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학년도 수능, 영어 - 칸트 제시문 설명
Kant was a strong defender of the rule of law as the ultimate guarantee, not only of security and peace, but also of freedom. He believed that human societies were moving towards more rational forms regulated by effective and binding legal frameworks because only such frameworks enabled people to live in harmony, to prosper and to co-operate.
However, his belief in inevitable progress was not based on an optimistic or high-minded view of human nature. On the contrary, it comes close to Hobbes’s outlook: man’s violent and conflict-pronenature makes it necessary to establish and maintain an effective legal framework in order to secure peace. We cannot count on people’s benevolence or goodwill, but even ‘a nation of devils’ can live in harmony in a legal system that binds every citizen equally.
Ideally, the law is the embodiment of those political principles that all rational beings would freely choose. If such laws forbid them to do something that they would not rationally choose to do anyway, then the law cannot be understood as a restraint on their freedom.
칸트는 법의 지배(rule of law)를 안보와 평화뿐만 아니라 자유의 궁극적인 보장책으로서 강력하게 옹호했다. 그는 인간 사회가 효과적이고 구속력 있는 법적 틀에 의해 규제되는 더 이성적인 형태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오직 그러한 틀만이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고, 번영하며, 협력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필연적 진보에 대한 그의 믿음은 인간 본성에 대한 낙관적이거나 고상한 견해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홉스의 견해와 가깝다. 즉, 인간의 폭력적이고 갈등을 일으키기 쉬운 본성 때문에 평화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법적 틀을 확립하고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의 자비심이나 선의에 의존할 수 없지만, '악마의 민족(a nation of devils)'이라 할지라도 모든 시민을 동등하게 구속하는 법체계 안에서는 조화롭게 살 수 있다.
이상적으로, 법은 모든 이성적 존재가 자유롭게 선택할 정치적 원리들의 구현체이다. 만약 그러한 법이 어차피 그들이 이성적으로 선택하지 않을 무언가를 금지한다면, 그 법은 그들의 자유에 대한 제약으로 이해될 수 없다.
윤리 시간에 우리는 칸트의 윤리학에서 '정언명령'을 배운다. "네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되도록 행위하라"는 이 명제는 숭고하지만, 현실의 우리는 매 순간 그렇게 도덕적이기 어렵다. 이번 수능 영어 지문에 등장한 칸트의 정치철학은 바로 이 지점, 즉 불완전한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어떻게 평화와 정의가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칸트의 '영구 평화'와 '법치 국가'론을 고등학생의 눈높이에서 풀어본다.
1. 인간은 천사가 아니다 - ‘비사회적 사교성’과 악마들
우리는 흔히 칸트를 도덕주의자로만 생각하여 그가 인간 본성을 선하게 보았을 것이라 착각한다. 하지만 칸트의 현실 인식은 "인간은 이기적이고 투쟁적이다"라고 본 홉스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칸트는 인간의 본성을 '비사회적 사교성(unsocial sociability)'이라는 모순적인 개념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타인과 어울려 살고 싶어 하는 성향(사교성)과, 그 안에서 자신의 고집대로만 하려는 이기적인 성향(비사회성)을 동시에 지닌다. 조별 과제를 할 때 친구들이 필요하면서도, 내 뜻대로만 하고 싶어 갈등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칸트는 바로 이 비사회성 때문에 갈등과 경쟁이 필연적이라고 보았다. 그는 심지어 "악마의 민족이라 할지라도…"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구성원들이 도덕적인 천사가 아니라 이기심으로 뭉친 악마들이라 할지라도, 지능(이성)만 있다면 평화로운 법치 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는 칸트의 확신을 보여준다.
2. 신호등은 자유를 억압하는가? - 법과 자유의 역설
여기서 '법'의 역할이 등장한다. 칸트는 인간의 이기심을 통제하기 위해 강력한 법적 강제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흔히 법이나 규칙은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칸트의 생각은 정반대이다.
"법은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실현하는 유일한 조건이다."
도로의 신호등을 예로 들어보자. 신호등이 없다면 나는 멈추지 않고 달릴 충동적인 자유, 즉 '자의(Willkür)'를 누릴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제멋대로 달리는 도로에서는 사고의 위험 때문에 그 누구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없다. 이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반면, 신호를 지키는 것은 이성적인 판단에 따라 스스로 규칙을 따르는 '자율(Wille)'이다. 사고를 피하고 모두가 안전하기 위해 멈추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칸트가 말하는 이상적인 법은 이처럼 이성적 시민들이 합의했을 법한 원칙이다. 따라서 법이 나의 충동을 제한한다 해도, 그것은 억압이 아니다. 오히려 그 법 덕분에 모든 시민이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외적 자유'가 보장된다.
3. 영구 평화를 향한 기획 - 이기심이 만드는 평화
결국 칸트의 논리는 명확하다. 평화는 인간이 도덕적으로 완성된 천사가 되어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서로 미워하고 경쟁하는 '악마'라 할지라도, 이성적인 계산을 할 수 있다면 법을 지키는 것이 서로의 자유와 안전을 보장받는 가장 확실한 길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칸트는 이 원리가 국가 간의 관계에도 확장된다고 믿었다. 전쟁의 참혹함과 고통은 역설적으로 인류를 더 이성적인 판단으로 이끈다. 공멸하지 않기 위해 인류는 결국 '국제법'을 제정하고 '국제 연맹'을 결성하여 전쟁을 억제하는 '영구 평화'의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인간의 선한 본성이 아니라, 비사회적인 본성이 만들어내는 갈등이 역설적으로 평화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동력이 되는 것이다.
칸트는 몽상가가 아닌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 그는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직시했으나, 그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법'이라는 이성적 시스템을 통해 자유와 평화를 실현할 길을 제시했다. 우리를 귀찮게 하는 듯한 법과 규칙은 사실 나의 충동을 제어하여, 나를 진정한 자유인으로 대우해 주는 이성의 울타리이다. 이것이 칸트가 제시하는 법치주의의 핵심이다.
4. 잠깐! 하나 더! - 인간은 천사인가 악마인가? (칸트가 설계한 이중 전략)
“선생님, 윤리 시간에는 칸트는 인간을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존재라고 본다고 가르치셨잖아요? 그런데 왜 여기서는 악마라고 하죠?”
이 글을 읽으며 혼란을 느끼는 분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실천이성비판』(윤리학) 속 칸트는 '숭고한 도덕 법칙을 따르는 존재'를 이야기하는데, 『영구평화론』(정치철학) 속 칸트는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이기적인 존재'를 전제로 하니 말이다. 칸트가 변심이라도 한 것일까? 아니다. 이 모순처럼 보이는 간극은 칸트가 인간을 바라보는 두 영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칸트는 철저한 이중 전략가였다. 윤리의 무대에서는 인간이 도달해야 할 이상(Sollen:마땅히 그래야만 하는)을 다룬다. 여기서는 욕망을 억누르고 도덕적 의무를 다하는 ‘천사의 가능성’을 믿는다. 하지만 정치의 무대는 다르다. 여기서는 인간이 실제로 보여주는 현실(Sein:실제로 그러한)을 다룬다. 현실 역사 속 인간은 욕망과 이기심에 휘둘리는 ‘악마적 본성’을 드러낸다.
칸트의 위대함은 이 비루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는 '악마의 민족이라 할지라도 지성(계산 능력)만 있다면 평화로운 국가를 세울 수 있다'고 단언한다. 이는 '인간은 구제 불능'이라는 저주가 아니라, '도덕적 천사가 되지 못해도 평화는 가능하다'는 강력한 현실적 희망이다.
똑똑한 악마들은 이렇게 판단하기 때문이다. '나는 쟤를 공격해서 뺏고 싶은데, 쟤도 나를 가만두지 않겠지? 그러면 서로 죽고 다치니까 나만 손해네. 에이, 차라리 법을 만들어서 서로 공격 금지하는 게 내 생존과 자유를 확실히 보장받는 가장 합리적인 길이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칸트는 홉스와 갈라선다. 홉스는 '답이 없으니 절대 권력자(리바이어던)에게 복종하라'고 했지만, 칸트는 '이기적일지라도 서로를 견제할 법적 시스템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누군가에게 복종하는 노예의 평화가 아니라, 합의한 법을 따름으로써 나의 권리를 지키는 주체적인 평화를 꿈꾼 것이다.
결국 칸트의 큰 그림은 명확하다. 우리가 내면의 도덕을 닦아 천사가 되면 가장 좋겠지만, 설령 그렇지 못한 이기적인 존재라 할지라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똑똑하기만 하다면’, 서로의 자유를 지켜주는 정교한 법치 시스템을 통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이상주의자처럼 보였던 칸트가 제시한 가장 현실적이고 단단한 평화의 해법이다.
2026학년도 수능 생활과 윤리 속 칸트 제시문과 본격 설명은 다음 글 <칸트가 칸트했다? (4)>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