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힐링 스페이스

이집트, 소피텔 카이로 나일 엘 제지라 호텔

by Giving

'오페라의 유령'을 연상시킨 호텔


카이로에 도착한 첫날, 체크인을 기다리면서 호텔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기대가 크지 않았던 탓인가?

2층에서 바라본 1층 Bar의 풍경과 피아노 연주가 내 영혼을 사르르 녹였다.

이 익숙함과 편안함은 뭐지....


사진을 다시 보니 '익숙함'의 정체는 멋진 샹들리에였고 '편안함'의 정체는 창밖으로 보이는 나일강인가 싶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시그니처인 극장 샹들리에를 연상시키는 호텔의 샹들리에는 절묘하게 통창과 조화를 이루며 이집트의 이국적인 전경을 돋보이게 했다.

소피텔 카이로 나일 엘 제지라 호텔 1층의 아름다운 풍경. 영혼이 편안해진다


창밖의 아름다움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가이드가 수속을 끝내고 카드 키를 나누어 주었다. 가이드가 이름을 부를 때까지, 우리 부부는 각자 호텔을 둘러보고 있었다. 개인 취향을 존중하는 우리 부부는 항상 각자 행동을 많이 한다. 이를 합리적이라고 생각해서 큰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가족 단위의 패키지여행을 오면 우리 부부의 각자 행동이 다른 일행의 눈에는 낯설게 보이나 보다. 일행분들이 늘 '짝꿍은 어디 있어요?"를 물으신다.

타인을 통해 나를 인지하게 된다

룸에 가방을 옮겨 놓고 다음 일정까지 약간의 시간이 남아 호텔 주위를 둘러보러 나갔다. 이집트의 날씨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기본적으로 지중해 기후인 데다 12월 ~ 3월 이집트는 평균기온 20도 내외로 여행에 최적의 기간이다. 터키도 후보지였는데 터키 여행은 4월이 최적이라는 것이 1월 여행지로 이집트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 기대만큼이나 하늘도 나일강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호텔 앞 나일강변에 분수가 솟구쳐 오르는 모습에 가슴이 탁 트이고 빛나는 태양에 영혼이 녹았다. 멋진 분수쇼에 어울리는 멋진 음악이 아쉬울 따름이다.


아름다운 나일강 전경. 멋진 분수와 편안한 햇빛에 감사한 하루를 보냈다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고 한참을 보다 보니 아직은 낯선 투어 일행들이 부부 동반으로 나타났다. 부부가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한껏 입가에 미소를 짓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호텔 산책로를 따라 걷고 싶었는데 의외로 나일강 주변에 걸을 곳이 없었다. 강을 따라 호텔들이 늘어서 있어서 각자의 공간으로 구획되어 연결된 곳이 없었다. 관광객들을 실은 요트와 보트가 한가로이 나일강에 떠다니고 있는 모습을 보며 아쉬움을 뒤로하고 들어와 1층 bar의 모습을 핸드폰에 다시 담았다. 그냥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호텔 바에서 커피 한 잔과 함께 오후의 이 한가함을 즐기고 싶기도 했다. 일상을 잊고 이렇게 멍 때리는 시간이 여행의 즐거움인 것을.


호텔 바 창문으로 보이는 나일강 주변의 풍경이 편안함과 힐링을 준다. 여행의 묘미다


이집트 여행에서 잊지 못할 추억중 하나가 바로 이 호텔의 조식이었다. 이 호텔은 주스 맛집이다. 이집트 일정 동안 식사할 때마다 딸기주스와 망고주스 등 생과일 주스를 빼놓지 않고 먹었다. 정말 신선하고 달고 맛있었다. 인공 감미료가 아니라 생과일 그 자체의 향과 달콤함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호텔은 그 맛있는 주스들을 아침마다 맛볼 수 있었으니 어찌 사양할 수 있겠는가.

하얀 주스는 구아버, 붉은색은 딸기, 밝은 노란색은 오렌지, 진한 노란색은 망고. 어느 것 하나 스쳐 지나갈 수 없는 맛있는 주스였다


여행 다니면서 식당 사진을 이렇게 열심히 찍어보기도 처음이다. 생과일 주스뿐 아니라 식전 디톡스를 위한 당근, 토마토 주스 등도 한가득이었다. 독특한 건 벌집이 통째로 있어서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예전 어릴 적에 아버지가 이런 벌집꿀을 선물로 받아오신 적이 있었다. 인터넷이나 유튜브가 없던 그 시절. 어머니는 낯선 선물에 당황하셨고 벌집에서 꿀을 발라내기 위해 고군분투하셨다. 그 옛날 기억에 남아있는 벌집은 까끌까끌해서 그대로 먹을 수가 없었기에, 처음 이 꿀을 보고 헉! 했지만, 이집트 벌집의 막은 부드러워서 그대로 먹어도 먹을만했다. 달콤했다.


오렌지 쥬스, 토마토, 딸기, 구아바, 딸기 쥬스들이 자태를 뽑내고 있다. 디톡스 쥬스들과 벌집 꿀이 이색적이다


버스 타고 가다가 내려서 한 시간 사진 찍고 다시 2~3시간 버스 타고 이동하다 내려서 사진 찍는 패키지 투어의 특성상 가장 여유롭고 긴 시간을 보내는 곳이 호텔이어서 그런지 유난히 이 호텔의 한가로움과 편안함이 기억에 남는다. 저녁 식사 후 남편과 호텔 밖 나일강의 야경을 보면서 지금 이 순간에 감사했다.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시간들이 있기에 지금의 여유가 감사하고 즐길 수 있으리라.

지난해 9월 사직서를 던지고 나온 후, 평생 처음 누리는 지금의 휴식이 어쩌면 긴 휴식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스멀스멀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래서 무작정 여행을 떠나왔다 현실 도피라고 해야 할까? 그냥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다 잊고 현재에 충실하기로 했다. 현재에 감사하고 현재에 기뻐하고 현재를 즐기고.

실수하지 않으시는 주님을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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