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딛고

4. 슬픔을 딛고 화덕을 만들다

by 김근회

4. 슬픔을 딛고 화덕을 만들다.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큰 처제의 떨리는 음성이 귀에 쟁쟁하다. 큰 동서가 죽었다. 갑작스러운 죽음에 모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형제들이 모두 함께 장례를 치르고 정신공황 상태로 빠져들었다. 우리는 언젠가 이별하며 사는 거지만 너무나 갑작스러운 이별 앞에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남은 인생을 옥미원에서 함께 하고 싶었는데 너무나 아쉬웠다. 개인 사정으로 당분간은 같이 하지 못했지만 나중엔 함께 할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너무나 아쉽게 떠나버렸다.


◆장례식을 마치고


갑자기 폭탄이 터졌다

파편을 맞은 사람들은 혼비백산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이미 먼 길을 떠나고 사라졌다

다시 못 올 그곳으로

길고 긴 어두운 터널을 지나

광명의 길을 찾아 떠나갔을 것이다

하느님의 품으로 안기었을 것이다

영원한 평온을 위하여

젠가의 이별이 앞당겨졌다

준비 없는 이별이 아쉽고 원망스럽겠지만

서둘러 떠나야 할 이유가 있었으리라

한 가닥의 미련도 남겨놓지 않다니

어찌 그리 무정하오

정지된 그의 인생은 산화되어 한 줌의 재가 되었다

그가 원했던 천주교 공원묘지에 안치했다

부디 편히 쉬시오

남겨진 사람들은 ‘착한 사람’으로 기억하겠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조각난 기억의 일면들도 흐려져갈 것이다


이튿날, 옥미원에 우리 부부와 처남, 둘째 처제, 막내 처제가 모였다. 아들도 함께 갔다. 오후에 딸 내외와 손자도 왔다. 우리가 가꾸어야 할 정원이기에 옥미원에 들어가야 했다. 이별의 슬픔을 잊으려고도 들어갔다.


모두 입을 굳게 다물고 미친 듯이 일을 했다. 꽃을 심고 땅을 고르고 땅을 팠다. 감국 40본을 심었다. 작약의 꽃봉오리도 몇 개 올라왔다. 곧 꽃을 틔우리라. 씨를 뿌려놨던 도라지도 싹이 올라온다. 죽을 거 같던 단풍나무도 새싹을 내어놓는다. 살려나보다. 역시 옳다. 살아가는 자의 시계는 순간을 쉼 없이 돌아가는 거다.


씨앗을 심고 생명의 고귀함과 소중함을 정성 들여 가꾸고 희망과 환희를 잉태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지내는 하루는 너무 소중하다. 아늑한 옥미원의 품 안에 들어가면 세상 근심 걱정 모두 잊어버리는 마법의 정원으로 가꾸어야겠다. 자연의 힘은 인간을 치유하는 힘을 뿜어낸다. 네 잎 클로버의 수줍은 자태의 옥미원은 영롱함, 아름다움, 행운, 사랑을 담은 정원이다.


난 척박한 땅에 삽질하느라 정신없었고 처남과 둘째 처제, 막내 처제, 아들은 화덕을 만들었다. 힘을 합해 만들어 내니 처음 해보는 일이라도 제법 잘 만들었다.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작은 모닥불에 둘러앉아 불멍을 하며 달과 별을 올려다보니 모든 시름이 잊혔다. 어제의 슬픔도 별빛으로 아득하게 멀리 사라지는 것 같았다.


◆ 불멍


화덕 주위에 모두 둘러앉아

망연히 불꽃을 바라본다

씨를 뿌리고 꽃을 심던 날들,

호미 들고 꽃밭 다듬기

삽질로 땅 고르기

예초기로 풀 깎아내기

구부리고 잡초 뽑기

땀으로 뽑아낸 마음의 찌꺼기들도

화덕에 담아 태워버린다

들끓던 모든 것이 사그라진다

마침내 평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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