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이 지났다. 선선했던 바람은 쌀쌀해지고, 설악산 대청봉에는 벌써 첫눈이 내렸다. 겨울이 오면 막 불붙기 시작한 등산 열정이 사그라들 것 같아 안달이 났다. 남편과 나는 서둘러 여덟 번째 국립공원을 탐색했다. 늦가을 정취와 등산의 희열을 함께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목적지는 월출산.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악산이지만 집에서 가장 가까운 국립공원이다. 가볍게 소풍 떠나는 마음으로 배낭을 꾸렸다.
2021년 11월 13일, 월출산을 마주하고 섰다. 7개월 전 국립공원 투어를 약속했던 그 자리다. 월출산은 화려한 단풍 대신 낙엽 카펫을 폭삭하게 깔아놓고 우리 부부를 반겼다. 나는 친정에 다니러 온 새색시처럼 달떠서 카펫 위를 춤추듯 걸었다.
“내가 산을 오르게 될 줄 몰랐어!”
나는 장엄한 월출산 꼭대기를 올려다보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발로 산을 찾은 게 그저 신기했다. 내장산 신선봉을 다녀온 후 자주 산 생각이 났다. 정상에서 맛본 기쁨은 사람을 변하게 했다. 온몸에 근육통이 생겨 어기적거리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산이었다. 분명한 ‘산 앓이’였다.
취미가 등산이라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의아했다. 다시 내려올 가파른 산을 무엇 때문에 힘들게 오르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랬던 내가 관심 없는 보석을 탐내듯 산을 보게 됐다. 홀린 듯 등산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다. 체력을 키우겠다며 밤마다 만 보 걷기를 하고 스쾃을 100개씩 했다. 본 적 없는 내 모습에 나는 당황했고 남편은 환호했다. 때를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함께 오를 산을 결정하고 밀어붙였다. 그 덕에 겁 없이 한라산을 꿈꾸고, 월출산을 올려다보며 신발 끈을 동여맨다.
산에 오르기 전, 여권에 인증도장부터 찍었다. 첫 여행지였던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서 시간에 쫓겨 그냥 돌아올 뻔했던 후로 생긴 습관이다. ‘천황탐방지원센터’에 들러 구름다리가 새겨진 도장을 정해진 자리에 꾹꾹 눌러 찍었다. 이게 뭐라고 하나씩 채울 때마다 영광스럽다. 시작이 반이라더니 어느새 8번째 인증이다.
들머리인 천황사로 향하는 동안 남편이 산행 코스를 설명했다. 구름다리에 도착 후 첫 휴식을 하고, 통천문을 지나 천황봉 정상에 오를 거라고 했다. 기암괴석을 병풍 삼아 점심을 먹고 바람 폭포를 거쳐 다시 천황사로 원점 회귀하는 코스란다.
“별거 아니네? 금방 뛰어갔다 오겠어!”
말로 듣는 코스는 동네 뒷산 같았다. 월출의 속을 알지 못하니 여정을 상상할 수 없었다. 이럴 땐 무조건 해맑게 웃으며 ‘오케이’ 하는 게 답이다. 산에서는 길을 잘 트는 사람이 대장이다. 나는 남편을 ‘산악 대장’으로 임명했다
쏟아져 내린 은행잎이 천황사 앞마당과 돌계단을 포근히 덮었다. 부러 노란 물감을 칠해 놓은 듯 빈틈없이 화사하다. 마음이 말랑해져서 그냥 지날 수 없었다. 옆에 있는 산악 대장을 향해 찡긋 윙크하며 추파를 던지니 슬며시 손을 내어 준다. 그의 손을 잡고 한 발 한 발 계단을 올라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반대편 손에 쥔 등산지팡이보다 든든했다.
비단 같은 길이라 가뿐히 통과할 거라는 생각은 틀리고 말았다. 초입부터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돼 금세 숨이 찼다. 더위에 지친 강아지처럼 헉헉거리는 통에 추월하는 사람들이 힐끗거렸다. 창피함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어두워지기 전에 무사히 내려올 수 있을지.
사람이 없는 틈에 간간이 마스크를 벗어 숨 고르기를 했다. 산바람에 땀이 식고, 남편이 뒤에서 밀어주니 금세 다리에 힘이 실렸다. 용을 써서 오르고 나면 완만한 길이 펼쳐지고 내리막길도 나왔다. 그러면 또 물 만난 고기처럼 팔딱거렸다. 무작정 오르내리는 ‘초보 산객’이라 체력을 나눠 쓰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랬으니 산악 대장의 고충 같은 건 살필 여유가 없었다.
바윗길과 가파른 철계단을 번갈아 오르다 숨이 꼴딱 넘어갈 때쯤 구름다리가 보였다. 월출산 명물답게 산객들로 꽉 차 있었다. 구름다리에 다가서자,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펼쳐졌다. 하늘로 솟구친 거대한 바위 봉우리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남도의 산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라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인상 좋은 산객이 “두 분 보기 좋으세요.” 하며 사진을 찍어 주겠단다. 독사진만 찍던 우리는 고마워서 깎아 간 단감을 권했다. 꿀맛 같은 휴식을 함께 나누던 그 산객은 기분에 취해 고향도 사는 곳도 직업도 술술 불었다. 우리를 보며 다음번 산행에 꼭 아내를 데려와야겠다 마음먹었단다. 또 다른 산객은 눈이 마주치자 “드세요!” 하며 초콜릿을 건넸다. 어떤 이는 떨어진 장갑을 주워주고, 어떤 이는 경치 좋은 숨은 코스를 친절히 설명한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마음이 곱다. 말이든 먹을 것이든 다정히 나눌 줄 아는 인심 좋은 사람들이다. 나는 이런 게 산에 오는 재미이자 기쁨이구나 생각했다.
“자, 먼저 가겠습니다! 천천히 오세요.”
“네, 안산 하시고 정상에서 봬요.”
살가운 산객들과 헤어져 다음 코스로 발길을 옮겼다. 통천문으로 가는 길은 계단 지옥. 그만 포기하고 싶을 때쯤, 바윗길 끝에서 통천문을 만났다. 좁은 바위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가을 햇살이 눈 부셔 나도 모르게 윙크하고 말았다. 이 바위 터널을 지나면 곧 정상이다. 쇳덩이 같은 다리를 붙들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마지막 오름길을 올랐다.
드디어 해발 809미터 천왕봉 정상에 섰다. 굵직한 능선 줄기 위에서 웅장한 풍경을 만들어 내는 큰 바위를 올려다보며 울컥했다. 가슴이 벅찼다.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산객들로 정상석 앞은 만원이었다. 우리는 사람들의 포즈를 눈여겨보며 순서를 기다렸다. 저거다! 정상석에 기대어 무심한 듯 뒤돌아선 잘생긴 청년의 포즈를 복사했다. 남편은 ‘커다란 돌 앞에서 넓은 등판을 과시하는 한 여자’로 나를 카메라에 붙여 넣기 했다. 그가 살아서 산을 내려 온건 기적이었다.
넓은 바위를 식탁 삼아 싸 온 도시락을 펼쳤다. 우리는 땀이 흥건한 마스크를 벗고 마주 보고 앉았다. “자기는 땀에 절어도 잘생겨 보인단 말이지.” 눈앞에 먹을 것이 보이니 헛소리가 절로 나왔다. 남편은 ‘이 여자가 너무 힘들어서 맛이 갔나?’ 하는 표정으로 내 입에 김밥을 밀어 넣었다. 산에서 먹는 밥은 양을 가늠할 수 없다. 무의식 중에 집어먹는 영화관 팝콘처럼 한없이 들어갔다. 부른 배를 쓸어내리며 느긋하게 커피까지 마시고 나니 산 아래 세상이 다 내 것 같아 행복했다.
“낙지 먹으러 내려갈까?”
오늘 산행 보상은 쓰러진 소도 벌떡 일으킨다는 낙지 요리다. 산에 오르기 전, 남편이 말했다. 부부 여행의 목표 중 하나는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여행을 마무리하는 거라고.
내 발로 오른 정상, 천황봉을 뒤로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바람 폭포까지 쉼 없이 내려가기로 했다. 낙지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기운이 넘쳐 보폭을 넓혔다. “여보, 욕심내지 말고 천천히, 천천히!” 하산 길도 만만치 않다는 걸 잘 아는 남편은 오버페이스하는 나를 진정시켰다. “내려가는데 힘들게 뭐 있어.” 나는 이 산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월출산이 처음은 아니다. 어느 때인지 기억나지 않는 아주 오래전, 남편과 한여름 야간산행을 한 적이 있다. 무더운 8월의 밤이었고, 곧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헤드랜턴을 켜고 호기롭게 오르긴 했으나, 한밤중에 안개 자욱한 산길을 오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깊은 산으로 들수록 알 수 없는 공포감에 등골은 서늘하고, 마음대로 발을 뗄 수 없어 아찔했다. 돌아오는 게 더 힘들어 ‘포기를 포기’하고 무작정 올랐다. 깜깜한 정상에서 보이는 건 우리 둘의 눈동자뿐이었다. 그날의 산행은 ‘공포체험’이었다. 그 후로 나는 오랜 세월 등산을 하지 않았다.
다시 이 산을 오르게 될 줄 몰랐다.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월출산 앞에서 국립공원 여행을 결심했다. 그리고 몇 번의 여행 끝에 ‘등산’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찾았다. 긴 공백을 깨고 다시 찾은 월출산은 그 목표를 향한 첫 번째 산이다. 그래서 더 특별했고 산에 머무는 내내 들떠있었다. 아는 것 하나 없이 의지만 불태우는 초보 산객이지만 오늘 월출산을 오르며 다짐했다. 칼을 뽑았으니 썩은 무라도 썰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