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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Apr 01. 2024

비누가 건내는 말

Be calm

런던에 왔다.

전날 너무 늦게 잔 탓에 조금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히드로 공항에 내리니 쌀쌀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뜨끈한 차 한잔 할 사이도 없이 우버에 몸을 싣고 숙소로 향했다.

따뜻한 차 대신에 집에서 가져온 라면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집안 공기가 차가워 이불 안에 콕 들어가 누웠다.

벌써 밤이라니… 세수만 하고 잘까? 하다가 뜨끈한 물에 씻자 싶어 샤워기 물을 온수로 틀어놓고 욕실을 살폈다.

비누가 하나 보인다.

처음 보는 모양이었다. 손으로 쥐기에 다소 커 보이는 비누에는 'Be calm'이라고 적혀있다.

무른 정도를 봐서 숙성비누는 아닌 것 같고, 향은 두, 세 가지 정도의 아로마 오일을 섞은 것 같은 향이 났다. 로즈마리 향, 그리고 또 다른 향 한 두가지를 섞은 듯... 사용감은 말끔하지는 않았지만 약간은 오일리하면서도 코끝을 스치는 향은 나쁘지 않았다. 재미있는 모양의 비누.


여기 있는 동안 이 비누를 얼마나 쓰고 가게 될까? 분명 손으로 만든 비누같은데... 주인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졌다.

비누하나로 여러 가지 상상을 해보게 되는 경험이 재미있다.

집을 둘러보다 집안 곳곳에 베인 주인의 취향과 가족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독일인 남편을 둔 동양인 여성이었다. 조그만 두 딸을 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피아노 연주, 요가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나도 아침에 요가매트를 사용할 수 있어 좋았다.

가지고 온 페티그레인 향을 꺼냈다. 요가 매트 위에서 손바닥에 떨어뜨린 향은 온 거실에 퍼졌다.

수련을 마치고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가니 또 연노랑 그 비누가 나를 기다린다.

손에 묻은 페티그레인 향과도 잘 어울리는 비누의 향.

다시 만진 그 비누는 질감이 엄청 부드러웠다. 아이들과 함께 쓰는 비누는 재료에 더 신경을 쓰게 되는데 아마도 정성들여 만든 비누가 아닐까?하고 짐작 해 본다.

오늘 런던 첫날. 하이드 파크와 자연사 박물관을 간다.

말끔히 씻고 향도 맡고 개운한 채로 외출을 한다. 해 질 녘에 집에 오면 또 나를 반겨주겠지.

그리고 내게 노란 비누는 “Be calm”하고 말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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