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킷 3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살고자 선택한 것이에요

by 김민재 Oct 26. 2024

이웃집 여자


 덜거덕덜거덕 정리를 하고 있다. 편의점 여자는 새벽부터 부은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새로 들어온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다.

 계산해 주세요! 퇴근하던 아르바이트생이 뒤돌아 보기에 포스기로 올 줄 알았는데 냉정하게 돌아서 가버리니 편의점 여자는 물건 정리하던 손을 멈춘 후 나한테 온다.

아침부터 커피 우유?라고 묻길래 운동 후에는 이게 당겨요 라고 살짝 웃으며 대답하니 편의점 여자는 눈을 흘긴다. 고개 숙여 인사 한 후 편의점을 빠져나와 터벅터벅 계단을 올라나의  3층 집 문을 열었다.

 난 상가 주택 3층 투룸에 살고 있다. 이 동네 방을 구하러 다니다가 엘리베이터가 없어 조금 싸게 나왔다는 부동산 사장님의 말에 방 구경만 하러 왔었다. 계단에 올라 3층 현관문을 열었더니 나를 반겨 주는 햇살이 너무 좋았다. 기존 세입자가 쳐 놓은 암막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너무 좋아 덜컥 계약을 해버렸다. 이사하는 날 많지 않은 짐이지만 엘리베이터 없이 3층까지 옮기느라 고생은 하였어도 나는 이 집이 맘에 들었다.



 정신없이 이사를 한 지 3일이 지났다.

전 세입자가 두고 간 암막 커튼을 뜯어내었더니 아침 일찍 나를 깨우는 햇살에 도저히 더 누워있질 못하였다.


계산해 주세요.

1900원입니다. 적립 포인트 있나요?

괜찮습니다.


아침을 먹기도 좀 그렇고 점심이라 하기도 어정쩡한 시간이기에 1층 편의점에 가서 커피 우유 하나를 샀다. 물건을 정리 중이었는지 포스 자리에 아무도 없기에 계산해 달라고 작게 소리쳤다. 주인인가?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편의점 안쪽에서 나와 바코드를 찍어주었다.  


3층?

네? 아 네 안녕하세요? 수고하세요!  인사를 마치자마자 커피 우유를 얼른 받아 들고 편의점을 나섰다. 3층까지 계단을 터벅터벅 올라 현관문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문을 열었다.

아직 페인트 냄새가 나는 듯 하지만 나의 안식처 나의 집이다. 햇살로 데워진 소파에 앉아 커피 우유를 마셔 본다.


지현이와 영호


 지현이와 영호는 벌써 6년 차 부부이다.

 지현과 영호는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만난 두 사람은 커플이 되었다. 모범생처럼 생긴 영호는 재수를 해서 동기들보다 한 살이 많지만 항상 주변 친구들을 잘 챙기는 영호의 모습에 지현에게 사귀자라는 영호의 한 마디에 오케이 한 것이다. 지현과 영호는 과에서 모두 알 정도로 드러내며 데이트를 하며 특히 거침없는 표현과 지현을 아낌없이 챙기는 영호로 인해 캠퍼스에서 지현과 영호 커플은 소문날 정도이다.  매일 붙어 다니던 두 사람을 하늘이 시기를 했다지 영호가 군대를 가야 한다. 영호는 부모님께 군대 연기 해 달라고 했다지만 벌써 한번 연기 한 영호는 더 이상 물러 날 수가 없다.

지현아 매주 면회 와야 해? 엉? 편지도 보내고 요즘에는 핸드폰 사용도 된다니깐 전화 잘 받아야 해?

알았지? 지현아! 뭐가 이리 징징거려! 주변인들에게 인기 많은 영화지만 가끔 가다가 아기 같이 행동하는 영호가 가끔 지현이는 이해하질 못할 때가 있다.

알았어! 걱정 마! 하라는 대로 다 할 거니깐 걱정 말고! 되려 지현이가 든든한 누나처럼 영호를 다독여 준다.

훈련소 입소날!

 지현이 집 앞으로 영호 아빠의 차가 왔다. 어제 미용실에서 미리 군인 머리로 깎은 영호가 뒷자리에 앉아 있다가 지현이를 차에 태운다

안녕하세요

어? 그래 네가 지현이구나! 영호 엄마가 조수석에 앉아 계시다가 힐끔 뒤를 돌아 지현이를 확인한 후 재빨리 고개를 앞으로 다시 돌리신다.

어 안녕 영호 아빠가 반기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준다.

아 네

지현이가 영호 옆자리에 앉자마자 영호는 지현이 손을 잡고 지현아 알았지? 연락 자주 하고 연락 꼭 받아야 해 친구들이랑 술자리 나가지 말고 알았어 걱정 마하고 지현이가 대답하고선 영호의 손을 살짝 밀어낸다. 백미러로 영호 엄마의 눈과 맞추쳤다.

입영소 앞 식당에서 영호 부모님과 한우를 먹었다. 영호가 먹고 싶다고 하였다. 군대 가면 한우 언제 먹어 보겠냐며 영호는 식당에서 또 지현에게 아기 같이 떼쓰기도 협박하기도 하며 당부 또 당부를 한다. 지현이가 그만해라고 눈치를 줘도 영호가 이럴 때마다 영호 엄마의 눈썹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걸 지현이는 알 수 있었다.

 이제 진짜 헤어져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 훈련소 안에는 훈련병만 들어갈 수가 있고 부모와 동행자들은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바로 돌아 나가야 한다.

  이번에는 지현이가 먼저 얼른 들어가 늦지 말고 편지하고 메일 보낼게 핸드폰 되면 연락해라고 영호에게 말한다. 영호는 알았다고 지현이를 한번 안고 서는 차에서 내렸다.

 아기 같던 영호의 뒷모습에 까까머리 아기 훈련병의 모습이 보여 잠깐 안되어 보였다. 워낙 주변인들에게 잘하고 사랑받으니깐 군대 생활도 잘할 거라고 지현이는 믿는다.

 이제 어떡하지? 서울까지 영호 부모님과 같이 가야 하는데 그냥 내려서 버스 타고 갈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2시간 동안 차를 타야 하는데 다행히 영호 엄마는 별 말씀 하지 않으시고 아빠만 가끔 학교 이야기며 영호의 생활 이야기를 궁금해 몇 마디 던지시다가 아침 일찍 일어난다고 피곤하겠다며 눈을 좀 부치라고 배려를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지현이는 잠이 오질 않았지만 네라고 재빨리 답 하고선 얼른 두 눈을 감아 버렸다.

 잠깐 실눈을 떠 어딘가 확인해 보니 집 근처 cu가 보여 눈을 크게 뜨고 여기서 내리겠다 하였다. 영호아빠도 지현이가 불편해하는 걸 눈치채셨는지 오케이 하며 차를 세워 주신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래 조심히 들어가

그래 들어가렴 이라고 차 타고 서울 오면서 한마디 안 하던  영호 엄마도 인사를 하신다.

네 하고 얼른 차에서 뛰어내려 뒷문을 닫아 버렸다. 쾅하고 큰 소리에 살짝 놀란 지현이는 놀란 걸 들키지 않으려고 빠른 걸음을 걸어 본다.

열 걸음 지나 뒤를 돌아보니 승용차가 보이질 않았다. 지현이는 휴 하고 한숨을 쉬며 cu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하이네켄 두 병과 포테이토 칩을 계산한다.

 cu봉투 흔들며 원룸으로 돌아온 지현이가 책상에 봉투를 던져 놓고 침대에 몸을 던진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피곤한 것도 있지만 지현이를 쳐다보던 영호 엄마의 눈빛이 자구 떠올라 더 몸이 무겁다.

아 항상 옆에 있던 영호가 이제 한동안 지현이 옆에 없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흐른다. 아기 같기도 하지만 지현일 너무 잘 챙겨 주고 대학 들어와서 힘이 되어준 영호인데 이제 어떡하지 하고 걱정을 한다.

피곤함에 두 눈이 감기려고 하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아 누구지? 어 어 할머니 잘 다녀왔어 어 영호도 잘 들어갔고 어 부모님도 봤어 좋으셔

걱정 말고 주무셔 내일 전화할게

영호를 몇 번 본 할머니가 훈련소 잘 갔다 왔냐고 걱정이 되어서 전화가 한 거다.

맞아 영호가 할머니에게 진짜 손자처럼 싹싹하게 잘하였지 방학 때마다 할머니 집에 가려면 영호가 꼭 따라붙었다. 할머니를 보자마자 달려들어 안기는 영호를 할머니도 매우 좋아하셨다. 어이구 내 새끼라며

 할머니랑 통화가 끝난 후 다시 두 눈을 감아 보는데 이번에는 카톡이 울린다. 뭐 하니 잘 다녀왔지? 자니?라고 민정에게 톡을 보냈다. 지현이는 읽고 답을 하지 않다가 민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현아 왜 그래 울어? 알았어 내가 지금 갈게

참았던 울지 않을 거 같았던 지현이가 울었다.

민정이가 원룸 비번을 누르고 들어와 지현이를 안아 준다. 왜 울고 그래? 괜찮아 울지 마

 한참을 울고 난 지현이와 민지는 책상에 던져둔 맥주를 마셨다.

민정아 군대 간 영호가 당연히 보고 싶겠지만 영호 엄마가 너무 무서워 나를 쳐다보는 그 눈이 무서웠어

야 지현아 신경 쓰지 마 계속 볼 것도 아닌데 뭐. 야 마셔 마시고 푹 자

사온 맥주를 다 마시자 아쉬워한 민정이는 편의점에 가서 다시 4캔을 사 왔다. 다시 마시기 시작하는데 화장실을 잠깐 간 민정이를 뒤로 하고 현지는 침대에서 자고 있다. 오늘 밤은 현지 곁에 있기로 한 민정이는 현지가 깰까 봐 바닥에 이불 하나를 깔고 누웠다.


  자대배치받고 일과가 끝나면 카톡도 하는 영호 챙길라, 학교 시험과 아르바이트로 바쁜 현지에게 할머니는 현지에게 유일한 안식처이다. 아르바이트로 지칠 때 현지는 할머니에게 전화를 한다.

 할머니 뭐 해 나? 밥 먹었지! 할머닌? 나 걱정 말고 잘 챙겨 먹어 알았지? 한번 내려갈게

현지만을 걱정하는 할머니! 현지를 자식처럼 키운 할머니의 정성을 현지는 알고 있다.

영호에게 편지와 먹을거리를 택배 보내기 위해 우체국에 다녀왔다. 저녁에 영호에게 톡이 왔다. 지현이가  면회를 와야 외출 외박이 된다기에 꼭 와야 한다고 또 떼를 쓴다. 영호네 부모님은 몇 번 다녀오셨다. 영호가 지현이를 데리고 오라고 해서 영호 아빠가 연락이 왔지만 지현이는 부모님과 같이 가기가 싫어 아르바이트 핑계를 대고 선 아직 영호에게 가보질 않았다. 이번에는 영호도 뒤로 물러 서지 않네 알았어 이번엔 갈게 혼자서 갈게 지현이는 미리 아르바이트 커피숍 사장님께 말씀드렸다.

  화이트 원피스에 청재킷을 걸치고 면회를 갈 준비를 한다. 드디어 영호를 보러 간다. 지현이도 보고 싶었다.  영호 간식뿐 아니라 내무반 동기 것도 챙겨야 하므로 지현이는 할머니에게 가끔 받는 용돈과 대학 와서부터는 과외 아르바이트에다가 커피숍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영호 것을  참 많이 챙겼다.

 지현아

 영호야

 군대 면회가 이렇게 쑥스러울 줄이야 영호에게 잠깐 안겨 본다.



  먼저 대학을 졸업한 지현이가 세무사 사무실에 취업을 하였고 복학생 영호는 2년 뒤 졸업을 하였지만 세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라는 영호 엄마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노량진 학원으로 다시 출석을 하였다. 매일매일 보지는 못하지만 (영호 엄마의 부탁도 있었고 합격할 때까지 영호 힘들게 하지 말라는)

그래도 지현이와 영호는 행복함을 느낀다. 언제나 지현이만 바라보는 영호가 있고 둘은 서로 사랑을 하고 또 함께 꾸는 꿈도 있었기에 가끔 지현이의 흔들리는 눈빛을 영호가 보기는 하지만

 영호야 여기야! 퇴근 후 영호의 학원 앞 식당에서 저녁을 시켜 놓고 지현이는 기다렸다.

지현아! 새벽부터 학원에서 사는 영호의 얼굴이 저녁 8시가 넘은 이 시간에는 몰골이 말이 아니다. 그런 영호 앞에 지현이는 한줄길 빛이다.

지현아! 지현아! 어리광이 심해지네. 알았어! 알았어! 얼른 먹어 어이구 어이구 영호 왕자님 얼른 드세요

 일주일에 두 번! 평일에 한번, 주말에 한번, 지현이는 영호 학원 앞에 가서 공부에 지칠까 봐 영호를 달래준다. 영호 엄마가 뭐라고 할까 봐 조심하면서 다닌다. 영호 엄마는 아들이 이렇게 떼쓰는 걸 알까?

 지현아! 이번 시험에 혹시 떨어져도 우리 결혼하자!

 무슨 소리야 시험에 붙고 취업하면 하자 응?

지현아! 결혼을 하여도 나 열심히 공부할 거야! 엉? 엄마 아빠한테 말할 거니깐 그렇게 알아?



 한국인의 밥상이 텔레비전에서 재방송을 한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무지 좋아한 프로그램이다.

 우리나라에는 어쩜 저렇게 맛있는 음식이 많고 지역마다 특색 있는지 봄 냄새 가득한 달래 된장국 미나리 초무침!

 최불암 아저씨의 구수한 목소리가 더더욱 음식 맛을 고소하게 한다.

 커피 우유를 마시다가 지현은 멈춘다, 할머니가 잘해 주셨던 반찬인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지현이에겐 엄마이자 아버지이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족인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네 여보세요

부가세 신고 기간이라서 아침 일찍 출근한 지현의 핸드폰이 울린다. 항상 아침 일찍 전화벨이 울리면 가슴이 쿵쿵거린다.

네 전데요!

네? 할머니가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아침에 텃밭에 나가셨다 쓰러지신걸 옆집 아주머니께서 발견하시고 구급차로 근처 병원으로 옮겼지만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병원 이송 중이라는 전화를 받고 지현이가 부랴부랴 내려갔는데 병원에 도착하기 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할머니의 장례가 치러지는 동안 영호와 민정이가 지현이를 지켜 주었고 지현인 마지막 할머니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할머니 할머니 나 어떻게 하라고 할머니 가면 어떻게 해 흑흑

친척이래 봐야 다들 먹고 산다고 바쁜 사람들이라 잠깐 얼굴들 비추고 다들 혼자 남은 지현이를 쳐다보며 혀 끝을 차는 소리 내며 신발을 신기 바빴다.






어? 최불암 아저씨가 두릅을 드신다. 할머니가 뒷마당 두릅나무에서 따 데쳐 보내주었던 거다.

오늘따라 한국인의 밥상에서 할머니의 밥상이 보여 지현이는 커피 우유를 마시는 둥 마는 둥 델레비전 속으로 들어갈 판이다. 할머니.... 할머니의 밥상이 그리워진다.


 사춘기가 넘어 먼 친척뻘 되는 고모라는 사람이 할머니에게 지현의 부모에 대해 물어보는 걸 들었다. 할머니는 재차 묻는 지현이에게 죽었어 죽었다고를 반복하였지만, 사춘기의 객기가 무서웠던지 사실대로 말씀해 주셨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죽었다 생각하고 누가 물어도 죽었다라고 하셨다.

 버스를 타고 할머니 댁으로 내려왔다.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할머니 할머니 불러본다. 할머닌 옆집 아주머니 집에서 나오며 아이고 언제 왔어? 갑자기? 어쩐 일이야?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참 지현이가 대답할 틈도 안 주고 할머닌 뭐가 그리 걱정인지 마루에 걸터앉기도 전에 지현이에게 빨리 아니라고 답하라고 닦달하신다.

 아니야! 아무 일 없어 그냥 할머니 보고 싶어 왔어 그냥 왔다니깐


뭐라고 할머니랑 둘이 산다고? 부모님은?

영호가 집에 가서 결혼이야기를 꺼냈던지 영호의 엄마는 지현이를 직접 만나고자 하셨다. 다행히 영호는 이번 공무원 시험에 합격을 하였고, 구로세무서로 출근을 시작하였다.

영호네 부모님은 직장 생활 몇 년 하다가 결혼을 하기 바라셨지만 고집 있는 영호는 올 가을에 결혼을 하고 싶다고 자기의 의견을 말했다. 그러니 영호 엄마는 당장 지현을 만나 어찌 되는지, 어찌해야 하는지 물어볼 생각이었나 보다. 20대 초에 만나 졸업을 하고 7년을 넘게 영호를 만나지만 부모님을 만나는 건 이번이 두 번째이다. 영호 군대 갈 때 함께 차를 타고 다녀온 이후 처음이지, 영호 엄마는 우리가 사귀다 말겠지라고 항상 생각한다 하셨다.

 할머니랑 둘이? 할머니는 건강하시죠?

처음 맞이한 영호 엄마는 걸어 들어오는 걸음에서부터 지현의 목소리를 작게 만드는 포스가 느껴졌다. 지난번 느꼈던 그 눈빛이 생각난다.

 아 네 연세가 있지만, 특별히 편찮으신 데는 없으세요!

근데 부모님은 돌아가셨나요?

 원래 작은 목소리인 지현이는 진짜 들릴 듯 말 듯 대답하였다.

사실 부모님은 돌아가신 게 아니다. 지현이를 낳고 엄마라는 사람은 집을 나갔고 집 나간 엄마를 찾아온다던 아빠마저 집에 돌아오지 않아 기억이라는 걸 하는 한 할머니는 다른 사람들이 지현 부모님의 생사를 물으면 죽었어 교통사고로 둘 다 죽었어라고 한다. 할머니는 어린 지현이가 부모의 존재에 대해 궁금해 물으면 죽었다고 하였다.

 네두 분 다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무슨 사고? 왜?

뭐라고 해야 하지? 점점 붉어지는 얼굴을 느끼지만, 지현인 아무 말하지 않는다.

 영호의 어머니가 자꾸 헛기침을 하며 쳐다보는 게 느껴져 지금 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싶은데 옆에 앉은 영호는 뭐가 그리 좋은지 미소가 끊이질 않는다.

엄마 우리 빨리 결혼하게 해 줘요 네?

그래 지현이도 결혼 빨리하고 싶니?

 영호가 못 마땅 한 지 이젠 화살이 지현에게로

 뭐라고 해야 하지

 아뇨 전 영호가 좀 더 자리 잡고 저도 좀 더 안정되면 그때

옆에서 웃고만 있던 영호가 지현의 대답을 듣다가 갑자기 큰 소리를 낸다.

지현아 너 뭐라고 하는 거야? 난 빨리하고 싶다고 우리 빨리 결혼하자 그래야 너도 나도 더 빨리 자리 잡을 수 있어

영호의 큰 소리에도 지현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영호는 결혼을 빨리 하자고 하지만, 사실 지현의 형편이 그러질 못한다. 영호보다 일찍 직장 생활을 시작해 다니고는 있지만 연로한 할머니랑 둘인 지현의 형편은 아직 결혼이라는 걸 하기가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 저희 빨리하고 싶어요. 뭐 없어도 되잖아요 네?

영호 엄마는 영호의 물음에 답은 하지 않은 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리필해 달라 신다.

리필한 커피를 다 마시기도 전 영호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음에 또 보자 하신다.

뭔가 더 물어볼 게 있으신 거 같은데 웃고 있는 영호가 못마땅한지 일어나며 영호는 더 있다 올 거니?라고 물으신다.

네 저 지현이랑 더 이야기하다 갈게요 기다리지 마세요! 라며 답한다.

찬바람 일으키고 돌아서 가는 영호 엄마 뒷모습에 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옆자리의 영호는 엄마가 가시자 마자 나의 맞은편으로 앉아 자기 얼굴 내 얼굴 가까이 대며 내게 말한다.

지현아 우리 빨리 하자 나만 믿어 걱정할 거 없어

지현인 영호의 물음에도 아무 말 못 하고 커피잔만 만져 본다.




할머니 할머니 나 할머니가 끓여주는 김치찌개 먹고 싶어!

해주면 안 돼?

아 할머니 힘들려나 내가 할까?

그게 먹고 싶어? 그게 뭐가 힘들다고 할머니가 끓여 줄게. 좀만 기다려

할머니 매콤하게 끓여줘 있잖아 할머니가 좋아하는 청양고추 팍팍

어유 네네 내 새끼 알겠어요

 할머니의 밥상에는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가 있는 김치찌개. 혼자 생활하는 지현이가 고기를 잘 먹지 못할까 봐 항상 듬뿍듬뿍이다. 김치찌개와 감자채 볶음, 계란말이까지, 할머니 반찬이 가득 차 있다.

 할머니 놓을 데도 없어 그만 꺼내 이걸 누가 다 먹어

 잔소리 말고 많이 먹어 할머니 반찬은 언제나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란다. 하하하

 우와 진짜 맛있다. 역시 할머니 음식 솜씨는 알아줘야 한다니깐

 저녁상을 물리고 지현이가 할머니에게 커피를 대접한다.

 할머니 블랙으로 마셔 알았지?

 싫어 밀크로 줘 밀크 두 개 넣어!

 할머니 건강에는 블랙이 좋아

 그냥 먹던 대로 주세요

 거실 바닥에 앉아 커피를 내어 놓았다.

 할머닌 한 손으로 커피잔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텔레비전 리모컨을 켠다.

 어? 할머니 좋아하는 한국인의 밥상 한다. 매일 봐?

 응 매일 봐 틀면 나오고 틀면 나오더라 어쩜 집에서 다 해 먹는 반찬인데도 최불암 씨가 이야기하면서 먹는 거 보면 꼭 다른 반찬 같아 그렇지 않니 지현아?

 하하 호호

 한국인의 밥상이 끝났다. 커피도 다 마셨다.

 할머니 졸려

 그려 얼른 들어가 자

 할머니 나 오늘은 할머니랑 잘래

 너 허리 아파 침대 가서 자

 아냐 오늘은 할머니 찌찌 만지고 잘래

 어유 징그러워 다 큰 아가씨가 못 하는 소리가

지현이는 할머니가 깔아 둔 요 위에 눕는다. 그 옆에 할머니도 누워 지현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다.

 무슨 일 있진 않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할머니가 물어본다.

 없어! 무슨 일은 그냥 할머니 보고 싶어 온 거지 호사 바쁜 거 끝난서 머리도 식힐 겸 내려오ᅟ겄지

 지현이는 할머니 가슴 안으로 품어 들어가 본다.

 힘들면 힘들다고 이야기해야 해 안 그러면 여기 여기가 병이 들어 알았지?

할머니는 지현의 가슴을 가리키며 절대 속에 담아 두지 말라고 당부 당부 하신다.

 걱정 마 내가 누구인데 라며 큰소리쳐 보지만 지현일 쳐다보던 영호 엄마의 눈빛이 자꾸만 생각나 가슴 펴라고 할머니가 두들겨준 가슴이 지현이도 모르게 다시 움츠려 든다.

 무슨 사고? 왜? 무슨 사고? 왜? 무슨 사고? 왜?




 텔레비전을 켜 놓은 상태로 잠이 들었나 보다. 아 맞다 한국인의 밥상을 보았지?

테이블 위에는 먹다 남은 커피 우유가 보인다.


카톡이 울린다.

민정이의 걱정이 담긴 카톡이다. 영호와 이혼을 결심하기까지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기에 영호에게 전해 들은 민정이는 너무 놀랐을 것이다.

 지현아 네가 어떤 결정을 했건 난 너의 편이야

 지현아 어디니? 내겐 연락해야 하지 않니

 야 계집애야

 이건 너무 하잖아 난 너 친구 아니니?

 우리 사이가 이거밖에 안되니?  

 나쁜 계집애

수도 없이 올라오는 민정이의 물음에 지현이는 답하지 않았다. 민정이가 친구가 아니여서도 아니고 민정이를 못 믿어서도 아니고 지금 지현이는 아무것도 답 할 수 없다.

 지현아 내일부터 며칠 비가 많이 온대 어디 있는지 답 안 해도 되니깐 비 조심하고 건강 챙겨

 민정아 미안 나중에 다 이야기할게라고 카톡에 답하지 못하고 가슴에 답해 본다.




 영호의 끈질긴 구애와 협박으로 드디어 지현이는 결혼을 하였다.

할머니를 갑자기 떠나보내고 난 후 영호는 더 지현이에게 자신이 보호자가 되어 주겠다며 결혼을 서둘렀다.

 지현아 이제 너한텐 나 밖에 없잖아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깐 따라만 와

 영호의 엄마의 만나자는 소식에 지현이는 사무실에서 안절부절이다.

 결혼식 때문인 건 알겠는데 어쩌지 영호도 없이 두 사람만 만나다는 게 너무 겁이 난다.

 지현아 괜찮겠지? 엄마가 너랑 둘만 보자는데 나 나오지 말라고 하는데 괜찮겠지?

 걱정 마 영호야 나 어린애 아니야 걱정 마

 민정이도 걱정이 되어 전화가 온다.

 지현아! 설마 영호 엄마가 너 잡아먹겠니? 영호가 그렇게 좋아하는 넌데 영호 엄마도 어쩔 수 없을 거야 너무 걱정 마

  약속 시간이 다 되어가니 지현이 심장도 더 빨라진다. 약속 장소로 가는 지현의 구두소리도 빨라진다.

 커피숍에 들어 서니 멀리서 봐도 알 수 있는 영호 엄마의 실루엣이 보인다.

 뛰다싶히 걸어 들어가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어 어서 와요. 앉아요

 네

 뭐 마실래요? 난 캐모마일 차로

 아 네 전 아이스아메리카노 할게요

 어떻게 지냈어요? 할머니 돌아가셨다는 이야긴 영호 통해 들었어요. 영호 아빤 가보자고 했는데 지현 씨 불편해할까 봐 내가 가지 말자고 했어요

네 할머니 잘 보내드렸어요. 감사합니다.

영호가 들고 온 조의금이 생각이 나 지현이는 감사하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결혼식장은 영호 아빠랑 알아볼게요

계속 존댓말을 쓰는 영호 엄마가 지현이는 너무 불편해 말씀 낮추세요라고 건네본다.

그럼 그럴까? 이제 결혼도 하는데

네 말씀 낮추세요. 어머님

하하 내가 지현에게 어머님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 줄이야 하하

갑자기 지현이 얼굴이 붉어진다. 귀도 붉어지고

 아무것도 준비할 거 없어 지현이는

 네?

 영호 아빠랑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깐 지현인 시간만 비워 두면 돼

 아 그래도?

 지현이 쪽에서 준비해 주실 부모님이 계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형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혼자 어떻게 해?

 날카롭게 들린다. 영호 엄마의 혼자서 어떻게 해가 너무 날카롭게 들린다.

 네 알겠습니다. 다시 붉어진 얼굴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써보지만, 지현이의 얼굴은 자꾸만 붉어지다 못해 화장이 얼룩질 정도의 땀까지 흐른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입에다 넣어 보지만 시원하지가 않다.

 지현아! 드레스 맞추러 가야 해 다음 주에 시간 비워!

결혼식 날짜가 잡히자 영호는 신이 났다. 드레스 정하기 예물 정하기 신혼집 정하기 신혼여행지 정하기 무슨 소꿉장난 하듯이 들떠 있는 영호가 지현이는 마냥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민정아 약속 시간 맞춰 와

지현이가 드레스 보러 간다는 말에 민정이가 따라가겠다 하였다.

 신부 혼자 가면 재미없어 내가 가서 골라 줄게 이따 봐

약속 시간이 다 되어 드레스 샵에 도착 한 지현이는 영호와 민정이를 보았다. 영호가 뛰어 오며 지현이를 반긴다. 그런데 영호 뒤에 서 있는 민정이의 얼굴 안색이 안 좋아 보인다.

 지현아 어서 와 차 안 막혔어

영호가 아기 다루듯 지현이를 챙기는데 지현이의 눈은 민정이에게 가 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민정이에게 물어본다.

 어 그게 말이야. 민정이가 답 하려고 하는데 민정이 뒤에서 영호 엄마가 보인다.

 어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지현이 자신도 모르게 어떻게 왔냐고 여쭤본다.

 하하 놀랬니? 드레스 고른다기에 내가 골라 줄까 하고 왔지! 어서 입어 봐

영호는 왜 지현에게 말 허지 않았을까? 엄마가 온다는 걸 지현이는 영호에게 화가 난다.

 어머어머 지현아 너무 이쁘다. 영호 씨 지현이 천사 같지 않아요?

 드레스로 갈아입은 지현의 모습에 민정이는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다음 드레스로 갈아입을게요 신랑님 잘 보고 계셔야 해요

영호는 직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지만 핸드폰에 사진을 저장하기 바쁘다.

 와우 역시 지현이는 다 예뻐 난 이것도 예쁘다. 영호 씨는요?

갈아입는 드레스마다 민정이는 환호성을 질렀고 영호는 두 눈에 글썽글썽 눈물을 맺어 가며 지현이를 안았다 놨다를 반복하는데 지현이는 보았다. 영호 엄마의 눈을! 또 보고 말았다. 그 날카로운 영호 엄마의 눈을

 몇 번 더 드레스를 갈아입었다. 이제는 선택을 해야 하는데 다들 고민이다.

영호랑 민정이는 두 번째 입은 이나영 스타일 드레스가 좋다고 한다. 지현이도 싫지 않다.

깔끔하고 단정한 스타일이라 맘에 든다.

 어 아냐 아냐  갑자기 지켜보고 있던 영호 엄마가 5번째가 더 좋겠다 하신다.

 네? 민정이가 놀라 되묻는다. 그게요? 왜요? 아냐 지현아 5번째보다는..

민정이가 너무 놀라 지현에게 영호에게 어필해 본다. 그런데 갑자기 영호가 그래 지현아 5번째가 더 나아라고 말을 바꾼다.

 영호 씨

 영호야

지현이도 놀라 영호를 쳐다보며 물어보는데 영호가 그게 낫단다.

민정이가 헐 하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다. 맞다 민정이는 생각이 났다. 영호가 지현이에게 프러포즈 준비 하던 것이 생각났다.

영호는 민정에게 연락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자문을 구하였고 자칭 지현의 가장 친한 친구임을 자부하는 민정이는 지현이가 좋아할 것들을 일일이 나열해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조용히 할 것을 이야기하였건만 갑자기 프러포즈 장소가 바뀌었다. 둘만의 장소가 아니라 영호 엄마 친구분의 레스토랑으로 바뀌었다.

 자주 민정이와 지현이는 이야기하였다. 결혼식은 어떻게 하고 프러포즈는 어떻게 받고 싶고 신혼집은 인테리어를 이렇게 하고 싶고 꿈꾸는 20대 초부터 둘은 그들만의 꿈을 이야기하였는데 갑자기 프러포즈 장소가 바뀌더니 프러포즈 날 영호엄마와 영호 엄마 친구분들이 다 지켜보는데서 지현이는 영호의 반지를 받았다. 그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지현이가 영호 엄마 이야기 할 때 좀 무섭다. 두 눈이 날카롭다. 지현이가 괜히 느끼는 건가? 할 때도 민정이는 웃었다. 개네 엄마가 널 잡아먹니?라고 하지만 프러포즈하는 날 영호 엄마가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민정이는 개네 엄마 미저리야 라고 지현에게 거품을 물며 영호 엄마를 욕했다.

 그런데 오늘 민정이는 보았다. 지현이가 느꼈던 그 모든 것들을 민정이는 보고 느꼈다.

 지현이에게 뭐라고 이야기하지?

오 다들 고생했으니 우리 식사하러 가자

영호 엄마가 예물까지 고른 영호와 지현에게 그리고 같이 온 민정이에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한다.

 민정이는 괜찮다고 사양을 하다가 영호가 분명 엄마에게 끌려 지현이도 데려갈게 뻔해 보여

 지현아 오늘 저녁에 친구들이랑 약속 있잖아 너 결혼식 때문에 다들 모이기로 했잖아 영호야 지현이랑 나는 가야 하니깐 너랑 어머니랑 맛있게 먹어

 민정이가 지현에게 한쪽 눈을 찡긋 거리며 손을 잡아 끈다.

 아 그래? 약속 있다는 이야기 안 했잖아 지현아!

 무슨 그런 약속까지 너한테 일일이 보고하니 영호재도 웃긴다. 라며 민정이가 영호에게 핀잔을 준다.

 그러니? 그럼 식사는 다음에 하고 가보거라

 네 어머니 영호야 먼저 갈게 전화할게

 민정이 손에 이끌려 나오지만 지현이는 꽉 잡은 민정이의 손이 좋았다.

 하하 잘했지? 지현아 나 연기할까 봐

 고마워 민정아

 할머니 밥이 생각날 때마다 자주 들리던 학교 앞 백반 집에 둘은 들렀다.

 이모 김치찌개하나 오징어 볶음밥 하나요

 오랜만에 들렀네 어쩐 일이야? 회사는 잘 다니지?

 어유 왜 어른들은 우릴 보면 어쩐 일이야? 그러실까? 하하 이모 보고 싶어서 왔지요

 하하 입에 침 발라

 발랐습니다

민정의 넉살은 항상 어른들을 웃게 만든다. 지현이 까지도

 이모의 정성 가득 밥이 나오자마자 지현이와 민정이는 누구 먼저랄 것도 없이 입에 넣기 바쁘다. 드레스에 예물에 고른다고 고생한 것 때문인지 아니지 영호엄마 눈치에 배 고픈 것도 모르다가 탈출하자마자 허기진 것을 느끼니 입으로 엄청 들어간다. 이런 두 사람의 모습이 웃기는지 백반집 이모가 김치전을 부쳐서 서비스라고 내어 주신다.

 배가 많이 고팠네 고팠어

 네 이모 음 너무 맛있다. 역시 백반은 이모네 백반이야 이모 공깃밥 추가요

 이모 저도 공깃밥 추가요

 지현이가 웬일이야 밥을 추가하고

 어느 정도 배가 채워지자 민정이가 지현에게 말을 건넨다.

 지현아 괜찮겠지?

 엉? 뭘? 아 영호엄마? 괜찮지 뭐

 아니 한 번도 아니고 매번 너희 둘 일에 깍두기도 아니고 자꾸 끼어서 시어머니가 뭣 한데 드레스 고르는데 시어머니가 웬 말이야 프러포즈 때도 뭐고

 지현이는 민정이가 쏟아 내는 말에 아무 말이 없다.

 근데 영호는 뭐야 언제부터 지네 엄마 말 잘 들었다고 아니다 갠 엄마 말 잘 듣지.

 그래도 영호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 엄마 그늘이야 큰일이다 큰일 지현아 너 정말 괜찮겠지?

 괜찮아 영호도 이제는 바뀌겠지? 아직은 결혼 전이니깐

 맞아 결혼하면 지현이 네가 딱 잡고 영호가 자기 엄마한테 못 휘둘리게 꽉 잡아야지

 사실 지현이도 걱정이다. 결혼식 준비 하면서 영호엄마의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 관심이라고 해야 하나 간섭이 맞겠지 신혼집도 그렇고 처음에는  영호부모님 집으로 들어와서 몇 년 살다가 분가하라고 하였다. 하지만 지현이의 직장과 너무 멀어 영호가 안된다고 그것만은 안된다고 따로 살고 싶다고 끝까지 주장을 내 세우자 어머니도 고심 끝 허락을 하셨다. 그래 맞아 영호도 자기 생각이 있으니깐 우리는 괜찮아라고 지현이는 속으로 말해본다.


지현아 내일 할아버지 제사야 내일 엄마가 집으로 올 수 있냐고

엉? 결혼식도 안 했는데 제사에? 내가?

영호의 전화에 지현이는 당황하였지만 영호 입장도 있을 거란 생각에 알았다 하였다.

뭘 입고 가지?

 다음날 회사 앞에 영호가 데리러 왔다.

영호야 나 괜찮아?

응 이뻐!

아니 이쁜 것 말고 제사에 참석하는데 옷 괜찮냐고

가만히 지현일 쳐다보던 영호가 엄지 손가락을 펼쳐 보인다.

지현이는 아래위 블랙바지 정장으로 입고 영호네 집 안으로 들어섰다.

 영호네 집은 처음이다. 지현이의 원룸에서 영호를 만나거나 밖에서 만났지 집은 처음으로 와 본다.

 먼저 아버님께서 반겨 주신다.

 오랜만이야 지현아 잘 지냈지? 어 오랜만에 보니 얼굴이 말랐네. 아버님은 결혼이라는 걸 하겠다고 정해지자 넷이서 식사 한번 하자고 하여 식당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참 따뜻하게 지현이를 반겨 주신다.

 안녕하셨어요? 아버님

 결혼식 준비 하느라 힘들구나 살이 많이 빠져 보이네

 어서 와 왔니?

 네 어머니

 인사들 해 영호 짝 왔어요

 안녕하세요

 어머 영호 색시야? 근데 제삿날 뭐 하러 오라 했어

 인사들 하라고요 결혼식에서만 보면 누가 누군지 그날 정신 있겠어요

 그래도 아가씨가 당황스럽겠네

 아직 제사 지내려면 멀었으니깐 차 한잔하고 가요

 작은 어머님이라는 분이 아주 부드럽게 말을 건네준다.

 네

 영호는 어떻게 만났어요?

 예물 반지는 어디 거야?

 신혼집은 몇 평인데?

 1시간을 지현이와 영호에게 폭풍 질문을 던지시던 시댁 어른들이다. 영호는 신나게 대답을 해준다.

 아 참 언니 지현 씨 부모님은 무얼 하신다 했지요?

갑자기 영호엄마가 조용하다. 지현이도 아무 말 못 하고 얼굴이 붉어진다.

지켜보던 아버님이 차 다 마셨으면 이제 그만 일어나 결혼식 때 얼굴 보면 되지 당신은 뭐 하러 지현이 피곤하게 집으로 오라 했어 참

영호야 제사 시간 전까지 맞춰 오고 지현이 어서 집에 데려다줘 피곤하겠다.

지현아 얼른 일어나 여보 지현이 간대

뭐 벌써 갈려고?

아 네 어머니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결혼식 때 뵙겠습니다. 지현이는 자신을 쭉 둘러 사고 쳐다보고 있는 친척들에게 재빨리 인사를 한다. 뜨겁게 붉어지는 얼굴에 손이 자꾸만 간다. 신발을 어떻게 신었는지도 모른 채 잘 가라는 친척들 인사에 고개만 계속 숙여 보이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몸을 숨긴다.

 괜찮아? 지현아? 지현의 안색이 안 좋은 게 보였는지 영호가 걱정하며 묻는다.

 응 괜찮아 집에 빨리 가고 싶어 라며 영호의 걸음을 재촉해 본다.

 원룸 앞에 도착한 영호가 집으로 들어가려 하자 지현이가 괜찮다고 혼자 가겠다며 영호를 돌려세운다.

 정말 괜찮겠니? 응 괜찮아 얼른 가

  입고 있는 옷도 얼굴의 화장도 채 정리 못 하고 침대에 쓰러져 누운 지현이는 할머니가 보고 싶어 진다. 할머니 나 괜찮겠지? 정말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할머니 거긴 어때? 여기는 이제 가을 시작이야 낙엽에 조금씩 물이 드는 것 같고 여름 이불 정리 해야 하나 봐 저녁에 덥기엔 조금 추운 거 같아

 입고 있는 옷도 얼굴의 화장도 채 정리 못하고 침대에 쓰러져 꿈을 꾼다.

 어머 지현아 영호랑 너무 잘 어울려 걱정 마 이 엄마가 할머니 몫까지 다 해줄게 어쩜 우리 지현이는 음식을 잘할까 할머니 닮아서인가 호호호 이리 와 오랜만에 지현이 한번 안아보자

 지현이를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을 걸어 주는 영호엄마를 바랐던가보다 별 꿈을 다 꾼다. 꿈처럼 그런 부드러운 눈빛이었으면

 출근을 해야 하는데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잠을 설쳐서인가 보다.

실장님 죄송해요 갑자기 월차 써도 될까요? 네네 죄송합니다.

 지현이는 무거운 몸 핑계지만 오늘은 정말 출근을 하기 싫다. 영호에게 전화가 계속 오지만 톡만 남겼다. 미안해 몸이 안 좋아 좀 더 자고 싶어 일어나면 연락할게 그리고 오늘 출근은 안 할 거야 걱정하지 말고 일해

 한 참을 침대 위에서 몸 저 누워 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아이스커피 한잔을 마신다. 정신 차리자 지우지 않고 잔 화장을 지우고 양치를 하고 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간다.

 시외버스를 탔다.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 납골당 가는 버스를 탔다. 평일이라 텅텅 빈자리가 많다. 서울 시외버스터미널에서 1시간 20분이면 여주시외버스터미널이다. 다시 택시를 타고 납골당까지 10분이면 할머니가 계신다.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에 멀리 보이는 노란 들판도 보인다. 아직 완전히 벼가 익지는 않아 중간중간 초록초록도 보이고 은행나무도 조금씩 물들어 가네 할머니도 이 계절을 느끼고 계시겠지? 가을이 오면 할머닌 엄청 바쁘셨는데 도토리 추워야지 김장 배추 심어야지 할게 많다 할게 많다 하셨는데

 어느덧 여주 시외버스터미널이다. 근처 편의점에서 할머니가 좋아한 달달한 라테와 젤리를 산다.

 할머니 지현이 왔어 또 무슨 일이냐고 그러지 마 그냥 할머니 보고 싶어서 온 거니깐

 할머니 이거 마셔 할머니건 믹스 커피이고 난 오늘은 딸기 우유야 이 딸기 우유가 말이야 신기한단 말이야 어떤 때에는 달콤한 딸기 맛이고 어떤 때에는 어릴 때 감기 걸려서 먹던 약 같다 말이야 음 오늘은 무슨 맛일까? 할머니 할머니건 맛있지? 지현이는 납골당 바닥에 앉아 주저리주저리 말을 한다. 시골집 마루에 누워서 할머니랑 대화하던 그때처럼. 지현이가 마시던 딸기 우유는 감기약 맛이 나 억지로 꿀꺽굴꺽 넘겨 본다.

 할머니 잘 있어 조만간 또 올게  할머니 얼굴이 있는 작은 사진을 몇 번 만지고선 돌아선다. 택시를 타려다가 걸어서 터미널까지 가본다. 머릿속이 복잡해서 생각을 많이 해서인지 어느덧 터미널 앞이 나온다. 배가 고프다 어제저녁도 오늘 아침도 약냄새나는 딸기 우유도 다 마시지 못하고 버려서 인지 배가 너무 고프다. 차 시간도 40분 정도 남았기에 분식집으로 들어가서 칼국수를 하나 시켰다. 밀가루의 매끈함이 술술 넘어간다. 주인 어르신이 건네는 자판기 커피를 받아 마신다. 이 동네 사람은 아니고 아가씨 혼자 와서 식사하는 게 신기하신 지 경계를 하는지 자꾸 쳐다보지만 뭐라고 물어보진 않으신다.

 잘 먹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차 시간이 다 되어 계산을 하고 나온다.

 차 안에서 핸드폰을 열었다. 영호의 부재중 전화가 난리이다. 차 안이라 통화를 못하고 다시 톡을 남긴다. 영호야 할머니한테 왔다 올라가는 버스야 집 가서 전화할게 미안

영호는 난리이다. 할머니한테 갈려면 같이 가야지 왜 혼자 가냐고 너무 하다고

 에라 모르겠다. 지현이는 핸드폰을 덮는다.















































이전 04화 장미꽃 활짝 핀 커피 하루를 아시나요?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