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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Mar 25. 2024

비누의 인격

프랑시즈 퐁주 <비누> 중



비누는 우리에게 얼마나 멋진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가!

그의 이마는 햇빛에 마르고, 어두워지고, 굳어지고, 주름지고, 갈라진다. 근심 때문에 금이 간다. 비누는 이렇게 비활성 상태로 잊혀져 있을 때 가장 잘 보존된다.


비누는 물에서 오히려 부드러워지고 움직일 수 있어서 편해 보인다. 우리는 그것을 간신히 되잡는다. 이동이 가능한 물속에서 비누는 민첩해지고 수다스러워지고 달변이 된다. 비누는 불안한 모양새로 소비된다. 아무 탈없이 그대로 머물지 못한다. 방종한 실존을 영위한다고 해야 할까...? 나는 비누에서 특별한 품위의 징후를 또한 목격한다...


비누의 주된 덕성은 열정과 다변이다. 적어도 말재주가 있다. 누구도 이 단순한 사실을 말한 적이 없다. 상업 광고 전문가들조차. 피베르나 카둠이 내게 얼마나 줄까? 한 푼도 안 줄 것이다. 그들은 그런 생각을 아예 해본 적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비누의 인격에는 매력적인 뭔가가 있다. 왜 매력적이냐고? 비누의 처신은 더할 나위 없이 호감을 줄 뿐 아니라 동시에 절대 흉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가정집의 가장 조악한(때때로 가장 허름한) 비눗갑에 가만히 쉬고 있는 보잘것없는 조약돌이 여기 있다.

손이 더러운 사람이 도착한다. 잊혔던 비누가 이제 아양을 조금 떨면서 그를 맡을 것이다. 비누는 영롱하게 빛나는 무지갯빛 베일로 자기 몸을 감싼다. 동시에 사리 지려고, 도망가려고 한다. 자연에는 비누만큼 빨리 달아나는 돌은 없다. 그런데 그걸 갖고 놀려면 손가락 사이에 쥐고 충분한 물을 더하여 자극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몽실몽실하고 진줏빛 도는 침을 얻을 수 있다.

반면 물속에 내버려 둔다면 비누는 혼란스러워 죽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비누는 특별한 품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지만 자연의 힘이 자신을 일방적으로 굴리도록 허용하지 않는 돌이다.




이상은 프랑스 작가 프랑시즈 퐁주의 <비누> 중 한 단락이다.  비누를 좋아하는 나는 여러 비누에 관한 책들을 보았지만 비누를 인격으로 표현할 뿐 아니라 이렇게 세세하게 비누를 묘사하는 작가는 처음 보았다. 프랑시즈 퐁주는 1920년대 초반 풍자 시 몇 편을 쓰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초현실주의자들과 사회에 대한 저항 정신을 공유하기는 했지만, 그들과 달리 사물과 언어에 대한 성찰을 통해 사회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길을 택했다고 한다. 첫 시집인 <사물의 편>(1942)이 호평을 받으며 문단에 이름을 알렸고, 그는 시를 '대상놀이'로 규정했다. 그래서일까? 비누에 대한 관찰력, 비누의 움직임과 쓰임에 대한 적절하다 못해 감탄을 자아내는 표현력이 나로 하여금 작가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나의 사물을, 그 한 면을 오롯이 나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 그 표현이 대중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는 것. 나는 그런 그의 표현력이 부럽기까지 하다.

작은 조약돌, 그의 인격, 비누가 뱉는 침, 비누가 겪는 혼란까지도.. 모든 것을 의인화하며 인격적인 비누에 대한 예찬을 쏟아내는 그. 그의 뒤를 이을 누군가가 또 있을까 싶다. 흉내라도 내고 싶다. 적어도 비누에 대해서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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