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학년도 수능, 생활과 윤리 - 칸트(교정적 정의) 제시문 설명
갑 : 살인을 저지르면 그는 죽어야만 한다. 이 경우 정의의 충족을 위한 대체물은 없다. 제아무리 고통 가득한 생이라 해도 생과 사 사이에 동종성은 없다.
을 : (생략)
생활과 윤리 교정적 정의 단원에서 우리는 형벌의 목적과 정당성에 대해 배운다. 그중에서도 칸트의 사형제 존치론은 매우 강력하고 논쟁적인 주제이다. 이번 수능 사회탐구 영역에서도 다루어진 칸트의 형벌관은 단순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복수심의 차원이 아니다. 칸트가 왜 그토록 엄격하게 사형을 주장했는지 살펴보자.
1. 정의는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 - 공리주의와의 결별
우리는 흔히 범죄자를 처벌해야 하는 이유로 '재범을 막기 위해서'라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벤담과 같은 공리주의자들이 말하는 형벌의 목적이다. 형벌을 통해 사회 전체의 이익(범죄 예방, 안전)을 높이려는 결과주의적 접근이다.
하지만 칸트는 이에 대해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말한다. 칸트에게 처벌은 미래의 어떤 이익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 칸트의 제1원칙은 '처벌은 오직 그가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가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쉬운 예로, 선생님이 지각한 학생을 혼낼 때 '너를 본보기로 삼아 다른 아이들이 지각하지 않게 하겠다'라고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학생은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친구들을 겁주기 위한 도구나 허수아비로 이용당한 셈이 된다. 칸트는 이것이 인간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라는 정언명령을 위반하는 비도덕적 행위라고 비판한다. 칸트에게 형벌은 사회적 유용성을 따지는 계산이 아니라, 무너진 정의의 저울을 다시 맞추는 신성한 ‘의무’이다.
2. 생명에는 가격표가 없다 - 동등성의 원칙
그렇다면 형벌의 정도는 어떻게 정해야 할까? 여기서 칸트는 ‘동등보복법(Lex Talionis)’을 제시한다.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원칙이다. 모욕을 준 자는 모욕을 당해야 하고, 물건을 훔친 자는 재산을 잃어야 한다.
이 원칙이 가장 극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바로 살인이다. 어떤 사람들은 '살인범을 죽이는 대신 종신형을 시켜서 평생 노동하게 하는 것이 사회에 더 이득이 아닌가요?'라고 묻는다. 베카리아가 그랬다. 하지만 칸트에게 삶(Life)과 죽음(Death)은 서로 교환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범주이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삶이라 해도, 살아있다는 것은 죽음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는 공통분모(동종성)가 없다. 따라서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은 죄에 대해, 그와 동등한 무게를 지닌 형벌은 범죄자의 생명을 빼앗는 것(사형)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칸트에게 종신형은 정의의 저울이 평형을 이루지 못하고 기울어진 불완전한 상태일 뿐이다.
3. 사형은 살인자를 존중하는 것이다? - 역설적 휴머니즘
칸트 형벌론의 가장 충격적이면서도 심오한 부분은 사형이 오히려 '범죄자의 인격과 존엄성을 존중하는 방식'이라는 주장이다. 언뜻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여기에는 인간에 대한 칸트의 깊은 신뢰가 깔려 있다.
우리는 갓난아기나 강아지가 실수를 저질렀다고 해서 법적인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이성적인 판단 능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가 누군가를 처벌한다는 것은 그를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이성적 존재로 대우한다는 뜻이다.
살인범이 사람을 죽였을 때, 그는 '나는 타인의 생명을 빼앗아도 좋다'라는 규칙을 스스로 선택하여 행동에 옮긴 것이다. 칸트는 말한다. '네가 이성적 존재라면, 네가 스스로 선택한 그 규칙을 너에게도 똑같이 적용하겠다.' 즉, 그에게 사형을 집행하는 것은 그를 교화시키거나 치료해야 할 환자나 통제해야 할 짐승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에 목숨으로 책임을 지는 존엄한 인격체로 인정하는 최고의 예우라는 것이다.
칸트의 응보주의는 잔혹한 복수극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결코 수단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도덕적 명령을 법의 영역에서도 끝까지 지키려는 고뇌의 산물이다. 칸트에게 정의란 사회적 이익을 위해 적당히 타협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세상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져야 하며, 살인에 대한 정의는 오직 생명으로만 갚을 수 있다는 것이 칸트가 우리에게 던지는 무거운 메시지이다.
4. 잠깐! 하나 더! - 무인도의 마지막 살인범
칸트의 정의가 얼마나 타협이 없는지 보여주는 유명한 예시가 있다.
"어떤 섬에 사는 시민 사회가 구성원들의 합의로 해산하기로 결정하고, 내일 전 세계로 흩어지기로 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래도 감옥에 있는 마지막 살인범은 오늘 반드시 처형되어야 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어차피 내일이면 나라가 없어지는데, 굳이 사형을 집행할 필요가 있나? 그냥 풀어주거나 놔두고 가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칸트는 단호하다. 사회가 해체되는 마지막 순간이라도 정의는 실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그가 저지른 피의 죄를 마을 사람들 모두가 나눠 갖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칸트에게 정의는 세상이 멸망해도 세워져야 하는 절대적인 명령이다.
드디어 2026학년도 수능 속 칸트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누굴 만나볼까요? 헤겔? 니체? 비트겐슈타인? :)
학년말이라 조오금 늦게 만날 수도 있다는 점!
천천히 기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