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가해자 일수 있다
프라하에 숙소를 두고는 하루 드레스덴에 다녀왔다. 조그만 버스를 타고 두 시간여 달렸다. 우리 예상과는 달리 프라하도 드레스덴도 못 견딜 정도로 춥진 않았다.
여권이 있어야 국경을 통과할 수 있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날은 그저 프리패스! 검문소를 지나 독일 땅으로 들어갔다.
작센주에서 시간을 보냈다.
두꺼운 겨울 점퍼는 사람을 참 둔하게 했다. 어깨를 웅크리고 걷는 겨울 여행은 다른 계절의 여행보다 뭔가 둔한 느낌이었다. 작센주의 건물들은 시커멓게 탄 채로 있었고 바람 불고 비가 흩날려 스산함이 몰려오던 날이었다.
성모교회 앞에 섰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마켓 준비로 분주한 모습. 나는 오래전 화염에 휩싸였던 작센의 모습을 떠올렸다. 2차 대전의 폭격을 그대로 맞은 곳. 당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많은 건물들이 소실되었으나 살아남은 자들은 불길을 견딘 벽돌들을 주워 모아 거기에 번호를 적기 시작했다. 후에 불에 탄 시커먼 그 번호 매겨진 벽돌들도 끼워 넣어가며 이 성모 교회를 지어 올렸고, 다른 건물들도 그러했다고... 왜 깨끗한 새 건물의 모습이 아닌 타버린 벽돌을 주어다 지었을까?
‘상처’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상처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아픔 자체를 껴안은 드레스덴 사람들. 그 언젠가 그들도 영국을 침공했던 가해자였다. 입장이 바뀌어 또다시 피해자가 된 그들.
누구나 살면서 상처입는 경험을 한다. 나 또한 그러하다. 하지만 또 누군가는 내가 알지 못하는 상처를 갖고 있진 않을까? 그 가해자가 나라는 사실을 나는 모를 수도 있지 않을까?
독일은 아픔이 많은 나라지만 아픔 자체를 껴안으며 많은 화해를 시도했다. 2차 대전 이후의 상처를 스스로 껴안고, 또 1990년 무너진 베를린 장벽으로 하나가 되고, 더 오래전에 잉글랜드 코번트리를 폭격한 가해의 잔혹함을 참회함으로...
드레스덴은 그렇게 자신의 흉터를 어루만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걷다가 마틴 루터 동상 앞에 섰다.
그가 오래전 이야기했던 말이 귓전에 맴돈다.
“전쟁은 많은 것을 얻지 못하며, 많은 것을 잃고 모든 것을 겁니다. 그러나 온순한 성품은 아무것도 잃지 않으며, 별로 많은 것을 걸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얻습니다.”
독일 변방의 작은 도시. 드레스덴의 한 거리를 걸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전쟁을 떠올렸다. 루터가 말한 온순한 성품을 마음에 새기며 전쟁 같은 시대의 소음 앞에서 잠잠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낼 수 있기를. 그것이 내가 스승께 배운 ‘온순한 성품’ 임을 알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