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심 May 31. 2024

2. 고통 가운데에서 기쁨의 빛이 반짝일 수 있을까


고통을 견디는 행동을 습관으로 만들기 위한 첫 단계는 고통을 견디는 행동 뒤에 긍정적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이 어떻게 들리시나요? 고통의 한가운데에서 긍정적 경험을 하라니 그게 무슨 강아지 풀 뜯어먹는 소리냐, 싶으신가요? 그럴 수 있습니다. 고통과 긍정적 경험이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영화 달콤한 인생


2005년 한국에서 꽤 흥미로운 누아르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이라는 영화로 이병헌과 김영철, 신민아가 주연을 했지요. 아마도 여러분은 이병헌과 김영철의 마지막 대화로 이 영화를 기억할 겁니다. 이병헌이 말하지요. “저한테 왜 그랬어요?” 김영철이 답합니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김영철은 폭력조직의 보스였고 이병헌은 그의 오른팔이었습니다. 서로 신뢰하는 관계였지요. 그런데 어느 날 김영철은 자신의 애인 신민아를 감시해 달라고 이병헌에게 요청합니다. 이병헌은 받아들였지요. 처음에는 어렵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신민아를 지켜보면서 묘한 감정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차리지도 못한 상황에서, 그는 김영철의 명령을 어기고 신민아와 그녀의 숨겨둔 남자친구를 보호해 주었지요. 이 사실을 안 김영철은 이병헌을 제거하려 했고, 끈질기게 살아남은 이병헌이 김영철을 찾아가 날린 대사가 바로 “저한테 왜 그랬어요?” 였던 것이지요.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이제 다시 영화의 제목을 떠올려 봅시다. 영화의 제목과 영화의 내용이 잘 어울리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차라리 ‘억울하고 비참한 인생’이라고 했다면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역설적인 의미로 제목을 지은 것일 수도 있겠지요. 결코 가질 수 없는 꿈같은 인생을 제목으로 담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적절한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해석도 가능합니다. 억울하고 비참하기는 했지만 순간순간 달콤함을 느꼈던 인생이라는 해석이지요. 이병헌은 매우 단조로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일을 잘해서 보스의 인정을 받았지만, 텅 빈 오피스텔에 소파 하나만 두고 지낼 정도로 삶을 즐기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봄날의 햇살과 같은 포근함을 느끼게 해 준 사람이 바로 신민아였습니다. 그가 알았는지 몰랐는지 확실치 않지만 사랑이라는 달콤한 감정을 느낀 겁니다. 그의 인생은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달콤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를 부각하고 싶었던 것인지는 몰라도,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A Bittersweet Life』입니다. ‘bittersweet’이라는 단어는 ‘bitter’와 ‘sweet’의 합성어이죠. ‘맛이 쓰다’와 ‘맛이 달다’가 합성된 것입니다. 간단히 해석하면 쓴 맛과 단 맛이 동시에 느껴진다는 의미이죠. 이 단어는 부정적 감정과 긍정적 감정이 공존하는 상황을 묘사할 때 주로 사용되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에도 담겨있는 것처럼, 우리는 부정적 감정과 긍정적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bittersweet 한 다크 초콜릿의 맛이 더 진하고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bittersweet 하기에 더 풍부한 맛이 나는 게 아닐까요.


독일의 소설가 토마스 만(Thomas Mann)은 28세가 되던 해에 『토니오 크뢰거(Tonio Kröger)』라는 중편소설을 발표합니다. 토마스 만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알려진 이 소설의 주인공은 토니오입니다. 소년 토니오는 시쳇말로 아웃사이더였습니다. 외모도 성격도 유별난 면이 있던 그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지요. 반면 그의 친구 한스는 토니오와 달리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점이 토니오에겐 큰 매력으로 다가왔고, 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지요. 


토니오는 한스와 가까워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한스도 그런 토니오가 싫지 않아 적당히 어울려 주었습니다. 그러다가도 토니오와 함께 있는 것을 누군가에 들키면 토니오와 거리를 두는 행동을 했지요. 토니오는 한스의 행동과 그 이면에 담긴 의도를 정확하게 읽어내고 서운한 감정을 느낍니다. 그런 토니오의 감정을 한스도 알았는지, 다시 둘만 있는 상황이 되자 토니오가 좋아할 만한 말을 해주었지요. 그 말을 들은 토니오는 뛸 듯이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토마스 만은 토니오의 감정을 이렇게 묘사했지요.


그의 가슴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 속에는 그리움이 숨 쉬고 있었고, 우울한 질투심과 극히 미미한 경멸감과 넘칠 듯한 순결한 행복감이 숨 쉬고 있었다.
 - 토마스 만, 토니오 크뢰거-


토니오는 그리움과 우울한 질투심, 경멸감, 그리고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방금 전 헤어진 한스에 대한 그리움을 느꼈고, 한스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인한 우울한 질투심도 느꼈지요.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다른 친구들의 눈치를 보며 자신을 멀리 한 한스의 행동에 대해 느끼는 미미한 경멸감도 있었고, 결국 자신의 서운함을 이해해 주고 달래주기 위해 자신이 좋아할 만한 말을 건네주었다는 인식에 뒤따른 넘칠 듯한 행복감이 있었던 것이지요. 이처럼 우리가 특정한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은 복합적일 수 있습니다. 부정적 감정과 긍정적 감정이 동시에 경험되는 것입니다. 


에니매이션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다양한 감정이 함께 나타나는 것을 여러 가지 색깔이 섞인 구슬로 예쁘게 표현했습니다.


부정적 감정과 긍정적 감정의 관계는 많은 연구자들의 흥미를 끌기도 했습니다. 두 유형의 감정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이들이 중점적으로 연구한 주제 중 하나였지요. 아직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가능하다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다만 감정의 강도가 강할 때에는 어느 한쪽의 감정이 두드러지고 반대쪽 감정은 억제될 수 있지요. 예컨대 매우 강렬한 두려움을 겪는 상황에서는 긍정적 감정을 느끼기 어려운 것입니다. 


감정의 강도가 지나치게 강하지 않을 때에는 두 유형의 감정이 공존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강도가 경계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일치된 의견이 없습니다. 다만 즉각적 대응이 필요한 수준의 각성을 동반하지 않는다면 두 유형의 감정이 공존할 수 있다고 추측할 뿐이지요. 그렇습니다. 각성 수준이 감내영역 안에 머문다면 우리는 두 유형의 감정을 모두 경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통 수준이 과도하지만 않다면 긍정적 감정을 느끼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했을 겁니다. 다음 시간에는 고통 가운데에서 긍정적 감정을 느끼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알아보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