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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Mar 11. 2024

내 꿈은 목욕탕집 사장님

공중목욕탕에서 찾는 재미

(2023년 2월의 일기)


언젠가 목욕탕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니, 공중목욕탕을 갈 때마다 '목욕탕 이야기'를 글로 남겨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아버지 생신이라 고향집에 내려와 있다.

오늘이 3일째 날.

닷새 정도 머무를 예정인데, 친정은 옛날 집이어서 춥기도 하고, 씻는 곳도 좀 불편하다.

겨울이면 씻기 싫을 때가 많다.

오늘 아침엔 아이들 자는 틈에 목욕탕엘 다녀왔다.​

초등학교 동창 친구가 하는 목욕탕인데, 이 시골에 유일한 대중탕이기도 하다.

내가 얼마나 목욕탕을 좋아하냐 하면.

지금은 좀 덜하지만, 대학 때 잠시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나 목욕탕 사장할까?'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 본적도 있다.

단순히 목욕탕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여하튼 나는 목욕탕, 그것도 대중탕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요즈음 목욕탕에 관한 글을 쓰고 싶다 생각하게 된 것은,

목욕탕 안 재미있는 풍경 때문이지 않을까?

- 대중탕의 재미

남탕을 가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들은 바에 의하면 남탕과 여탕은 차이가 좀 있는데, 참 재미있다.

일단 여탕을 들어가면 라커룸 위 즐비하게 놓여있는 알록달록 개인 목욕 바구니가 눈길을 끈다.

달목욕을 끊어 놓고 다니는 단골손님들의 목욕바구니.(거의 연세 있으신 어르신들)

남자들은 목욕 바구니 자체를 들고 다니지 않던데,

아마도 씻는 방식, 목욕시간 등 차이가 있어서가 아닐까?

오늘 간 목욕탕에서는 카운터에 수건이 쌓여 있었는데, 수건을 달라고 이야기해야 주는 것 같았다.

그것도 딱, 한 장.

들어가니 여전히 재미있는 장면이. 사람들이 두고 간 목욕 바구니들이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었다.


아침 8시가 되기 전 시간.

탕으로 들어가니 허리 굽으신 어르신들이 많았다.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신다.​

몸을 씻으며 내 양쪽에 앉으신 할머니들을 살펴본다

볼은 홀쭉, 주름 가득한 얼굴, 굳어진 손가락, 흰색 모발, 두터운 손톱과 발톱.

할머니를 살펴보다, 앗, 눈이 마주쳤다.

그냥 씩 웃었다. 할머니는 무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신다. 하하하​

다들 목욕 자리 앞에 베지밀을 하나씩 놓고 계신다.

- 목욕탕에서 보는 나이 듦의 모습

문득 나이 듦, 노화에 대해 생각했다.

피부는 늘어나 주름이 지고, 머리는 하얗게 변하고, 신체기능은 점점 떨어지고..

나도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겠지?

영원할 것 같던 청춘도 흘러가겠지.

늙기 싫다고 자주 이야기했던 30대를 지나고 40대가 되니 뭔가 또 다른 느낌이 있다.

나이 듦을, 노화를 자연스럽게 잘 맞이하자. 는 생각도 든다.

옆 할머니의 눈 빛을 보았다.

몸은 할머니가 되었지만 마음은 아직 소녀 같으실까?

눈빛은 너무나 맑았다.

할머니들을 보면 항상 장난이 치고 싶다. 농담하고 싶고.

할머니들은 아이들과 닮은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처음 이 세상에 나왔던 때처럼 다시 순수함을 되찾기라도 하는 것일까?

새삼 마음은 늙어가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나에게 오는 일을, 인연을 언제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

​​

-알몸, 태초의 모습? 아기와 같은!

목욕탕에서는 누구나 같은 모습이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몸만으로 씻는 일만 하는 모습.

부자도, 많이 배운 사람도, 남보다 잘났다고 으스대는 사람도 목욕탕에서만큼은 그냥 '몸‘자체로만 존재한다.

편견, 선입견을 가질 수 없는 곳.

목욕탕은 맨몸으로 서로를 마주하는 군더더기 없는 공간.

그래서 목욕탕에서 여러 생각들이 오가는 것일까?

-씻어낸다는 것

옆 할머니가 빨래를 하신다.

빨래 금지 표시된 자리 앞에서.

아마도 남탕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 아닐까?

예전에는 사람들이 목욕탕에서 염색도 했었는데 이제는 금지되어 염색하는 사람을 보기는 힘들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씻기' '씻어내기'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몸의 때, 찌뿌둥한 느낌, 몸의 감각에 예민한 사람들.

마음에는 어떨까?

마음의 때를 미는 일은 어떠할까?

몸을 씻는 일처럼 마음의 때를 씻는 일에 부지런할 수 있다면?​​


아침에 목욕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애사에 들렀다.

친정에 올 때마다 들르는 절.

겨울 아침의 사찰은 더 고요하게 느껴진다.

새소리, 염불소리 그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곳.

한 일주일 정도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절에 오는 이유는 그런 걸까?

잠시 머무르기만 해도 마음이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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