고 달려왔고. 자다 깬 노인들이 호미와 낫을 들고 나를 둘러쌌고. 남자가 내게 달려들었고 내 칼끝이 남자를 향했고 남자가 내 팔을 잡았고 내가 남자의 팔을 물었고 남자가 내 목을 졸랐고 사람들이 남자에게 달려들었고. 그때 꾹, 칼이 남자의 옆구리를 꾹, 찌르고 들어갔고… 미친년이 미쳤다, 개썅년이 돌았다, 살인자 쌍년이다, 고 남자가 소리쳤고. 살의로 빛을 내는 남자의 눈동자 위로 다시 고함소리가 들렸고. 사람들이 내게서 남자를 떼어놨고, 남자를 에워싸면서 내게 오지 못하게 했고, 나는 소리를 지르고, 또 찾아오면 죽여 버린다, 너 하나 죽이는 거 아무 것도 아냐, 개썅놈의 새끼 죽이는 거 아무 것도 아냐. 그 새끼 눈동자에 한 여자, 어디로도 도망치지 않겠다는 여자, 다시는 어디로도 내몰리지 않겠다는 여자… 그 새끼가 사람들에게 쫒겨 언덕길을 내려가기 시작했고. 휘청거리며 저 너머 길 끝까지 가는 것을 지켜보고 나서 가게로 돌아와 나는 손을 닦고 얼굴을 닦고 의자에 앉았고, 움푹 파인 의자에 앉아 가게를 봤고. 준진 씨에게 담배를 주고 할머니에게 요플레를 주고 복순에게 라면을 주고 그렇게. 나는 가게를 봤어요. 그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 나는 가게를 보는 사람이니까요.”
배춘영 씨가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컵이 비워졌다.
“한잔 더, 하실래요.”
“딱 한잔, 더도 말고 한잔.”
배춘영 씨가 방바닥으로 내려가 누웠다. 취한 것 같진 않았지만 얼굴은 불콰했다.
“그렇다면 왜 가게를 떠나는 건가요. 배춘영 씨, 그리고 김을숙 씨.”
이렇게 물었을 때 배춘영 씨는 이미 여기 없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김을숙 씨가 길 떠나기 전에 지어보였던 그 표정이라고 지소는 생각했다.
“떠나지 않았어요.”
“떠났잖아요? 김을숙 씨 돌아오지 않잖아요?”
배춘영 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눈을 감고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는 걸로 보아 어느새 잠이 든 것 같았다. 딱 한잔의 술이면 잠들기에 적당한 취기에 젖을 수 있는 사람. 지소는 소파 옆에 개켜진 담요로 배춘영 씨 몸을 덮어주고 쪽방을 나왔다. 믹스커피를 한잔 타서 계산대 의자에 앉았다.
서랑마을은 개 짖는 소리 하나 없었다. 이렇게 고만레상회에 앉아 있으니 지소는 자신이 줄곧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기다리는 사람이 사흘만 가게를 봐달라던 김을숙 씨인지, 사흘이 지나면 만나게 될 거라는 구이순 씨인지, 아니면 노대기 씨인지 혹은 다른 누군가인지 지소는 아리송했다. 잠든 줄 알았던 배춘영 씨가 노래를 흥얼거리는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는듯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면서 방바닥을 가만가만 두드렸다.
딕딕, 디딕, 딕, 디디딕, 딕딕.
*
지소는 잠들지 못했다. 가게를 나와 평상에 앉았다. 어스름한 바다가 어두워지고 어둡던 것이 더 컴컴해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바람이 거칠었다 순해졌다 했고 간혹 밤중에 활동하는 새들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가게 앞 느티나무는 가로등 불빛을 받아 검고 늠름한 수호령처럼 서 있었다. 문득 바람도 소리도 끊긴 것 같이 고요해졌을 때 지소는 일어섰다. 선착장까지 걸어갔다 다시 고만례상회로 되돌아왔다. 바람이 가로수 잎사귀를 흔들고 있는 길을 따라 쭉 걸었다. 산을 왼편에 끼고 돈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걷다 보면 멀리 아주 크고 늠름한 느티나무가 보이고, 나무를 보면서 숨이 턱 차오를 때까지 걷다 보면 교회 건물이 나오고, 그 맞은편에 있는 가게 고만례상회.
가게를 보러 가던 첫날, 삼거리 길에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몰라 길만 쭉 따라가라고 말해준 용희 씨를 원망하던 것이 생각났다. 이제 다시 고만례상회를 찾아가는 지금, 지소는 삼거리와 갈림길이 나와도 어느 쪽 길로 가야 할지 주저하지 않고 길만 쭉 따라가고 있었다. 정말이지 길만 쭉 따라가면 되었다. 갈림길과 샛길이 나타나도 가로등 불빛을 받은 지소의 몸체가 화살표처럼 그림자를 드리운 그 길이 맞았고, 양옆으로 갈라진 삼거리에서도 고만례상회에 이르는 길만이 직진처럼 느껴졌다. 그저 길만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지소는 뭔가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에 대해 생각했다.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의 차이일지도 몰랐다. 고만례상회에 이르는 길이 이제는 낯선 길이 아니라는 사실이 당연한 듯싶었다가, 그렇게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았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일하던 곳이 오층인지 육층인지 생각나지 않았다. 책상이 오른쪽에 있는지 왼쪽에 있는지 허둥댔다.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고 지하철을 어디서 갈아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역을 빠져나가려면 어디로 걸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저 너머 길로 가려면 횡단보도를 어떻게 건너야 하는지 망설였다. 세상은 모르는 길들로 가득했고 알만한 길이라곤 어디에도 없는 시간이었다. 길만 쭉 따라가면 된다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고, 지소가 걸어가야 할 그 길 위로 화살표도 그려지지 않았다.
심란한 마음이 도무지 가라앉지 않고 있을 때, 가게를 향해 급하게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용희 씨였다. 이 밤에 무슨 일인가, 용희 씨는 섬 건너편에서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노인이 연락이 안된다고, 또 없어지신 것 같다고 전도사님이 전화를 하셔서.”
“무슨 일 생긴 건가요?”
“그러지 않길 바라고 있는데, 아직 날이 춥고 바닷물도 차가워서 혹시.”
용희 씨는 급해지려는 마음을 애써 참고 있는 듯 보였다.
“그래서 찾으러 가는 길이군요, 할아버지를.”
“선창가 사시는 분들에게 물어봐도 어제 오후 이후로 안보였다고만.”
“은복사 가봤어요? 어제 저녁에 거기 오셨었는데.”
“없어요.”
“어르신들도 모를까요? 현진 씨는요?”
용희 씨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거기 가신 모양입니다.”
“거기라면.”
“저 물 좀 주실래요?”
용희 씨의 말에 지소는 가게로 들어가 생수를 꺼냈다.
“같이 갈까요? 딱히 도움은 안 되겠지만요.”
“그래주시면.”
지소는 가게를 뒤져 랜턴을 찾아 용희 씨에게 건넸다. 점퍼를 걸치고 신발끈을 고쳐 맨 다음 용희 씨를 따랐다. 용희 씨는 고만례상회에서 위쪽 계단을 따라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마음속에 짐작 가는 곳이 있는지 갈래 길이 나와도 주저하지 않았다. 용희 씨의 거침없는 발걸음과는 반대로 그의 마음이 수만 가지 사념들로 헤매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공터 가운데 풀더미가 보였다. 밤에 보는 그곳은 금방이라도 크고 사나운 짐승이 뛰쳐나올 것 같은 정글이었다. 괜찮겠어요, 라고 용희 씨가 물었을 때 지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가 아니니 괜찮았고 용희 씨도 그럴 것 같았다. 앞쪽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듯 수풀이 흔들렸다. 용희 씨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가 키만큼 자란 수풀을 헤치자 작은 짐승 서너 마리가 후다닥 도망갔다. 지소는 놀라 악, 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용희 씨가 랜턴 불빛을 이리저리 비추다가 한 곳에 멈추었다. 내장이 아무렇게나 파헤쳐져 있는 물고기들의 몸통이 있었다. 비린내가 진동했다. 가게에서 맡은 것보다 훨씬 진하고 역했다. 이 밤에 작은 짐승들이 이걸 먹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옆으로 낚싯대가 놓여 있었다. 기다린 나뭇가지에 줄만 매달아놓은 허술한 모양새가 노인의 것이 맞았다.
용희 씨가 수풀을 뒤지기 시작했다. 간혹 작은 짐승이 도망가는지 풀이 흔들렸지만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용희 씨는 크고 우람한 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들어갔다 한참 동안 보이지 않았다. 그가 돌아와 지소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소는 점퍼 주머니에서 생수병을 꺼내 용희 씨에게 건넸다. 용희 씨가 물을 벌컥 들이켜고 동굴로 걸어 들어갔다. 지소도 뒤따랐다. 허리를 숙이고 어두컴컴한 동굴로 나아갔다. 들어서자마자 비린내가 진동했다. 용희 씨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저벅저벅 걷는 두 사람의 소리가 벽을 타고 흐르다가 되돌아오왔다. 랜턴 불빛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되돌아왔다. 동굴의 막힌 벽 앞에 노인이 있었다.
용희 씨가 랜턴 불빛을 비추어도 노인은 놀라거나 하지 않았다. 노인의 몸은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어 있었고 머리에서 물이 흘러 얼굴과 가슴을 적셨다. 오늘 반달섬에 비가 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노인이 바다에 들어갔다 나온 것일까. 노인 옆으로 어망이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었다. 노인은 검회색 비늘이 달린 물고기 조각을 들고 있었고 발 아래는 내장이 아무렇게나 파헤쳐져 있는 물고기의 몸통이 있었다. 물컹거리는 것들을 꺼내고 훑어내고 하면서 노인은 쉴 새 없이 말하고 있었다. 먹어, 먹어야 살아. 노인은 무척 다급한 듯 손놀림을 빨리 했지만 손은 벌벌 떨릴 뿐 생각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물컹거리는 것들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럴 때마다 노인은 배가 벌어진 물고기를 더 갈기갈기 찢으면서 말했다. 먹어, 먹어야 살아.
몇 개 남지 않은 노인의 이 사이로 삐져나오는 진득한 액체를 바라보면서 지소는 생존자, 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살아내기 위해 감내했던 모든 것의 이름. 위대함보다 슬픔과 가까운, 절망보다 더 절망스러운, 앞에서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죽음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더 죽음 같은 곳으로 달아나야 하는, 그런 것의 이름. 그것은 보통사람의 이해가 도달하지 못할 곳에 속한 것이었고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 어떤 것에 가 닿아 있었다.
용희 씨가 노인에게 다가갔다.
“집에 가요.”
“먹어, 먹어야 살아.”
“용희에요. 집에 가요.”
“먹어야…”
“할아버지!!”
용희 씨가 큰소리를 쳤고 노인이 하던 걸 멈추고 용희 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바라는 보았으나 딱히 용희 씨를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노인의 얼굴은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액체와 물고기의 내장으로 흥건해져 알아보기조차 힘들었다. 범벅이 된 얼굴 속에서 무언가에 사로잡힌 눈이 묘하게 빛을 냈다. 용희 씨가 노인의 두 팔을 잡고 흔들자 노인의 눈빛이 잠깐 선명해지면서 용희 씨를 바라보았다. 노인은 이내 다시 손을 움직여 물고기를 찢기 시작했다. 용희 씨는 노인의 손에 들린 것을 빼앗아 어망 속에 처넣은 다음 동굴 밖으로 나가 수풀 사이로 멀리 던져버렸다. 노인은 용희 씨를 붙잡으며 안돼, 안돼, 물고기야, 물고기야, 라고 소리쳤다. 용희 씨가 물고기를 던진 수풀로 들어가 물고기를 찾았다. 안돼, 안돼, 소리치며 물고기야, 물고기야, 라고 흐느끼면서 노인은 한참을 풀숲을 더듬고 뒤졌다. 노인은 찾아야 하는 걸 찾지 못하자 용희 씨에게 달려와 악을 쓰고 때리고 울었다. 용희 씨가 그만 좀 하세요, 라며 노인의 몸통을 붙잡았고 노인은 먹어야 살아, 라며 목 놓아 울었다. 그 울음을 산짐승의 것으로 착각했는지 새들이 요란스러워졌고 바람도 날카로워졌다.
노인이 쓰러졌다. 용희 씨가 노인을 일으켜 세웠다. 지소는 용희 씨가 노인을 등에 업는 것을 도왔다. 노인의 구겨지고 젖은 운동화를 들었다. 용희 씨를 앞서 걸으며 불을 비추면서 왔던 길을 되돌아왔다. 노인은 용희 씨의 등에서 울었다. 한번만, 죽기 전에 딱 한번만 나를 알아봐주었으면, 가만례야 가만례야…. 저 아래에서 유동하는 검은 물덩어리가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