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이상 묵혀 있던 땅이 있었다. 옛날에 아무것도 모르고 지인의 말만 믿고 사논 땅이다.
어느 날, 처남이 아늑하고 조용한 곳이니 텐트 치고 힐링 장소로 사용하면 좋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허락했다.
토지로써는 정말 못생긴 땅이고 가치 없는 땅처럼 보인다. 나는 지인한테 속아서 산 땅이긴 해도 묏자리로 써먹을까 아니면 전원주택지로 개발할까 또는 주변에 공장들이 많이 있으니 공장부지로나 팔아먹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재작년에 아들이 태양광발전 사업을 하려다가 아쉽게도 법이 바뀌어 너무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포기하고 말았다.
처남이 잡풀 더미로 우거진 네 잎 클로버 모양의 임야를 포클레인으로 밀어 놨다. 꼬불꼬불 못생긴 땅이라 1200평의 땅이 넓어 보이질 않았다. 원래는 1400평이었는데 태양광 발전사업하려고 측량하니 200평이 줄어들었다. 빨간 흙으로 태어난 땅은 그야말로 허허벌판이었다.
개나리를 심자고 했다. 일요일에 아내와 큰 처제 , 둘째 처제, 큰동서, 처남과 함께 처가 선산에 가서 개나리를 꺾어다 구획된 테두리에 개나리를 꽂았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개나리는 꺾어다 꽂으면 잘 살고 한없이 번질 거라는 얕은 지식으로 시작한 것이다. 마사토의 땅이 딱딱하여 개나리 꼽는 일도 수월하지 않았다. 모두들 처음 해보는 일이지만 막연한 꿈의 동산을 그리며 일을 했다. 각자 삶이 바빠 함께 하기 어려웠는데 아름다운 동산을 만들어보자는 공감대로 -막내 처제는 동참 못했지만- 함께 일하고 중국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처가 오 남매의 정은 매우 두터웠다. 큰 사위인 내가 결혼하고도 처가 동생들을 데리고 함께 살다가 결혼하여 각 각 떠나 가정을 꾸리고 잘 살고 있었다. 이들에게도 삶의 우여곡절은 피할 수 없는지라 세파의 흐름은 이들을 멀게 만들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간 듯했는데 희망의 싹이 피어오르는 기분이었다.
아내와 난 몇 년 지난 후 동산으로 가꾸며 살자고 이미 다짐한 바 있었다. 아내는 내가 틀어주는 유익종의 ‘들꽃’을 들으면서 꿈을 키웠다고 했다. 인생 3막 노년의 인생은 좋아하는 꽃을 가꾸며 살리라 마음먹었단다. 그래~ 이왕이면 형제들과 함께 해보자. 설레는 꿈이 되었다.
땅을 포클레인으로 밀어 놓고 차 들어갈 도로를 만들고 몽골천막을 쳤다. 화단을 조성하여 꽃을 심고 약간의 먹거리를 자급자족하기 위해 농사도 조금 지을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