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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 Jun 10. 2024

3. 고통을 견디면서 긍정정서 경험하기

고통과 긍정 정서는 공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유형의 정서를 모두 잘 알아차리고 경험하려면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번 시간에는 고통을 견디는 훈련 과정에서 긍정정서를 좀 더 잘 알아차리고 경험하는 방법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1. 고통을 견디는 과정에서 긍정정서 경험하기


우선 고통을 견디는 행동을 수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유발되는 긍정적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앞서 우리는 고통을 견디는 훈련에서 달성하기 수월한 목표를 설정하고 반복적으로 성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공부했습니다. 그러한 훈련 과정의 부수적 이득은 성공에 따른 긍정적 감정 경험입니다. 목표 달성, 혹은 성공은 그 자체로 긍정적인 느낌을 유발합니다. 적어도 ‘실패하지 않았다’는 인식으로 인해 일정 수준의 만족감과 자긍심, 뿌듯함을 느끼게 하지요. 이 감정을 충분히 자각하고 즐기기 바랍니다. 


고통에 휘둘리지 않고 일정 시간 동안 견디는 행동에 성공하면 자기 자신을 잘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고통을 다룰 수 있다는 유능감도 느낄 수 있지요. 이러한 감정은 그 자체로도 긍정적이지만, 이후 고통을 견디는 행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였던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는 어떤 행동을 잘 수행할 수 있다는 감각과 믿음을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라는 개념으로 소개한 바 있습니다. 어떤 행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그에 따라 자기 효능감도 증가합니다. 자기 효능감이 증가하면 이후 같은 행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가능성도 높아지지요. 이는 연구를 통해 검증된 사항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번의 성공은 다음의 성공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란 점을 말이지요. 



2. 고통을 견디는 행동의 긍정적 결과 인식하기


고통을 견디는 행동과 관련된 긍정적 경험을 강화하는 두 번째 방안은 그 행동을 수행한 결과 얻게 되는 긍정적 성과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회피하지 않거나 도피하지 않는 것, 완화하지 않는 것을 통해 얻는 긍정적 결과들을 꼼꼼히 찾아보는 것입니다. 




먼저 회피하지 않기와 도피하지 않기를 통해 얻은 보상, 혹은 얻게 될 보상을 떠올려 보기 바랍니다. 가장 먼저 우리가 원하는 삶과 관련된 보상이 떠오를 겁니다. 장기적인 보상이긴 하지만, 보상에 좀 더 다가섰다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그 보상이 너무 멀게 느껴진다면 하위 목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정하기 바랍니다. 예컨대 의사가 되어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중요한 삶의 목표라면, 의사가 되기 위한 단계적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지요. 가능하면 구체적일수록 좋습니다.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필요한 성적을 설정하고, 그 성적을 달성하기 위한 단계적인 목표를 세우는 겁니다. 


아마 이 과정은 어느 정도 익숙할 겁니다. 그래서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요. 여러분이 꼭 기억해야 할 점은 구체적이면서도 단계적인 목표를 세우되, 기준을 낮춰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목표를 세울 때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최상의 목표를 세우곤 합니다. 의사가 되길 원한다면 일단 최상위권 의과대학을 목표로 하는 것이지요. 이름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지방의 작은 의과대학을 목표로 잡지는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은 비단 학생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지요.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심리학 교수 에드워드 히긴스(Edward Higgins)는 자기 인식에 대한 흥미로운 이론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자기(self)’, 혹은 ‘나’라고 부르는 마음의 요소는 다면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단 현실의 자기가 있겠지요. 평범한 외모에 성적도 중간이고 특별히 ‘인싸’도 ‘아싸’도 아닌 ‘나’ 말입니다. 또 다른 자기도 있습니다. 이것은 가상적인 나의 모습이지만 나아갈 방향을 알려준다는 측면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갖지요. 히긴스는 특히 이상적 자기(ideal self)와 의무적 자기(ought self)를 중요하게 고려했습니다. 


이상적 자기는 ‘되고 싶은 나’를 의미하고, 의무적 자기는 ‘되어야 하는 나’를 의미합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두 가지 ‘나의 모습’이 겹칠 수도 있고, 하나의 유형이 다른 유형보다 더 강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이든 가상적으로 지향하는 나의 모습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요.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는 것도 이상적 자기의 한 예일 수 있습니다.


히긴스에 따르면, 인간은 가상적으로 지향하는 자기의 모습과 현실의 자기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둘 간의 괴리를 좁히려고 노력합니다. 이 자체만 놓고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간다는 의미이니까요. 아주 훌륭합니다. 문제는 모두가 성공적으로 괴리를 좁히지는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꽤 많은 사람들이 이상적/의무적 자기와 현실적 자기의 괴리를 좁히는 데 실패하고, 그 결과 상당한 정서적 고통을 겪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일관되게 확인되는 원인은 이상적 자기, 혹은 의무적 자기가 너무 높게 설정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이런 말을 듣고 자랍니다. “너는 커서 뭐든 될 수 있단다.” 이 말이 어떻게 들리십니까? 자녀의 가능성을 믿는 부모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나요? 아마도 부모님은 그런 마음으로 이런 말을 했을 겁니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따져보면, 이 말이 딱 맞아떨어지는 아이는 우리의 예상보다 많지 않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우리나라 최상위권 대학들의 정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학생이라면 거의 대부분 그 대학들에 입학하고 싶어 할 겁니다. 하지만 각 대학의 정원은 정해져 있지요.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응시자 수는 대략 45만 명이었습니다. 우리가 최상위권 대학으로 분류하는 대학들의 입학 정원은 모두 합해도 대략 1만 4천 명 정도입니다. 100명 중 단 3명만 이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는 의미이지요. 이 수치는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현명한 부모라면 자신의 아이가 100명 중 3명 안에 드는 지적 역량을 갖추었는지를 먼저 따져본 뒤에 “너는 최상위권 대학에 갈 수 있단다”라고 말해야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습니다. ‘가능성’, 혹은 ‘잠재력’이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우리는 우리의 잠재력을 과대평가하곤 합니다.


저는 심리학 석사과정을 졸업한 후 대학병원에서 3년 동안 임상심리 레지던트로 근무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때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지능검사를 정말 많이 실시했지요. 이유는 다양했지만 심리적 문제와 학업 문제가 겹쳐서 내원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들 중에 제가 특별히 안타까워했던 학생의 지능점수는 ‘평균’ 수준이었습니다. 평균이라고 하면 같은 연령대 학생들 중 중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안타까워할 점수가 아닌 것이지요. 제가 안타까움을 느꼈던 이유는 소검사 점수 패턴 때문이었습니다. 


현재 병원을 포함한 다양한 정신건강 관련 기관에서 주로 사용하는 지능검사는 웩슬러 지능검사입니다. 이 검사는 여러 개의 소검사들로 구성되어 있지요. 소검사란 간단히 말해 특정한 인지기능을 평가하는 과제를 의미합니다. 웩슬러 지능검사 안에는 이런 과제들이 다양하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소검사들 중에는 수검자의 ‘잠재 지능’을 평가할 수 있는 검사들도 있습니다. 이 검사들의 점수는 교육 수준이나 지적 경험 등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개인의 순수한 지적 잠재력을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그래서 임상심리학자들은 이 검사들의 점수와 다른 검사들의 점수를 비교해서 잠재능력 대비 성취 수준 등을 판단합니다. 


제가 안타까움을 느꼈던 학생의 경우 잠재지능을 평가하는 소검사의 점수가 낮았습니다. 평균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숫자였지요. 반면 다른 소검사들의 점수는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특히 주의를 집중해서 열심히 노력하면 점수가 오르는 소검사에서의 점수가 높았지요. 이러한 패턴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이 아이는 잠재능력이 낮지만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평균 수준을 달성한 것입니다. 남들에게는 그저 중간 수준이라 보일 수 있지만, 이 아이는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그 점수를 달성한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결국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매일 같이 자신을 몰아붙이며 살다 보니 몸과 마음에 피로가 쌓였고, 결국 소진되어 우울한 상태에 빠지고 만 것이지요. 


안타깝지만 ‘잠재력’이라는 것도 개인차가 있습니다. 어떤 지적 역량이든 그렇지요. 전체의 25%는 평균하 이하의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가 만났던 학생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누구도 자신의 잠재력이 ‘평균하 이하’라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살지는 않습니다. 관련 검사를 받지 않는 한 말이지요. 


지금은 지원체계가 잘 정비되어서 필요할 경우 학생들의 검사비를 지원하지만, 이러한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 자신, 혹은 자신의 자녀가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정말 어렵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눈을 감고 노력을 통해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 더 수월하지요. 사회도 그런 분위기를 강화하는 면이 있습니다. 노력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보내면서 말입니다. 


우리의 한계를 미리 정해두고 체념하는 것보다는 한계를 시험하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나을 겁니다. 하지만 늘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면서 지나치지 않는 선까지만 시도해야겠지요. ‘지나치지 않다’는 것의 기준 역시 모호하기는 하지만, 몸과 마음에 병이 생겨 적응 상의 문제가 되는 수준이라면 우리는 분명히 ‘지나치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 자신을 그렇게까지 몰아붙이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닙니다. 


목표를 향해 스스로를 열심히 채찍질하는 만큼, 자신의 역량과 한계를 파악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여러분이 누구인지를 파악하고 결정하는 권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면 안 됩니다. 여러분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여러분 자신이니까요. 심지어 부모도 여러분을 잘 모릅니다. 여러분 자신도 스스로를 잘 모르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나마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과 동기를 가진 존재는 여러분 자신입니다. 


필요하다면 잘 만들어진 심리검사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여러분 자신을 파악하기 바랍니다. 그것이 현실적이면서도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세우는 지름길입니다. 멀리 돌아가는 길 같지만, 사실 이 길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현실적이면서도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세우면 그만큼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목표 달성은 긍정적 감정을 유발하고요. 이것보다 더 강력한 긍정적 경험은 없을 겁니다. 




완화하지 않기와 관련된 긍정적 경험은 주로 사용했던 완화행동이 부적응적일 때 그 빛을 발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완화행동은 매우 다양합니다. 기본적인 적응성 측면에서도 큰 차이가 있지요.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어떤 완화행동의 적응성은 맥락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합니다. 


담배를 피우는 행동이라고 해서 무조건 부적응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담배가 우리의 몸에 해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 담배를 피우는 것이 매일같이 단 음식을 수시로 먹는 것보다 해로운가를 따져보면 확답을 하기가 어려운 것이지요.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즉각적이면서도 매우 심각한 수준의 피해를 입히는 행동이 아니라면, 우리는 특정 행동의 빈도를 따져 부적응성을 판단해야 합니다. 만일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일정 수준의 피해를 줄 수 있는 행동을 주된 완화행동으로 사용해 왔다면, 완화하지 않기 훈련 만으로도 꽤나 큰 긍정적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부적응적 완화행동의 빈도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지요. 



때로는 단 음식이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부적응적 행동은 결국 빈도의 문제입니다. 정신과적 진단을 할 때 많이 사용하는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에는 다양한 정신장애의 진단기준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증상의 빈도를 중요한 진단 기준으로 삼지요. 


예를 들어, 폭식장애의 진단기준에는 적어도 3달 동안 일주일에 한 번 이상 폭식행동이 나타나야 한다는 기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부적응적 행동을 판단할 때, 빈도는 매우 중요한 기준입니다. 빈도가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특정 정신장애로 진단될 가능성도 감소하겠지요. 부적응적 완화행동이 반복되어서 큰 곤란을 겪는 사람이라면 완화하지 않기를 통해 큰 유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 사우스 플로리다 대학의 심리학 교수 마리나 보르노발로바(Marina Bornovalova) 연구팀은 고통감내력 증진 프로그램의 효과를 오랫동안 연구해 오고 있습니다. 특히 물질사용장애 환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요. 이들에 따르면, 고통감내력 증진 프로그램은 환자의 고통감내력을 효과적으로 향상했을 뿐만 아니라, 물질사용문제 또한 감소시킨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프로그램의 구성이나 방법이 다르기는 하지만, 고통을 견디는 능력이 증가함에 따라 부적응적 완화행동의 빈도가 감소한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부적응적 완화행동이 감소하는 것 자체도 매우 긍정적이지만, 그로 인한 다양한 부수적 변화들도 긍정적일 수 있습니다. 심리장애는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심리적 문제로 고통을 받거나 부적응을 경험하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고통받을 가능성이 높지요. 


알코올사용장애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알코올사용장애란 지나친 음주로 인해 다양한 부적응을 경험하는 심리장애를 의미합니다. 예전에는 알코올 중독이나 알코올 의존 등의 명칭을 가지고 있었지요. 이 장애로 진단된 사람들은 다양한 문제행동을 나타냅니다. 


그중에는 타인에게 심각한 해를 끼치는 것들도 포함되어 있지요. 예컨대 술을 마신 상태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폭언을 하거나 물리적 폭력을 가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주변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심각한 피해를 주지요. 여러분이 어떤 것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피해를 준다고 생각해도 큰 무리는 없습니다. 때로 그 피해는 대를 이어 거듭되기도 하지요. 이렇게 심각한 피해를 주던 문제행동이 감소하는 겁니다. 당연히 주변 사람들이 반기겠지요. 어쩌면 다양한 방식으로 보상을 제공할지도 모릅니다. 


주변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 따뜻한 말과 행동은 모두 보상으로 작용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런 보상들을 충분히 즐기면서 잘 기억해 두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우리의 공통감내행동이 습관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지요. 



고통을 견딘 나에게 스스로 보상하기


주변에 보상을 줄 만한 사람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갈수록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상황을 보면, 주변으로부터 긍정적 피드백을 받게 될 가능성이 더 줄어들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우리 스스로 보상을 해 주면 됩니다. 스스로 주는 보상이라니 말장난 아닌가 싶으실 겁니다. 어차피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놀랍게도 스스로 주는 보상은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펜실베이니아 주립 대학의 심리학 교수였던 마이클 마호니(Michael Mahoney)는 체중조절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중에는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는 것의 효과를 탐색한 연구도 있었지요. 이 연구에는 49명의 과체중 성인들이 참여했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스스로에게 보상을 줄 경우 섭식 습관이 더욱 개선되고 체중 감소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지요.

 

보상이 꼭 금전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에게 긍정적 감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능합니다. 잠깐 동안 하고 싶은 활동을 하며 쉬는 것일 수도 있고, 가보고 싶었던 공간에 머무는 것일 수도 있지요. 어떤 것이든 긍정적 감정을 유발하기만 하면 그것은 보상이 될 수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한 당신에게 보상을 주십시오. 그러면 그 보상은 여러분이 고통을 더 잘 견디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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