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크하드 Dec 19. 2023

첫눈처럼 내게 온 첫째

그림 - 첫눈이와 첫째 망아지

2013년 추운 겨울 날

첫눈이 내린 다음 날

첫눈처럼 내게 온 첫째


그땐 결혼 3년이 지나니 아이에 대한 조바심이 일어나던 때였다.


한 번의 자연유산과 회사 실직으로 첫눈조차 반갑지 않던 우울한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백수가 된 난, 그날도 동네를 산책하고 집에 돌아오는 중이었다. 

아파트 단지 앞에 산처럼 쌓인 폐기물 가구가 보였고, 버려진 식탁 다리에 목줄 고리가 걸려 있어 오도 가도 못하고 낑낑대는 하얀색 요크셔테리어 강아지를 만났다. 


경비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어제 이사를 간 주민이 있었는데, 키우던 애견을 데리고 갈 수 없었는지 가구랑 함께 버리고 간 것 같다며 혀를 끌끌 차셨다.


내일까지 주인을 못 찾으면 유기견 보호센터로 넘겨야 할 거 같다는 경비 아저씨 말이 자꾸 귓가를 맴돌았다. 결국, 다시 돌아가 그 강아지를 품에 안고 왔다.


평소 애견인도 아닌데다가 한 생명을 책임지는 게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 충분히 알고 지내던 내가 어디서 그런 큰일을 벌였는지 평상시 같으면 생각도 못 할 일이었다.

유기견 보호센터로 가서 새 주인을 못 만나게 되면 나중에 안락사될 수 있다는 말에 추위에 벌벌 떠는 작은 체구의 강아지를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다. 


'첫눈이'라는 강아지 이름도 지어주고 어색한 동거가 시작됐고, 며칠 후 주말이 왔다.

그날은 우리 집에서 자그마한 연말 홈파티가 있어서 아는 지인을 초대했고, 평소 즐겨하는 주류도 넉넉히 장 본 상태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도 갑자기 그때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술자리 전 번쩍 드는 생각에 신랑에게 임신테스트기를 사 오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첫눈이를 데리고 온 내 심경의 변화가 이상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결과는 두 줄!!

생각지도 않았던 새 생명의 방문

오죽하면 놀란 신랑의 첫 마디

"우리가 언제? 언제 했나?"

"이 시키가~~~ 그날 기억 안 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연말 파티는 임신 축하 파티로 술은 무알코올 샴페인으로 평생 잊지 못할 연말을 보냈다. 

인연 같은 생명 구조가 운명 같은 생명 잉태로~~~

아닌가?

운명 같은 생명 잉태로 인연 같은 생명 구조로~~~

이어진 건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어쨌든 첫눈이가 우리에게 너무나도 큰 선물을 안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행히 첫눈이는 생명줄이 긴 팔자였는지 때마침 시동생 친한 친구에게 입양되었다.

그 친구가 키우던 강아지가 있었는데 지병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새 애견을 찾던 중이었다.

지금은 행복한 보금자리에서 잘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동생이 그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그 비쩍 말랐던 강아지가 아주 포동포동 살이 쪄서 비만견이 됐다는 얘기에 지금도 폭소가 나온다. 


첫눈처럼 내게 온 첫눈이와 첫아이 

운명 같은 인연에 감사할 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