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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필우입니다 May 16. 2024

어버이날이면 뭐해

내 병은 내가 잘 알아!



     

지금으로부터 37년 전, 추석 일주일은 남겨두고 아버지가 먼 길을 떠나셨다. 그리고 8년이 흐른 뒤 홀로 동네 이웃들과 벗하며 살아가던 어머니마저 화사한 봄날에 꽃비가 하늘하늘 내리던 날 그렇게 가셨다.      


그때부터 무려 30년 넘게 나는 고아로 살아오고 있다. 이 나이가 되어도 시시때때 묵은 상처가 덧나듯 어머니가 그립다. 하물며 어버이날임에랴……. 생채기에 빨간 약을 바르듯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어린 시절 콧물 날리며 뛰어놀던 고향을 떠올리며 추억한다. 이는 어머니를 통해 내 근본을 잊지 않으려는 그리움의 소산이다.      


최근 들어서 몸이 천근만근이다. 새벽 운동을 중단한 지 달포가 넘었다. 새벽 6시면 눈이 떠지지만, 재차 잠에 빠져 악몽에 시달리다 8시가 되어서야 일어나곤 한다. 마치 몸에 저울추가 매달린 듯 무겁게 몸을 일으켜야 했다. 밤새 세상과 단절된 커튼을 걷자 모처럼 하늘이 맑고 쾌청하다. 극성이던 황사가 물러난 듯하다. 그러나 파란 하늘도 어수선한 꿈자리에서 일어난, 마치 객창에서 잠을 깬 듯한 내 마음마저 염색하지는 못하였다.      


아내가 이른 아침에 집을 나간 듯하다. 텅 빈 거실을  뒤로하고 안방으로 들어가자 밤새 뒤척인 아내의 흔적. 본능처럼 아내 침대정리를 한다, 그래도 가슴에 휑하게 부는 바람은 막지 못했다. 기분 전환이 필요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면서 오늘 하루 일정을 대충 정리 정돈하였다. 별나게 나쁜 일도, 그리 신날 일도 없는, 그저 그렇게 하루가 저물 것 같았다.


백수가 아침에 가장 필요한 것은 허기를 메우는 일이다. 조리대 위에 토란줄기가 물에 불려 있다. 어젯밤 잠들기 전, 호기롭게 마른 토란대를 물에 담가 놓았던 기억이 났다. 어머니 생각이 밀려들었다. 토란줄기로 밀가루 살짝 넣고 멸칫국물로 칼칼하게 국을 끓여내던 어머니 손맛이 생각났다. 입에 침이 고였다. 그렇지만, 나 홀로 먹기 위해 정성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만사 번잡한 생각이 들었다. 불린 토란대를 냉장고에 넣어 두고, 대신 당근주스와 견과로 뱃속을 달랬다.     


어버이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다. 아침에 집을 나간 아내에게 톡질을 했다. 어버이날이 다가오는데, 이번 주말에 시골에 계시는 장인장모 찾아봐야 하지 않으냐고 의중을 물었다. 물론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말처럼, 처가 가까이 풍족하게 널린 석탑과 석불, 석등 등 문화재 답사를 위한 모종의 계략이었다.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안가!”     


단호했다. 아내는 네 남매 맏이라서 친정 일이라면 형제 중 가장 먼저 앞서서 해결하곤 하던 터다. 그러던 나의 벌꿀오소리 심기가 퉁퉁 불어 있다. 어떤 사연인지 몰라도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였다. 아무렴 장인과의 마찰이리라. 지금까지 경험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장인이 너무 똑똑하다는 것과 아내 역시 그에 못지않게 잘났다는 데 있다.   

   

십여 년 전 어느 날, 불의의 사고로 장인의 몸에 이상이 찾아왔다. 그로 인해 시간이 지나면서 도미노처럼 몸 곳곳이 삐거덕거리며 말썽을 부렸다. 얼마 전, 아내와 친정아버지 간 통화 내용이다.


“아버지, 의사가 왜 의사인지 알아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을, 그만큼 전문 분야에 십수 년간 공들여 공부한 사람들이에요.”


이런 말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답이 또 이처럼 명쾌할 수 없다.


“내 병은 내가 알아!”     


뭐 대충 이런 대화였다. 나의 벌꿀오소리가 화를 억누르며(사실 눈치 없게도 앞에 앉아 있던 내게 화를 내듯 얼굴을 새파랗게 해서), 토막토막 이야기한 바를 종합해 보면, 장인은 방광으로부터 시작해 심장과 폐에까지 문제가 이어졌다. 너무 똑똑한 나머지 스스로 병을 키운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장인은 심장약을 먹으면 혈압이 급속도로 떨어졌다. 방광약도 겸해야 하지만, 이 또한 혈압을 더 낮추는 악순환이 지속되었다. 방광약을 먹지 않으면 밤에 화장실 들락대느라 잠을 잘 수 없었다. 결국 대책 없이 의사가 처방해 준 심장약과 방광약 중 스스로 판단해 소변이 원활하게끔 방광약만 복용하였던 것이다.     

 

한두 달이 지났다. 결국 폐에 물이 차고, 심장이 비대해지자 비상사태에 돌입하면서, 지역병원 의사가 대학병원 응급실로 보내기까지 병이 커졌다. 결국 대학병원에서 소변 주머니를 몸에 이은 후, 그때부터 심장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이제 순조롭게 병이 호전되거나 더 악화되지만 않으면 안심이라고 생각할 즈음이었다.     


그러나 장인은 몸에 붙어 불편하기 짝이 없는 소변 호스를 스스로 떼어내고 방광약을 선택하면서 심장약을 또 중단하게 된다. 역시 후진이라곤 절대 없는, 무조건 직진뿐인 벌꿀오소리의 정신적 유전자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님을 또 한 번 실감했다. 숨이 가빠 쓰러지기 직전인 모습을 지켜보던 장모가 시급하게 연락한 곳은 당연히 맏딸인 아내다. 장인은 아내의 도움으로 재차 대학병원 응급실 신세를 져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급하게 방광을 묶는 수술을 잡았다고 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반대할 것이 명확한 큰딸에게는 비밀로 했지만, 동생 역시 큰언니를 무시하고 앞장설 수 없었을 법하였다. 수술 예약을 잡은 곳이 서울의 ‘OO 의원’이었다. 아내는 물론 나도 놀랐다. 종합병원은커녕 병원도 아닌, 의원에서 거금 천만 원을 들여(그것도 200만 원 깎은 금액) 수술 받겠다는 일방적인 통보다.      


검색엔진을 돌리던 아내가 기겁하였다. 의원에 전화를 걸었다. 병원이 아니라 무슨 보험회사라며 전화를 받는다. 어이가 없다. 장인 이야기는 지금 살고 있는 곳 가까운 도시에는 그런 수술하는 곳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맏딸의 능력을 무시한 장인의 실수다. 검색해 보니 지금까지 다니던 대학병원을 비롯해 전문병원 두 곳이나 더 있다. 가격도 서울 의원에서 할인해 준다는 금액보다 30% 더 저렴하다. 문제는 또 있다. 지금까지 다니던 대학병원에서 환자 상태를 보아 그런 방식의 수술은 성공 확률 역시 낮았고, 성공한다고 해도 오래갈 수 없다는 판단에서 선택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아내가 전화기를 붙잡고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 지를 구구절절(물론 스스로 자가발전 하듯 점차 옥타브를 높여가며), 아버지는 물론 동생들에게 차례로 불만을 토로하였다. 이때 장인다운, 지금까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듯 매우 명쾌하게 결론 내렸다. 장인이 맏딸인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동안 나를 위해 애쓴 것은 고맙다. 그런데 이제부터 내 인생에 간섭하지 마라    
 


이 몇 줄에 심기가 불사조인 양, 그처럼 강했던 나의 벌꿀오소리가 충격을 받은 듯하였다. 결국 장인의 고집대로 서울의 그 무슨 의원인가에서 수술을 받겠다는 의미다. 아내는 ‘그러면 왜 문제만 생기면 내게 전화해서 걱정하게 하냐며, 그처럼 똑똑하면 스스로 알아서 잘 챙겼어야지’ 하며 그 불똥이 앞에 앉은 죄로 멀쩡한 내게 튄다. 더불어 나도 얼굴이 붉어졌다.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도대체 장인은 어디서 그따위 정보를 접했을까? 단언컨대 유튜브였다. 물론 이해는 한다. 얼마나 속상하고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생각하지만, 담당 의사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당신이 정말로 똑똑하다고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거나, 병을 고치지 않겠다는 의미와 같다. 알다시피 의술은 과학이다!


아내는 의사에게 혈압이 급격하게 떨어져 약을 먹을 수 없다고, 약을 조절해달라는 말은 일절 하지 않은 채, 홀로 판단해 병을 키운 아버지를 제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겠다는 뜻 같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방광약도 먹지 않다가 걷잡을 수 없이 된 후에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는 지금까지 책 한 권만을 읽고 달려드는 사람과 토론하거나, 시비 붙지 않는다. 그냥 인정하고 져주는 게 편하다. 하물며 책은커녕 유튜브를 진실로 믿고 거품 무는 인간을 제일 한심하게 생각한다. 해외여행이나, 스포츠는 물론 정치도 마찬가지다. 물론 유튜브가 주는 순기능도 많다. 그러나 그만큼 역기능 역시 무시할 수 없다는 의미다. 정신없이 생산되는 정보사회에서 진위와 옥석을 가릴 지혜는 필수다. 일단 입체적으로 생각하고, 의심부터 하라는 의미다. 다산연구소에서 온 메일이다.      


“‘우리가 진리임을 한 번도 의심해 보지 않은 믿음 바로 그것이 악마다!’(움베르토 에코)라는 경고를 무시하면 어느 종교도 마귀 들린 집단으로 표변할 수 있다.”     


나는 사실만을 믿는다. 고로 진리는 물론, 진실이라고 하는 것들도 의심한다. 무지가 신념에 차면 만세돌격대로 변하기 일순간이다. 사실을 어떤 시각에서 진실로 받아들이냐에 따라 신념으로 굳어지고 스스로 변한다. 인간으로 이 땅에 태어나 멍청하게 취급당하거나, 가진 자에 의해 조정당하면서도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니? 차마 부끄럽고 못 할 짓이다. 영화 《캡틴 판타스틱》에 나오는 대사다.    

 

“민중에게 권력을, 권위에 저항하라!”     




각설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 나의 벌꿀오소리를 향해 자식인 이상 어버이날에 도리는 다해야 하지 않겠냐며, 장인보다 장모님은 무슨 잘못이냐며 달랬다. 그러나 갈등의 여지도 없이 단호하게 거절하는 나의 벌꿀오소리다. 그만큼 속이 상했다는 뜻으로 해석하였지만, 그래도 부녀간인데 심한 처사다.      


내가 말했다.

“아버지는 그렇다고 치고, 어머니 역시 아무리 길게 잡아야 십 년이에요.”

이렇게 말 하면서 슬픈 이야기를 너무 쉽게 한 것 아닌지 살짝 걱정했다. 역시 나의 촉은 틀리지 않았다. ‘아무리 길게 잡아야’가 문제를 일으켰다. 대번에 안색이 변해 달려들 듯 되묻는다.     

“뭐라고요?”     

백 세 시대는 하늘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이 또한 금전이라는 주조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만이 자격이 주어진다. 그러나 문제는 작금의 현실이다. 지금까지 참았던 화가 살이 되어 내게로 날아왔다. 나정도 피지컬이나 맨탈이 되는 맷집이니 견디지, 보통 사람이면 벌꿀오소리의 변칙적이며 전방위로 날리는 공격에 하루도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잠시 틈을 두고 나는 나의 벌꿀오소리를 향해 내 어머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보세요! 1923년생 울 엄마가 70 중반 나이에 암에 걸려 버티고 버티다 너무 힘들어 고통을 참지 못하니까 울부짖듯 ‘어매요!’ 하고 외할머니를 찾더이다. 그러니 지금 화난다고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께 죄 짓지 마요. 나중에 하늘 아래 비빌 언덕이 없어져요.”


내가 생각해도 멋진 말이다. 그러나 정작 상대는 미동도 없다. 나와는 반대로 무슨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어김없이 나의 벌꿀오소리와 재차 팽팽한 평행선을 달리며 며칠을 버텨냈다. 또 그렇게 어버이날이 싱숭생숭 지나갔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후다. 아침 일찍 집을 나간 아내가 오후가 되자 웬일로 전화가 왔다. 하나뿐인 남동생이 연락 왔는데, 지금 아버지 모시고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는 중이라고 하였다. 이젠 장모도 큰딸에게 전화할 수 없는 처지가 되면서, 형제들 돌아가면서 연락하다 막내까지 도달하였다.     

 

마침 금요일 저녁 빅사리 연주 연습이 있는 날이다. 연습실과 병원이 지척이라 연습이 끝난 후 들렸다. 응급실에 누워 있는 장인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그러나 당신의 의지는 단호했다. 여전히 살아 있는 눈빛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처남이 내게 말했다. 응급실 오기 전 심장 전문 병원에서 의사로부터 심각한 이야기를 들었다며, 이제 아버지도 겁을 먹고 정신 차렸을 거라 장담하지만, 이는 아버지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절대로 포기할 양반이 아니다. 내게 분명 이렇게 말하였다.      


“전립선 이거 빨리 수술해서 나아야 한다. 그런 후 심장 치료에 들어가야….”


비록 심장으로 인해 사료 한 포대 들 힘도 없어 헉헉댈지언정, 거추장하고 정상적 생활이 불가능함을 시시때때 자각하게 하는 주머니를 달고 남은 생을 살 수 없다는 뜻이다. 어차피 죽을 것을 알지만, 여전히 욕망을 안고 오래 살기 위한 발버둥처럼 들렸다. 방식이 보통 사람과 다를 뿐이지만 말이다. 어쩌면 지능이 너무 높아 본능을 거스르는 중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날 저녁 모처럼 아내의 순한 표정과 대면할 수 있었다. 친정아버지, 장인을 만나고 온 공이었다. 역시 세상은 처세에 따라 입지가 달라진다는 것을 짧게나마 실감하였다. 특히 빈둥대는 것 말고 별로 할 일도 없는, 속속들이 빈민 계급임을 자각한 순간에 찾아온 반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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