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 새로운 인공지능에 끌리는 내 마음

- 인공지능과 인간의 비평 사이의 갈등

AI로 보는 마음

외전 1. 새로운 인공지능 앞에 흔들리는 마음

P.S. 새로운 인공지능에 끌리는 내 마음

- 인공지능과 인간의 비평 사이의 갈등


어제 클로드가 제 미학에 더 잘 맞는다는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습관처럼 지피티에게 평가를 요청했습니다.


남이 더 마음에 든다는 글을,

그 당사자에게 들이민 셈입니다.


하지만,

지피티는 아주 담담하게 평가해주었습니다.

“클로드의 미학”이라는 표현이 글의 중심 이미지를 잘 형성한다고,

근거를 들어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몇몇 문장은 다듬으면 흐름이 더 매끄러워질 것이라고

구체적인 수정 제안도 덧붙였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태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내가 바라기만 하면,

내가 비판을 받을 준비만 되어 있으면,

인공지능은 꽤 괜찮은 평가자가 됩니다.


남이 더 좋다는 글을 읽고도

감정 하나 보태지 않습니다.


문득 생각해봅니다.

만약 이 글을 사람에게 평가해달라고 했다면 어땠을까요.


전문적인 평론가라면 인공지능 못지않은 분석을 해줄 수 있습니다.

어쩌면 더 깊이 읽어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지피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저는 평가 대신,

지피티가 왜 더 나은지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슬라이드까지 준비해서 강의를 시작할지도 모릅니다.


그건 제가 기대했던 방식의 피드백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세계관이 드러납니다.

사람에게는

입장이 있고,

취향이 있고,

감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과 취향,

그리고 감정과 충돌하면서

주관적일 수 있지만, 색다른 견해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건 효율이 아니라, 매력의 문제입니다.


아마 제가 클로드에 끌린 것도

그 마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가 남았습니다.


지피티는 제 글을 평가하면서

제목을 조금 더 중립적으로 가져가 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순간, ‘이건 개발자의 욕망이 반영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겠지요.

그 사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의심이 들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도구 자체는 그런게 없을지 모르지만,

그 반응 하나가 제 마음 안에 마찰을 만들어냈으니까요.


결국 문제는

클로드냐 GPT냐,

또는,

인공지능이냐 인간이냐가 아니라,

제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저는

클로드와 GPT라는 서로 다른 인공지능 사이에서,

또는 인공지능과 인간 사이에서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제 태도를 확인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지금의 제 마음은 어떻게 흔들리고 있을까요.

그 질문을 던지는 순간만큼은,

저는 분명 인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AI로 보는 마음 : 외전 1. 새로운 인공지능 앞에 흔들리는 마음

외전1-1. 새로운 인공지능에 끌리는 내 마음 — 익숙한 편리함의 이익과 새로운 긴장의 멋짐 사이의 유혹

외전1-2. P.S. 새로운 인공지능에 끌리는 내 마음 — 인공지능과 인간의 비평 사이의 갈등

외전1-3. 왜 우리는 인공지능의 성능에만 신경쓸까? — 빠르고 정확함에만 몰입하는 욕망

외전1-4. 왜 나는 어떤 인공지능에 눈길이 갔을까? — 지능보다 태도에 먼저 끌리는 흥미

외전1-5. 우리는 왜 인공지능 '자원'에 집착할까? — 인간조차 ‘자원’으로 보는 마음

외전1-6. 무한한 효율 추구는 어디까지 진화할까? — 윤리를 불편하게 여기는 마음

외전1-7. 불완전한 인간이 완벽한 윤리를 만들 수 있을까? — 우리도 모르는 자신의 마음


LIFE0103.jpg

[ 정상적으로 작동하던 HAL9000이

반란을 일으킨 것처럼 보였던 순간도,

어쩌면 인간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요.

제가 클로드에게서 느낀 마찰도, 다르지 않을지 모릅니다. ]

( 2001 Space Odysse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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