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 채송화, 달리아, 과꽃, 옥수수, 자작나무를 심었다. 백작약 밭도 여러번 뒤집어 부드럽게 만들었다. 둘째 처제가 거름 5포를 가져와 뿌려주었다. 단풍나무 3그루를 처남 회사에서 뽑아와서 옮겨 심었다. 한약재 잔뜩 넣고 거름 10포대 더 사와 여기저기 많이 주었다. 포클레인 기사가 단풍나무 3그루 중 2그루는 죽을지도 모른단다. 흙을 묽게 개서 열심히 발라주었다. 3그루 다 살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주말마다 가서 바르고 또 바르고 했다. 결국 1그루만 죽고 2그루는 살아났다. 나중에 죽은 단풍나무에는 능소화를 심어 나무를 휘감게 했다.
그 후 계속해서 꽃을 심어나갔다. 백일홍, 영산홍, 이베리스, 꽃잔디, 백합, 감국, 앵초, 사라오, 인삼 벤자민, 펜스테몬, 꿩의비름, 물망초, 구절초, 코스모스, 체리 세이즈, 판타스, 벨감못, 능소화, 잎 안개꽃(세시 꽃), 해바라기, 일일초(피고 지고 꽃), 족두리꽃(풍접초), 벌개미취, 콜레우스, 배초향, 토레니아, 설악초, 초설(오색 마삭줄), 홍콩야자, 머위, 참나물, 꽃무릇, 국화, 튤립, 히아신스 등 많이도 심었다. 각자 주머니 풀어서 사다 심고, 지인들에게 얻어다 심고 해서 참 많이도 심었다.
매주 수요일에 아내와 둘째 처제가 들어가 물 주면서 척박한 땅에서 뿌리내리기를 바랐지만 많이 죽고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앞으로는 생명력이 강한 들꽃 위주로 심어야겠고 씨를 뿌려 자생하게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 남매가 함께 한 자리에서 같이 일하고 밥 먹고 했다. 매주 모두 함께 하기는 어려웠지만 우리 부부와 처남과 둘째 처제는 거의 빠지지 않고 출석했다. 큰 처제는 개인 사정으로 오지 못 했고 막내 처제는 멀어도 2주에 1번 정도는 참석했다.
삼겹살은 단골 메뉴가 됐고 돼지고기 두루치기, 소고기, 불고기, 백숙, 닭볶음탕을 먹기도 하고 아파트에서는 마음대로 구워 먹기 힘든 생선도 마음껏 구워 먹었다. 막내가 먹고 싶은 엄마표 김칫국 수제비, 콩나물국, 올갱이국, 새뱅이 국, 선짓국, 버섯찌개, 돈가스, 잡채, 비빔밥, 수육, 김치빈대떡, 감자 빈대떡, 튀김, 초밥, 김밥, 약밥, 둘째 처제가 개발한 아로니아 빵 등 오 남매가 메뉴를 정해 돌아가면서 준비했다. 언제나 맛있고 행복한 점심이었다. 막내 처제는 맛있는 점심 먹으려고 오는 거 같다고도 했다.
고급 식당에서 우아하게 먹는 것도 좋겠지만 야외 천막에서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즐거움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가 없었다. 얼마 만인가! 5남매가 함께 한 날들이. 오 남매는 같이 자랐으니까 엄마의 손맛을 같이 느끼며 살았으니 입맛이 제각각이라도 공통분모는 있는 거 같았다. 38년 전부터 우리 집에서도 함께 10여 년을 살았으니 식성도 닮은 점이 많았다.
어느 날, 처남한테 전화가 왔다. 옥미원 정원 가꾸는 게 좋고 고맙다고 했다. 한 때는 오만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살아보니 처음 고마웠던 사람이 가장 고마운 거 같다고 했다. 처남한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은 처음 듣는 건가? 말로는 그런 거 같다. 땅을 형제들을 위해 내어 준 게 고마운 모양이다.
처제들도 고마운 마음인 거 같았다. 다들 좋아하니 나도 좋았다. 그들에게 땅을 내어준 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함께 손잡고 살자. 이젠 잡은 손 놓지 말고 나머지 인생을 함께 하자고 다짐했다.
오 남매는 이렇게 꽃을 심으며 맛있는 거 해 먹으면서 어느새 생의 새로운 활기를 찾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