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과 나, 기억 속 향
나는 비누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언젠가부터 비누에 관한 이야기를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남기는 날들이 재미난 여정이 될 듯하다.
비누와 함께 하지 않은 적이 있던가?
어릴 적 기억으로 잠시 돌아가보면 엄마는 늘 초록 오이비누로 얼굴을 씻고 몸을 씻으셨다.
변변한 목욕탕 하나 없던 시골집 한편에서 엄마는 쪼그리고 앉아서 조약돌 같은 오이비누로 몸 여기저기를 씻으셨다.
엄마가 씻고 나온 목욕탕은 오이비누향으로 가득했다.
향에 관한 내 첫 기억이다.
그 이후 성인이 될 때까지 나는 씻는 것을 좋아했고, 특별히 대중목욕탕과 비누를 좋아했다.
대학 때에 목욕탕 사장님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하고 다닌 기억도 난다.
직장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내 화장대 위에는 늘 향수가 즐비했고, 욕실에는 각종 비누들과 향이 좋은 바디클렌저들이 줄 서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왜 그리 씻는 것과 향을 좋아했는지.
직장 생활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힘들었던 때, 울며 불며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가 보고 싶었지만 갈 수도 없고, 또 전화를 하자니 여의치 않았다.
그날 나는 마트에 가서 초록색 오이비누를 하나 사 왔다.
그 비누로 온몸을 씻고 그 향에 취해 잠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비누는, 향은 그렇게 위로의 도구로 내게 다가왔다.
요가 수련을 하기 시작하면서 만난 것 또한 향이다.
비누에서 향으로 넘어가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요가였다.
한 요가원에서 아로마 요가 수련을 했다. 그냥 딱 느낌이 왔다. '이거구나.'
그날부터 나는 아로마테라피 공부에 심취했고, 요가 수련 또한 더 깊어졌다. 특별히 호흡 수련이 매우 수월해졌다.
코로나가 창궐할 때에 아이들과 제주에 한 달을 머물렀던 적이 있다. 비누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던 때이다.
우리는 최소한의 짐으로 소박한 삶을 살아보자 했고 그때부터 비누를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샴푸 따로 바디샤워 따로.. 그렇게 말고 비누 하나 만들어서 그것만으로 씻어보자 했다.
아이들은 비누 베이스를 주무르며 신나 했고 나는 거기에 에센셜 오일 향을 넣어 향을 맡으며 ‘아 좋다. 이 비누로 친구들과 뭘 할 수 있을까?’ 했다.
경주에서 지내는 동안 사람들과 아로마테라피, 그리고 비누 이야기를 하며 지냈다.
내 곁의 측근들 중에 아마도 내가 만든 비누를 안 써본 사람은 없을 테다.
지금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들이 나를 비누로, 향으로 기억해 줄까? 떠올려본다.
지난해부터 올해... 여러 나라를 여행 중이다.
향으로 그곳을 기억하는 습관이 생겼다.
얼마 전 바르셀로나에 다녀와 사온 비누 하나가 있다. 지금은 다 쓰고 없는 그 비누.
1월에 경주 친구들이 우리 집에 왔을 때 욕실에 살짝 올려 두었다. 그들이 떠나고 닳고 닳은 비누를 보며 그 친구들이 비누를 어루만지며 씻었을 장면을 떠올렸다.
향이 진한 그 비누. 그들은 아부다비를 나와의 기억을 향으로 간직하고 돌아갔을까?
2월 남인도 오로빌에 가자마자 동네의 마트에서 로즈메리비누를 샀다. 오로빌에서 로즈메리 비누로 매일 찬물 샤워를 했다.
로즈메리 비누는 나와 아이들을 씻겨 주었고, 우리는 그 향을 마음에 새겼다.
오로빌에서 눈에 띈 또 하나의 향, 페티그레인 에센셜 오일이다. 나는 왜 그 향을 골랐을까?
글을 쓰며 페티그레인 향을 맡으니 오로빌의 기억이 마구 떠오른다.
향은 그렇게 기억과 연관이 깊다. 적어도 향과 비누는 내게 과거의 한 장면을 회상하도록 해주는 훌륭한 도구이다. 오로빌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오이비누를 좋아했던 엄마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