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는 시간은 치유의 시간
지난 한 주를 런던에서 지내다가 며칠 전 파리에 왔다. 궂은날의 연속이다. 런던에서는 걷다가 비를 쫄딱 맞은 날도 있었다. 문득 어린 시절에 일부러 비를 맞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비가 그리 오염되지도 않았었고 또 나는 어렸기에 비를 피해야 할 그 무엇으로 생각하지도 않았었겠지?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친구들과 일부러 비를 맞고 걸어 다닌 기억이 난다. 약간 으슬으슬할 정도로 비를 맞다가 집으로 가 따끈한 물에 샤워를 하는 그 느낌이 참 좋았다. 늘 쓰던 오이비누나 살구비누를 살살 문질러 씻을 때 퍼지던 비누 향.
런던에서 비를 맞다가 유년시절 기억이 소환되었다.
나는 여행할 때마다 그 나라에서 비누를 곧 잘 사 오곤 하는데 런던에서도 비누를 세 종류 샀다.
그중 하나, 오렌지 향이 나는 비누를 뜯어서 런던 숙소에 두고 썼었다. 아이들은 향이 좋다고 매일 저녁 욕조에 앉아 씻는 시간을 즐거워했다. 나 역시도 씻는 시간이 즐거웠다. 하루에 기본 만보 이상씩 걷다 들어온 나를 향기 좋은 비누가 반겨주었다. 좋아하는 비누로 몸을 씻는 행위는 내게 일종의 테라피같은 의미 이기도 하다. 피부를 쓰다듬음으로 고단했던 하루를 위로하는, 좋은 향으로 마음을 정돈하는...
시간이 지나도 향은 잊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값비싼 향수보다 매일의 비누가 더 자연스레 향을 마주하게 해 준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비누 하나를 정성스레 고르는 습관이 생겼다.
훗날 아이들이 커서 ‘프레쉬 사봉’의 오렌지 향을 맡았을 때, 런던 생활을 떠올리게 될까?
그 순간을 상상하면 벌써 가슴이 찌릿해진다.
둥글하고 배가 불룩했던 250그람짜리 비누가 날씬해질수록 여행의 막바지에 이르러감을 알 수 있다. 재미있는 시간 계산법. 여행일정을 셈하는 나만의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비록 눈대중이지만 작아지는 비누를 보는 재미가 있다.
씻는 행위가 내게 테라피 같다고 했던가?
뒤늦게 고백하자면 사실 난 아로마테라피스트이다.
비누를 좋아하는 아로마테라피스트.
비누 이야기에 이어 향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려고 한다.
곧 다음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